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극작가·공사현장 ‘잡부’ 이용훈

백승찬 기자 2024. 4. 1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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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 공연
2022년에는 시집 ‘근무일지’ 출간
여전히 노동현장에선 ‘기술 없는 잡부’
“나보다 더 치열하게 일하며 글쓰는 사람 많다”
시인 겸 극작가 이용훈. ⓒ박프리들랜더

그는 시인이다. 2018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2022년 첫 시집 <근무일지>(창비)를 출간했다. “삶과 시가 하나인 세계. 그 세계가 여기에 있다”(이용주 시인), “산문이 시를 압도하고 시가 다시 산문을 포용하는 순환”(김수이 문학평론가) 같은 평을 받았다.

그는 극작가다. 희곡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을 지난달 국립극단 ‘입체낭독공연’으로 선보였다. 2022년 국립극단의 온라인 상시 투고 제도인 ‘창작공감: 희곡’에서 발굴된 이 작품은 “투고된 134편 희곡 중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는 공사현장의 ‘잡부’다. 택배노동, 청소노동, 철거노동 등 다양한 종류의 일을 해왔다. 글쓰기 위한 취재 목적이 아니다. 이용훈은 “여러가지 일을 경험했다는 것은 기술없는 잡부의 비애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숙련공이 되서 자기 살길을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힘들고 멋진 인생인가. 나는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라고 e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은 철거노동자 고윤호의 독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팀을 짜 구옥을 해체하는 철거노동자 고윤호는 작업을 하다가 병원에서 전화를 받는다. 동료 노동자 백두영이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백두영은 고윤호가 건설 현장에 처음 발을 내디딘 고교 졸업식 날 아침 만난 아버지같은 사람이었다.

이 희곡은 작가의 체험 혹은 성실한 취재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묘사로 이어진다. “현장 노가다 뛰는 사람들에게 전화 걸어서 통화음 3번 울려도 안받으면 바로 끊으십시오. (…) 전화 받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구요!” 출판사 편집자와 국립극단 관계자는 실제 이용훈과 낮시간대 연락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백두영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은 “지붕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라고 표현된다. ‘오함마’를 들고 철거를 시작했을 때는 “세상이 흔들리듯 천장과 벽이 흔들리더군요”라고 말한다. 희곡에는 안전사고가 날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에 대한 묘사도 있지만, “철거가 뭐여 이판사판 떠돌다 우덜이 세운거 우덜 손으로 끝장내는거 아니여. 우덜이 공사판 염쟁이 아니걷어”라는 노동자로서의 자부심 넘치는 대사도 나온다.

<근무일지>의 시어에도 ‘시멘트의 맛’이 가득하다. 권두에 실린 ‘당신의 외국어’는 “가다와꾸 가도(는) 가리고야, 가이당 가랑(은) 가라(고)”라는 말로 시작한다. “거푸집 모서리는 헛간, 계단 꽁지는 거짓”이라는 뜻의 현장 용어다. 어떤 이에게는 말 그대로 ‘외국어’지만, 시인에겐 생계 심지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언어다. ‘오산 스타렉스’ ‘여의도 트럼프’ ‘신수동 수화물 터미널’처럼 시인이 일한 장소가 그대로 시 제목이 되기도 한다. “사장놈이 의리 찾더라 두 손 붙잡길래 돈 벌러 와서 그딴거 눈곱만큼도 생각 없다, 했다”(오산동 스타렉스), “작업반장은 맨홀을 살펴본다 도저히 안 되겠다 말하지만 위에서는 내려가라고…”(한낮의 순찰자) 같이 노동현장의 현실을 짐작케하는 대목들도 있다.

이용훈이 글로 노동현장의 비참을 직접 고발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은 가족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채 ‘무명의 잡부’로 세상을 뜬 백두영의 삶을 조용히 기억하지만, 애절하거나 처절하기보단 무심하고 담담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근무일지>는 앞선 세대의 노동시처럼 힘찬 시어와 전망을 제시하는 대신, 때론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복잡한 언어와 감성을 쏟는다. 이용훈은 “나는 구경꾼으로 남고 싶다. 어떤 주장을 앞에서 끌어가는 사람은 변화를 만들겠지만 일어나는 일들을 주의 깊게 보고 발견하고 전달하는 일로부터 파동은 시작되니까”라고 말했다.

이용훈은 한동안 일을 못했을 때 집 근처 도서관에서 오전 9시~오후 9시 책을 읽다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강좌를 들으며 강은교, 허수경, 이영광, 송경동의 시를 더 추천받아 읽고 쓰기 시작했다. 희곡 역시 우연히 중고서점에서 로르카의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읽은 뒤 관심을 갖게 됐다. 이용훈은 시와 희곡은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는 점이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입체낭독공연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 국립극단 제공
입체낭독공연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 국립극단 제공
입체낭독공연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 국립극단 제공

글을 쓰는데 “어떤 시간이나 대상을 특정할 수 없다”고 한다. “인력배달 차량에 올라타 있다가도, 동료들과 밥을 먹다가도, 일터에서 어떤 상황을 목격할 때도 머릿속은 계속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러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묶여지는 번뜩이는 순간이 있다.” 이용훈이 밝힌 영감의 순간이다.

그는 지금까지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적이 없었다. “건설 현장 잡부가 ‘시’를 썼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일’하며 ‘생활’하며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수없이 많고, 나보다 더 치열하게 일하며 글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 공연 때도 가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숨이 막히거나, 심장이 터질 듯이 뛸 때가 종종 있다. 화물차 안에서 상하차 일을 할 때부터 생겨났는데, 아마도 외부자극에 민감해진 듯 하다”고 했다. 시집 표지 사진도 찍지 않으려다가, 편집자의 설득에 얼굴 절반 이상을 그림자로 가리는 사진을 넣었다.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에는 “살아가십시오”라는 한 마디만 적혀있다. 희곡의 ‘작의’에는 “나는 한 죽음을 지켜본 적이 있다. (…) 나는 한 죽음이 잊혀지는게 못내 아쉽다. 나는 한 죽음을 기억하고 싶어 희곡을 쓴다, 썼다”라고 적었다. 이용훈은 “살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 앞에서 삶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렇게 엎치락 뒤치락 하다보니 살아있다는 것이 죽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 이후에도 나아감이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되는 듯 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노동현장 ‘잡부’와 ‘작가’ 모두를 자기 일로 여기며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이용훈 시집 ‘근무일지’. 창비 제공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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