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어제도 오늘도,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다
연말 예비후보자 등록, 지난달 22일 후보 등록 이후 길게는 4개월, 공식 운동 13일의 총선 레이스가 끝났다. 유권자들은 그동안 출퇴근길에서, 시장에서, 공공장소에서 후보와 운동원들의 수많은 인사와 악수, 명함을 받기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 한번만 일할 기회를 달라, 반성하겠다, 회초리를 들어달라, 정권을, 야당을 심판해달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어쩌면 큰절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엎드려 절 받기, 4년 중 반짝 주인 노릇이다. 이제 확성기는 꺼졌다. 거리의 후보들도 이젠 예전의 일상으로, 다시 만나기 힘든 정치인들로 돌아갈 것이다.
제22대 총선 성적표가 발표된 오늘, 4월11일은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자,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가 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공포된 날이다. 105년 전 오늘 공포된 임시헌장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이다. 전제왕권국가에서 민주공화국으로의 획기적인 정부체제 변화이자,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포했다는 큰 의미가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당시 연설에서 민주공화국 탄생의 감격을 이렇게 말했다. “대한 나라의 과거에는 황제가 1인밖에 없었지마는 금일에는 2000만 국민이 모두 황제요, 제군도 다 황제요. (중략) 황제란 무엇이오. 주권자를 이름이니 과거의 주권자는 유일이었으나 지금은 제군이 다 주권자외다.”(독립신문) 이 같은 ‘주권재민’ 정신이 도도히 흘러 1948년 제헌헌법으로,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정신으로 이어져왔다.
1960년 4·19 혁명, 1987년 6월 민주항쟁, 2016년 겨울 촛불항쟁의 현장마다 헌법 제1조가 울려퍼졌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2항) 대한민국 국민들은 현대사의 구비마다 헌법 제1조를 가슴에 담았고, 적극적으로 실현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다.
어르신도, 청년도, 중장년도 모두 대한민국 주권자다.
진보도, 보수도, 중도·무당층도, 40개에 달하는 정당의 지지자 모두 주권자다.
민주화세대도, 산업화세대도 주권자다.
처음 투표하는 만 18세도, 이대남도, 이대녀도 주권자다.
기후유권자, 원전 찬반론자도 주권자다.
고소득자도, 저소득자도, 최저임금 생활자도 모두 주권자다.
건물주도, 자가, 전세·월세 임대인·임차인도, 전세사기 피해자도 모두 주권자다.
쪽방촌 주민, 빈민, 철거민도 주권자다.
1인 가구도, 3인·4인 가구도 주권자다.
낙동강벨트, 한강벨트, 수도권, 영호남, 충청, 강원, 제주까지 17개 시도, 대도시, 중소도시, 읍면동 지역 주민 모두 주권자다.
대기업, 중소기업, 5인 미만 사업장,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 주권자다.
경영진도, 노조원도 주권자다.
이공계 연구자들, 사교육업계·금융권 종사자도, 화물연대, 건설노동자도 주권자다.
육해공군, 해병대 사병·장교도 주권자다.
의사도, 간호사도, 환자도, 그들의 보호자도 모두 주권자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도 주권자다.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주권자다.
돌봄노동자들도, 돌봄이 필요한 이들도 모두 주권자다.
세월호·이태원 참사 유족, 제주 4·3사건, 5·18민주화운동 유족, 연평해전·천안함 피격사건 유족들도 주권자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특수학교를 없애지 말라고 애원하는 이들, 특목고를 유치하겠다는 이들도 주권자다.
참외, 사과, 대파 농사를 짓는 이들도, 유통하는 이들도, 소비자들도 모두 주권자다.
주권자의 삶을 주권자가 결정해야 민주공화국이다. 그 과정이 지난하더라도, 주권자의 뜻이 가장 잘 반영되도록, 그 뜻을 잘 받들도록 조정하는 것이 대리인의 임무다. 대리인들이 주권자의 입을 틀어막을 순 없다. 공론장에서 토론하고, 의견을 모으고, 관철될 때까지 요구하는 것, 대리인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의 끈을 놓지 않는 것, 묻지마 지지(무비판적 팬덤)와 거리를 두는 것…. 바로 대리인들이 주권자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길이다. 어제도, 오늘도, 4년 후, 100년 후에도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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