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오늘]K팝을 사랑하는 의원 당선인께
문화산업을 흔히 굴뚝 없는 산업이라 부르지만 K팝은 해당하지 않습니다. K팝 산업은 굴뚝이 너무 많습니다. 업계 1위인 하이브의 총매출액은 코스피 상장 첫해인 2020년엔 8000억원 수준이었으나 급격하게 덩치를 불려 지난해 2조원을 돌파했습니다. 자산 5조3000억원 규모가 되며 대기업집단 지정도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 비약적인 성장의 핵심 축은 앨범 판매량입니다. 작년에만 1억장 넘는 K팝 앨범이 팔렸습니다. 그러나 박수 쳐서는 안 됩니다. 환경파괴, 팬이벤트 참여를 미끼로 한 다량 구매 유도, 끊임없는 사재기 논란 속에서 달성한 떳떳하지 못한 성적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시장이 스트리밍으로 이동한 지 오래인데 앨범 판매량에 의존한다는 건 K팝이 얼마나 후진적인 산업 기반을 가졌는지 말해줍니다. 어떻게 K팝을 미래산업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시대를 거스르는 이 기형적인 성장의 배경은, 국회를 비롯한 기득권에 여전히 팽배한 K팝 장르에 대한 무시와 무지가 논란의 가림막이 된 데 있습니다. K팝 산업의 문제점을 짚는 칼럼을 쓰다 보면 공인 자료가 부족해 분명 존재하는 문제를 축소하거나 생략하는 상황이 생기곤 합니다. 대형기획사의 실적 고공행진과 장밋빛 전망을 다룬 정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지만, 빠른 성장 속도와 규모에 뒤따르는 부작용과 후유증을 다룬 연구는 너무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인 팬들이 가장 큰 문제라 여기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온 현안은 과도한 상술입니다. 폐단이 쌓여 K팝 산업이 스스로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공인 자료는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한국소비자원의 ‘팬덤마케팅 소비자문제 실태조사’(2022년 12월)가 유일하다시피 합니다. 그나마 소비자상담센터에 4년간 접수된 903건의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돼 현실을 포괄하지 못하는 면이 있습니다. 가장 뜨거운 현안조차 사정이 이렇다는 건 K팝 산업이 제도적 감시와 견제, 책임 있는 이익 추구를 위한 자성 없이 덩치만 불렸다는 의미입니다. 더 이상 묵인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권 내부도 돌아봐야 합니다. 21대 국회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전개된 K팝 관련 입법 현안은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특례 법제화였습니다. 꾸준한 논의가 있었으나 결국 연기만 피우다 끝난 까닭은 본질적으로 국회가 K팝 가수를 ‘대중문화예술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정하지 않기에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 잼버리 K팝 콘서트 등 인기 아이돌을 앞세워 굵직한 국제행사를 치르려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K팝 인기에 무임승차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내실엔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가수 측에 출연 비용을 떠넘기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K팝을 동원과 약탈의 대상으로 부리고 정치권이 얻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냉정한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K팝을 사랑하는 국회의원 당선인님,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 증인으로 세우고 싶은 인물은 누구인가요? 21대에서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증인은 ‘달콤왕가탕후루’ 사내이사였습니다. 탕후루 열풍이 청소년의 당 과다섭취를 부추겨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로 작년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 소환되어, 업계 1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질의받았습니다. 전 국민의 사랑과 응원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사회적 책임은 외면해온 K팝 산업이 적어도 탕후루보다는 먼저 국감장에 서야 하지 않았을까요? 당선인님, 우리가 사랑하는 K팝이 더 멋진 울림을 만들 수 있도록 22대 국회에선 K팝 산업을 국정감사로 소환해주십시오. 당선을 축하합니다.
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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