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잉주 만난 시진핑, 16초 동안 악수... “하나도 안 변했네”
친중(親中) 성향의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이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약 9년 만에 재회했다. 시진핑과 마잉주는 이날 오후 3시 55분 베이징 인민대회당 동대청(東大廳)에서 만나 16초간 악수한 뒤 회담했다고 중국·대만 매체들이 전했다. 시진핑은 마잉주에게 “당신, 하나도 안 변했네”라고 했고, 마잉주는 “시 선생” “(중공) 총서기”로 시진핑을 불렀다. 이번 회동은 같은 날 미국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 대한 ‘맞불’ 성격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만 자유시보는 8일에 양자 회동이 성사될 예정이었지만, 미·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이날로 일정이 변경됐다고 전했다.
시진핑은 이번 회담에서 마잉주를 최고 수준으로 예우했다. 회담 장소로 고른 동대청은 중국 최고 지도자가 외국 정상을 예우하려 할 때 주로 쓰는 곳이다. 2005년 후진타오 주석과 롄잔 대만 국민당 주석이 회담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날 회담에는 ‘시진핑의 책사’인 왕후닝(서열 4위)과 ‘시진핑의 최측근 실세’ 차이치(서열 5위)가 배석했다. 시진핑을 포함한 최고지도부 7인(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3명이 마잉주를 맞이한 것이다.
이날 회동에서 시진핑은 중국이 대만 집권 민진당은 인정하지 않는 ‘92공식(하나의 중국은 인정하되 양측이 각자 다른 명칭을 쓰기로 한 1992년의 합의)’ 고수 원칙을 재확인하고, 대만 독립 반대 의지를 천명했다. 시진핑은 이날 “양안(중국과 대만)의 체제가 다르다고 해서 양안이 같은 나라에 속한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며 “그 어떤 외세의 간섭도 가족과 조국의 재결합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마잉주는 “양안의 전쟁 발발은 중화민족이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라고도 했다. 마잉주 또한 여러 차례 92공식 지지 의사를 밝히고 “거센 고난 겪고도 지워지지 않은 형제의 정, 만나서 한 번 웃으면 과거의 은혜와 원한 모두 사라진다(渡盡劫波兄弟在, 相逢一笑泯恩仇)”는 현대 중국 문학의 거장 루쉰의 말을 인용했다. 회담은 10분 동안 공개 진행한 이후 비공개 전환했다.
시진핑과 마잉주의 만남은 두 번째다. 시진핑은 2015년 11월 7일 싱가포르에서 당시 대만 총통이었던 마잉주를 만나 분단 66년 만에 처음으로 양안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은 두 사람의 성을 따서 시마회(習馬會)라고 불렸다. 1949년 국·공(국민당·공산당) 내전에서 국민당이 패해 대만으로 쫓겨간 이후 현직 중국 국가주석과 대만 총통이 만남을 가진 것은 ‘시마회’가 유일하다.
대만 언론들은 시진핑이 지난해 3월 집권 3기 시작 이후 처음으로 대만 측 대표 인사를 만난 점에 주목했다. 독립 성향의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이 다음 달 20일 취임을 앞두고 있고, 미국이 동맹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대만 문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시진핑이 이번 회동을 계기로 대(對)대만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이다.
대만 반중(反中) 진영에서는 중국이 민진당 현 정권과 라이칭더를 ‘패싱’하기 위해 퇴임 지도자인 마잉주를 띄워준다고 반발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 정부와의 직접 소통을 거부하면서 대만해협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대만 연합보는 “양안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마잉주 같은 이가 아니면 누가 본토에 목소리를 내겠느냐”면서 “현재로서는 마잉주가 (현 총통인) 차이잉원보다 훨씬 쓸모 있다. 최소한 시진핑에게 양안 평화 추구 메시지는 효과적으로 전하지 않느냐”라고 지적했다.
베이징에서 회담이 열린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의 국방·안보 협력 강화를 약속하며 중국 견제 수위를 높였다. 11일에는 워싱턴DC에서 처음으로 미·일·필리핀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 세 정상은 해상 협력 등을 집중 논의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남중국해·동중국해에서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를 막겠다는 뜻이다.
11일 대만으로 돌아갈 예정인 마잉주는 지난 1일부터 중국에 머물렀다. 중국의 대만 담당 기구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쑹타오 주임을 만나 92공식 지지 입장을 재확인했고, 양안 결속을 강조하는 행사인 ‘황제(黃帝) 제사’에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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