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120〉과기계 “올림픽 전산시스템은 우리가 개발해야”
1981년 11월 2일 오전. 88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SLOOC) 제1회 위원총회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총회에서는 전두환 대통령을 명예총재로 추대하고 위원장에 김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선출했다. 또 88서울올림픽대회 사무총장에 이원경 대한올림픽위원회(현 대한체육회) 상임고문을 인준했다.
김용식 위원장과 이원경 사무총장은 거물 외교관 출신으로, 한국의 외교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김 위원장은 외무부 장관 두 번, 무임소 장관,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 등 장관을 무려 네 번이나 역임했다. 이 총장도 외무부 장관, 문화공보부 장관, 체육부 장관 등 3개 부처 장관으로 재임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말. “(김 위원장과 이 총장)두 분은 외교관 출신으로, 해외 인맥이 대단했습니다. 88서울올림픽은 참가국 유치가 가장 큰 관건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한 인선이었습니다.”
위원회 조직위원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마라톤 영웅 손기정 옹을 비롯해 각 부처 장관, 경제계·체육계·정계·언론계 대표 등을 망라해 선임했다. 거국적인 올림픽 준비 체계를 갖춘 것이다.
그해 11 하순 어느 날. 이원경 조직위 사무총장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시스템공학연구소(SERI)로 성기수 소장을 찾아왔다. 성 소장은 이 총장을 회의실로 안내했다. 그 자리에는 공학연구소의 팀장 전원이 배석했다.
이 총장은 자리에 앉자 곧장 본론을 꺼냈다.
“서울올림픽 전산시스템을 우리 기술로 개발할 수 있겠습니까?”
성기수 소장이 가장 기다리던 질문이었다.
“개발할 수 있습니다. 우리 기술로 올림픽 전산시스템을 꼭 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외화도 절약하고 한국 과학기술이 발전합니다. 특히 대규모 시스템 개발로 한국 정보산업이 급성장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 손으로 시스템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럼 성 소장께서 기초조사를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성기수 소장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는 오는 법이었다.
성 소장은 독일 바덴바덴에서 88올림픽이 한국 개최로 결정나자 올림픽 전산시스템 개발이 유사 이래 최대 전산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성 소장은 과학기술처에도 올림픽 전산화와 관련한 연구를 1982년도 특정연구개발사업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 이원경 총장이 성 소장을 찾아온 것이다.
성 소장은 곧바로 내부에 올림픽 전산화 기초조사팀을 구성했다. 팀장직은 선임연구원인 이단형 박사가 맡았다.
이단형 박사(현 한국소프트웨어기술진흥협회장)의 말.
“TV를 통해 88올림픽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하는 것을 본 순간 벅찬 감격과 아울러 '내가 올림픽 정보통신(IT) 프로젝트를 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튿날부터 틈틈이 올림픽 관련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부터 1980년 옛 소련 모스크바 올림픽까지 올림픽 역사와 당시 준비 단계에 있던 84로스앤젤레스(LA)올림픽 계획을 검토하면서 서울올림픽 구도를 나름대로 구상했습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에 가서 파견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했습니다.”
조사팀원은 허채만, 최정호, 권영범 등 6명이었다.
기초조사팀은 1983년 상반기에 1972년 뮌헨올림픽,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개최지 등을 방문해 전산시스템 관련 자료조사를 진행했다.
1982년 3월 20일. 한국 체육 사령탑인 체육부가 이날 출범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에서 노태우 초대 장관과 이영호 차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체육부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구 을지로2가 한국외환은행(현 하나은행) 본점 21층에 자리 잡은 새 청사에서 유창순 국무총리와 김용식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등 각계 인사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판식을 갖고 정식 업무를 시작했다.
1983년 4월 9일 SERI는 '88서울올림픽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전산화 준비작업 연구(1)'라는 특정연구과제 최종 보고서를 과학기술처에 제출했다. 과제 총괄책임자는 김봉일 전산개발부장이고 허채만 선임연구원, 최정호·권영범·성진동·조일순·김영환·이윤신 연구원 등이 연구에 참여했다.
보고서를 통해 올림픽 전산화 방향, 국내 보유기술과 장비 활용방안, 국가 차원의 비용절감 등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형 올림픽 전산시스템 개발 모형을 정부에 제시했다.
이 보고서는 올림픽 전산시스템 개발의 설계도 역할을 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도 차츰 올림픽 전산시스템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올림픽의 성패는 전산시스템에 달려 있다고 인식했다.
당시 가장 큰 쟁점은 '국내 시스템 개발이냐' '외산 시스템 도입이냐'였다.
SREI와 과기계는 “어떤 경우에도 국내 기술로 전산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에 비해 국내 여론은 LA올림픽에서 사용한 전산시스템인 시조(SIJO)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절대 우위였다.
성기수 전 동명정보대 총장의 말. “당시 여론은 LA올림픽 전산시스템인 시조를 도입해서 사용하자는 안이 절대 우세했습니다. 조직위도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괜히 국산 시스템을 사용하다가 실패하면 국가 망신이고, 그 책임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미국 측도 한국에 시조 구입을 해 달라며 은근히 압력을 넣었어요. 정부도 경기 운영 관리와 경기 결과 처리 시스템 등을 외국업체에 맡길 생각이었습니다.”
7월 11일 오전 11시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는 의원총회를 열고 체육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지낸 노태우 전 장관을 새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노 위원장은 전두환 대통령과 친구 사이로, 정권 2인자로 통했다. LA올림픽조직위 측은 신임 노태우 위원장에게도 시조 도입을 강력하게 권유했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조차 미국에 용역을 주라고 한국에 압력을 넣었다.
성기수 소장은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성 소장은 노태우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그해 7월 중순 어느날. 성 소장은 서울 중구 을지로 2가 외환은행 본점 건물에 있던 노태우 위원장실을 방문했다.
“위원장님 올림픽 전산시스템은 국내 기술진이 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 과학기술과 정보산업이 수직 점프합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크게 후회할 것입니다. 88서울올림픽 전산시스템을 어떤 경우에도 국내 기술진이 개발토록 해 주십시오.”
노 위원장이 물었다.
“성 박사, 우리는 그런 경험이 없지 않습니까?”
“위원장님, 저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우리 과기 인력이 외국보다 못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성 소장은 구체적으로 “시조를 구입하면 서울올림픽 규모에 맞게 수정해야 하고, 그러면 새로 개발하는 것보다 비용과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며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설명했다.
설명을 듣던 노 위원장이 대안을 제시했다.
“성 박사, 10월 열린 제64회 인천체전 전산시스템을 SERI에서 개발해 주세요. 그 결과를 보고 판단하면 어떻겠습니까.”
순간 성 소장은 숨이 턱 막혔다.
“올림픽보다 종목이 더 많은 인천체전 전산시스템을 3년도 아닌 3개월 만에 끝내라니!”
그러나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었다. 성 소장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겠습니다. 인천체전 시스템을 개발하겠습니다.” 미래를 건 도전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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