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한강과 한라산의 라면 국물

김태훈 논설위원 2024. 4. 10.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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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각별하다. 1인당 연간 70개 이상으로, 매주 한두개씩 먹는다. 전 세계 라면 소비 1위 자리를 놓고 베트남과 경쟁한다. 문학작품에도 그 애정이 녹아 있다. 소설가 이문열은 대하소설 ‘변경’에서 1960년대 이미 한국인의 라면 사랑이 유별났음을 기록했다. 특히 국물을 예찬했다. ‘노랗고 자잘한 기름기로 덮인 국물’에 ‘깨어 넣는 생계란이 예사 아닌 영양과 품위를 보증’한다고 썼다. 소설가 김훈도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서 국물을 강조했다. 맛있는 라면을 만들려면 물의 양은 조리법에 나오는 550㎖가 아니라 700㎖여야 하고 ‘파가 우러난 국물에 달걀이 스며’야 한다고 썼다.

▶그런데 라면 먹고 남은 것, 특히 국물은 문제다. 애물단지다. 라면 국물 맛을 결정하는 수프는 사실상 소금국과 같다. 나트륨이 약 1800㎎으로 1일 권장 섭취량 2000㎎에 육박한다. 남아서 버려진 국물 속 염분은 토양을 오염시키고 풀과 나무를 고사시키는 등 생태계를 교란한다. 종이컵 하나 분량인 200㎖ 라면 국물을 정화하려면 그 7300배인 1460ℓ의 맑은 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버려진 국물에서 나는 악취도 고약하다. 대표적으로 악취에 시달리는 곳이 한강공원이다. 한강 편의점의 즉석 조리기에서 끓인 라면은 워낙 인기여서 ‘한강 라면’이란 표현까지 생겼다. 그런데 먹다 남긴 국물을 한강으로 연결된 하수구에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엔 건강 생각한다며 면만 건져 먹고 국물은 버리는 이도 많다. 10일 오전 인근 한강공원에 나가보니 하수구마다 전날 밤 버려진 라면 국물 악취가 진동했다. 지난주 벚꽃 축제가 열린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도 버려진 라면 국물로 몸살을 앓았다.

▶전국의 산들도 라면 국물로 신음한다. 1994년 화기를 사용한 취사가 금지된 뒤 등산객 사이에 컵라면이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일부 등산객이 먹다 남은 국물을 산이나 계곡, 심지어 등산로 화장실 변기에 버린다. 얼마 전부터 소셜미디어에 컵라면 인증샷을 남기는 게 유행하면서 피해가 더욱 확산하고 있다.

▶한라산 국립공원이 이달 들어 ‘라면 국물 남기지 않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버려진 라면 국물 때문에 맑은 물에 사는 날도래, 잠자리 애벌레, 제주 도롱뇽 서식지가 위협받는다고 한다. 음식 냄새를 맡은 까마귀와 산짐승까지 꼬인다. 라면 국물도 엄연한 쓰레기다. 산이라면 비닐봉지에 담아 보온병에 넣어 하산하고 한강공원에선 지정된 수거함에 버려야 한다. 몸에 해로운 국물은 자연에도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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