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불확실한 난제에 새로운 시각으로 도전하고, 실패를 의식하지 마라"

최상현 2024. 4. 1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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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원장
행정고시 36회로 공직 입문
통상교섭실장 지낸 정통 관료
2022년 제5대 원장으로 취임
새패러다임 R&D 지원 위해서
산업기술기획평가원으로 바꿔
"과감하게 도전·치열하게 연구하는
혁신도전형 R&D 풍토 만들고파"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장.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제공]

"중세 연금술사(알키미스트)들은 납을 금으로 만들겠다며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불가능한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근대 화학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죠. 정부 연구개발(R&D)에서도 불확실한 난제에 새로운 시각으로 도전하고, 장기적인 혁신을 이뤄내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를 역점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사무소에서 만난 전윤종(55·사진)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원장은 "연구자들이 실패를 의식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고 치열하게 연구하는 혁신도전형 R&D 풍토를 만들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 원장은 행정고시 36회로 공직에 입문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통상교섭실장을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 지난 2022년 KEIT 제5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KEIT는 지난 2월 산업부와 함께 자연과학·인문사회학·미래학 분야의 최고 석학으로 구성된 '그랜드 챌린지 위원회'를 통해 '미래 극한 반도체 소자', '휴머노이드', '초연결 지능제조 플랫폼' 등 3개 유망기술을 선정했다.

극한(Ultimate) 반도체는 재난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구동하는 미래 반도체 소자다. 휴머노이드는 현재의 생성형 인공지능(AI)을 넘어 인간처럼 감각을 측정하고, 고강도·고위험 육체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차세대 로봇을 지향하는 프로젝트다. 또 초연결 지능제조 플랫폼은 AI를 활용해 자동으로 제품 도면과 공정 최적 설계가 가능한 플랫폼으로 직접 공장을 보유하지 않아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제품과 부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는 미래를 목표로 한다.

세 과제의 공통점은 그 목표가 장대하다는 것, 그리고 어지간한 혁신으로는 그 편린조차 붙잡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과제라는 것이다. 전 원장은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정부 과제는 통상적으로 인풋이 들어가면 반드시 아웃풋이 나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며 "그런 부담감 때문에 가시적인 성과를 미리 정해놓고 과제를 따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연구자들은 문책을 피하기 위해 목표 설정에 소극적으로 나서게 되고, 그에 따라 결과물도 다소 미흡하게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 원장은 성과에 대한 부담을 버려야 민간에서 하지 않는 혁신적인 연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는 "성과를 따지지 않고, 연구비를 제대로 사용했는지만 따져보는 게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라며 "경쟁형 R&D를 통해 3단계에 걸쳐 옥석을 가르고, 최종적으로 5년간 200억원의 개발 자금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의 R&D 지원을 위해 전 원장은 지난해 9월 기관의 이름을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서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으로 바꿨다. 단순히 과제를 평가하는 역할에서 나아가 AI나 소재·부품·장비, 바이오, 반도체 신기술 등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R&D를 장려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의미다. 전 원장은 "연구자가 원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목소리를 반영해 사업을 기획해야 국가 기술경쟁력 확보가 가능해진다"며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연구지원방식을 채택해 초격차 기술 확보에 앞장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R&D의 기획부터 평가, 이행까지 모든 과정을 KEIT가 망라하고, 피드백을 통해 선순환을 만들어가겠다는 취지다.

공급망 관리와 자립, 선도도 KEIT가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분야다. 올해 KEIT의 R&D 지원 예산의 절반 정도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에 집중돼 있다. 글로벌 선진국들이 점점 보호무역주의의 강도를 높여가며 수시로 핵심 소재 수출 통제와 첨단 부품 규제를 발동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 지정학적 위기마저 고조되며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전 원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반도체용 희귀가스 '네온'이 품귀 현상을 빚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며 "국내 기업들이 R&D를 통해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수급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전 원장은 "우리나라는 그동안 완제품과 완성품 중심으로 산업을 발전시키면서 소부장은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며 "공급망이 언제든 단절될 수 있는 지금,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핵심 품목을 대상으로 8대 산업 공급망 선도 프로젝트를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원장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HBM) 공정에서 KEIT가 공정장비 개발을 지원해 국산화에 성공한 사례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민간 기술과 정부 지원이 힘을 합친 민관 협업 R&D의 모범 사례"라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완제품 대기업이 원활하게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국내 산업 생태계를 확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글로벌 R&D를 실질적으로 맡아 추진하는 기관도 KEIT다. 통상 전문가 출신으로 국제 사정에 밝은 전 원장은 글로벌 R&D 협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 "과거에는 국내에 마더 팩토리를 두고 해외에서는 양산만 하는 개념이었다면, 지금은 우리 기업이 미국이나 유럽에 핵심 공장을 짓고 현지 학교·연구원과 협업해 R&D도 많이 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며 "정부 R&D도 그에 맞춰 글로벌하게 움직여야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제 공동 R&D 협력을 통해 국가전략기술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연구자 간 네트워킹도 매우 중요하다"며 "정부 R&D가 각자의 역할에만 집중하는 칸막이식 연구가 아닌 '소통하는 연구'가 될 수 있도록 지원책을 가다듬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상현기자 hy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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