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방법
최근 도발적인 제목에 이끌려 읽은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스리체어스, 2023)는 전국구 유명세를 자랑하는 빵집 ‘성심당’ 말고 딱히 손꼽을 만한 게 없는 것 아니냐 하는 도시, 대전을 조명한다. 언젠가부터 ‘노잼도시 대전’은 공공연한 우스갯소리가 됐다. 나 역시 이직하며 대전으로 이주하게 된 친구에게 “대전 노잼도시라는데 괜찮겠니?” 놀림조로 말한 적이 있다. 대전에 특별한 연이 없으니 관심 뒀을 리 없는, 고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분위기에 휩쓸려 대전을 노잼도시로 넘겨짚었음을 고백한다.
노잼의 도시라 불리는 대전에 살며 그 지자체가 출연하여 만든 정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저자 주혜진은 노잼도시라는 수식어를 대전만이 가진 개성으로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매력 없는 도시에서 산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할지 좀체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대전이 정말 노잼도시인지, 그렇다면 재미있는 도시는 어떤 도시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를 해소하고자 작정하고 파고들었다.
저자는 대전에 재미없다는 의미의 ‘노잼’ 수식이 붙은 데는 “소셜 미디어가 삶의 여러 경험 방법과 내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 시대상이 반영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질적연구방법의 하나인 ‘텍스트 마이닝’을 활용하여 소셜 미디어상에서 ‘노잼도시 대전’이 하나의 밈(meme)으로 정착된 것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이 밈을 즐기기 위해 기꺼이 대전으로 향하고, ‘성심당에 갔다가 돌아온다’로 귀결되는 일종의 노잼 공식에 따라 대전을 소비한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 인증한다. 실상 이 밈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대전이 재미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트렌드를 좇아 그 대상을 소비하고 인증하는 것이 오늘날 지역을 경험하는 패턴이 돼버렸다.
노잼의 대척점으로 대전에서 무엇이 ‘힙’하고 ‘핫’하게 받아들여지는지를 함께 살펴본 저자는 사람들이 대전의 힙과 핫을 이야기할 때 서울과 비교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서울에서 유행한 것을 의심 없이 힙하고 핫한 것으로 수용한다. 이는 대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서울이 될 수 없는 지방 도시들은 노잼일 수밖에 없고, 노잼에서 벗어나려 다시 서울을 좇는 악순환을 거듭한다”고 한 저자의 분석은 대한민국이 ‘서울 공화국’이라 불리게 된 현실에 닿아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책의 끄트머리에서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이 도시의 주인이 되어본 적 있었나?” 하고. 노잼도시가 서울 아닌 대다수 지역이 겪고 있는 지방소멸의 위기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라면 이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 만든 거대한 노잼 환경 속에서 노잼으로 살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노잼도시는 지역이 풀어야 할 과제이기 전에 우리 삶에 대한 문제 제기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유희하는 존재’로 정의했다는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의 권위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안다. 삶에서 재미없는 것은 의미를 잃고, 삶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면 살기가 고달파진다는 것을. 재미가 뭐기에. 사전을 들춰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이란 뜻을 확인한다. 재미의 성격은 ‘아기자기하게’에 있다. 여러 가지가 오밀조밀 어울려 있는 상태. 그러니까 재미는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다. 재밌게 살기 위해선 필히 다양한 것을 수용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내 삶에서 얼마나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며 사는 재미를 누리는지, 내가 두 발 딛고 살아가는 곳에서 주인공의 서사로 살고 있는지 되짚게 한다는 점에서 노잼도시라는 화두가 참 반갑다.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만으로는 온전히 이 도시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누구보다 재미있게 살고 싶은 나는 내 일상의 무대가 되는 이 도시를 좀 더 구석구석 누벼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마침 걷기 좋은 봄날 아닌가. “있잖아, 우리 동네에…” 하고 일상에서 재잘거릴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볼 작정이다. 나를 위해서, 더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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