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 연상호, 장르물 4편 잇단 공개…“아시아 장르 성장이 목표”
하반기 ‘지옥’ 시즌2, 내년엔 ‘계시록’ 예정
또 연상호? 지난 1월 ‘선산’(넷플릭스) 공개 이후 지난 5일 ‘기생수: 더 그레이’(넷플릭스)까지 겨우 석달. 각각 작가와 연출가로 참여하며 상반기에만 벌써 드라마 두편을 내놨다. 하반기에는 ‘지옥’ 시즌2, 내년 상반기에는 ‘계시록’도 나온다. 다작 덕에 ‘선산’으로 구긴 자존심은 빠르게 회복했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오징어게임’(2021년) ‘지옥’ 시즌1(2021년)에 이어 국내 콘텐츠 세번째로 넷플릭스 티브이(TV)쇼 부문 영어권∙비영어권 통합 1위(플릭스패트롤 집계)에 올랐다. 그러나 신선함은 다작 탓에 줄었다. ‘기생수: 더 그레이’도 그의 전작과 비슷한 상황과 설정이 반복되며 성적과 별개로 호평과 혹평을 오간다. 잦은 작업으로 연상호라는 이름이 소모되고 있는 것에 우려는 없을까.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소곡동 카페에서 연 감독에게 물었다.
“이것 저것 많이 기획하는데 투자가 되는 작품은 비슷한 장르물이더라. 제 히트작이 ‘부산행’이어서 그런 것 같다. 탈피해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하지 않고 카메라로 촬영만 하는 작품 등 앞으로는 다양한 것을 선보이는데 주력하려고 한다.” 연 감독은 “작업이 어려운 장르를 추구하다 보니 기회가 닿을 때마다 여러 시도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 장르물은 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아 당장이라도 수요가 줄 수 있다. 그러나 쉼 없이 노 젓는 과정에서 연상호 특유의 기발함이 더 나아가지 못하는 아쉬움은 분명 존재한다.
연상호 이름 석자는 새로운 시도의 대명사였다. 1997년 ‘디(D)의 과대망상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막 치료를 끝낸 환자가 보는 창밖풍경’이라는 제목부터 연상호다운 애니메이션 영화로 데뷔해 2004년 ‘지옥: 두개의 삶’, 2011년 ‘돼지의 왕’, 2015년 ‘서울역’에서 자신만의 관심사를 독특한 색깔로 뽑아냈다. 전례없던 좀비 상업 영화 ‘부산행’에 이어 초자연적 현상을 담은 드라마 ‘지옥’ 시즌1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그가 추구해온 비(B)급 세계도 변화가 일어났다. 좀비, 아포칼립스, 초능력 등 마이너 소재가 넷플릭스를 만나 메이저 장르가 되면서 그도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대중적이지 않은 제가 대중적인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투쟁이었다. 전세계의 마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상승세인 아시아 장르를 더 크게 성장시키는 게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과제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대중성을 완벽히 내려놔도 되는 시기가 오면 혼자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자유롭게 하고 싶다.”
2016년 영화 ‘부산행’ 때부터 작품을 관통해 온 가족에 대한 탐구는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 인간의 공존으로 확장됐다. 그러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던 그가 오티티에서 긴 호흡의 드라마에 집중하면서 내용을 풀어가는 방식은 다소 심심해졌다. ‘지옥’에서와 달리 대사가 대체로 설명적이다. 특히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는 기생생물 우두머리인 목사가 드라마의 주제를 담은 ‘인간’에 대해 구구절절 읊는다. 6부작에서 긴 설명은 전개를 느슨하게 만드는 위험 요소다. 정수인(전소니)과 한몸에서 공존하는 기생생물 하이디의 필담 대화도 장르에 견줘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는 “갇혀서 보는 극장용 영화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티브이와 휴대폰 중심의 작품이라면 명확한 메시지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김현주부터 김지영(‘괴이’)까지 배우들의 새로운 모습을 끌어내 왔다. 특히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 최준경(이정현) 팀장처럼 여성 배우에게 강인한 역할을 자주 맡겼다. 그러나 같은 배우가 비슷한 인물로 자주 등장해 기시감도 준다. 김현주는 ‘지옥’ 시즌1에 이어 ‘정이’ ‘선산’에 나왔고, ‘지옥’ 시즌2도 출연한다. 영화 ‘반도’에 나온 구교환은 ‘괴이’와 ‘기생수: 더 그레이’에 출연했다. 그는 “오디션 영상이나 기존 작품 등 한정적인 상황에서 배우를 평가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익숙한 분들과 작업하면 안정감이 있고 의지가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 감독이 연출하는 작품의 시각적 쾌감은 여전하다. 좀비 액션에 이어 상모 돌리기를 모티브 삼아 기생생물 액션을 창조하고, 시각 특수효과(VFX)로 구현해내는 능력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연 감독은 “기생수: 더 그레이’는 원작 만화의 오랜 팬이어서 팬픽 쓰는 마음으로 즐겁게 작업했다”고 한다. 원작자를 만나 30~40분 프리젠테이션까지 했다. 마지막 회에 일본 배우 스다마사키를 등장시켜 세계관 확장과 시즌2도 염두에 뒀다. 그러나 통합 1위로 좋은 성과를 내면서 즐거움은 부담으로 바뀌었다. 그는 “보는 눈이 많아지다 보니 시즌2를 하더라도 좋아하는 마음만 갖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그것이 과제”라고 했다. “적당한 존중과 조롱을 받으며 오래 작업하고 싶다”던 연 감독이 대중적인 관심을 받은 뒤부터 작업 과정이 투쟁이 된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요즘은 대본 쓰는 게 가장 어렵다. 혁신적인 작품을 쓰겠다 마음먹는데, 도대체 혁신적인 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는 고민의 답은 그의 작품 목록에 있지 않을까. 그가 만든 수많은 드라마 중에서 첫 오티티 도전작 ‘지옥’만 시즌2가 결정됐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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