할머니 킬러와 새파란 청년의 쫓고 쫓기는 ‘액션 누아르’
동명 소설 원작…독백 등 적극 활용
계단·조명 등으로 도심 배경 연출
빈틈 없이 ‘일’을 처리하던 전문가 ‘조각’은 어느덧 나이가 들어 육체의 힘이 줄어들고 있다. 감정이나 인연 때문에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회사에선 슬슬 은퇴를 종용받을 날이 다가온다. 육체적 능력 면에서 절정인 데다 일에 대한 동기마저 충만한 청년 ‘투우’가 그에게 도전한다.
직장 생활에서 흔히 있을 법한 상황이지만, 이들의 ‘일’은 살인청부업이다. 초연 중인 창작 뮤지컬 <파과>는 2013년 출간된 구병모의 장편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뮤지컬 장르에서는 보기 드문 스릴러·누아르를 표방한다.
어둡고 서늘한 액션 영화를 보는 듯한 무대와 연출이 이어진다. 높은 수직 벽체, 철제 계단 등을 사용해 도심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을 연출했다. 까딱 방심하면 크게 다칠 정도로 격렬한, 두 배우가 공들여 ‘합’을 맞춰봤을 게 분명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조명을 사용해 마치 액션 영화의 슬로 모션을 보는 듯한 장면도 재치 있다.
뮤지컬 <파과>는 원작이 소설이라는 점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소설적 장치인 주인공의 내면 독백이 내레이션으로 여러 차례 흘러나온다. 자칫 ‘무대예술’에 어울리지 않는 장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엔 뮤지컬 표현 방식의 확장으로 볼 여지가 더 많다.
캐릭터의 독특함도 탄탄한 원작을 가진 뮤지컬의 장점이 된다. 조각은 65세 여성 킬러다. 조각은 킬러에겐 금기시된 ‘연민’을 느껴 유기견을 데려오면서도, 일과 생활에 쓸모 없다며 ‘무용’이라고 이름 붙인다. 두 킬러가 주인공인 이 뮤지컬의 핵심 키워드는 역설적으로 ‘삶’이다. 다만 인물들의 내면과 과거를 천천히 훑어내느라 극의 전개가 빠르진 않다. 인터미션 이후 전개되는 2부에서는 1부와 다른 분위기, 속도를 기대하게 마련이지만 <파과>는 한결같다. 조각과 투우의 최종적 대결이 다가오지만 극적 긴장감이 높아지지 않는 이유다.
베테랑 이지나가 연출하고 장혜정과 함께 극본도 썼다. 이나영이 작곡·음악감독을 겸했다. 차지연·구원영이 조각, 신성록·김재욱·노윤이 투우 역을 번갈아 연기한다. 5월26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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