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병(老兵)과 한국 대통령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4. 4. 1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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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유엔군 참전용사 중에서 한국 대통령과 만나 대화할 기회를 가진 이는 무척 드물 것이다.

미군 6·25 참전용사로는 이례적으로 한국 대통령 두 명과 직접 대면한 퍼켓 대령이 8일(현지시간) 9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생전 주위에 "미국이 도왔던 모든 나라 중에 한국이 가장 감사를 표할 줄 안다"고 말했다고 한다.

 "(6·25전쟁 발발 직후) 한국에 가고 싶었다. 한국을 방어하는 것이 정말 내 소명이라고 느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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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유엔군 참전용사 중에서 한국 대통령과 만나 대화할 기회를 가진 이는 무척 드물 것이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꽤 오랫동안 한국은 전란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사라진 가난한 나라였다. 참전용사들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한다며 대규모 초청이나 떠들썩한 환영 행사를 열 형편이 못 되었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우리 대통령이 우방국들을 돌며 참전용사들과 함께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전쟁 당시 유엔의 깃발 아래 한국에 전투 병력이나 의료진을 파견한 나라는 미국, 영국, 호주, 인도 등 22개국에 이른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진 뒤에야 유엔군 참전용사들을 위한 보훈(報勳)사업도 가능해졌다.
2023년 4월 국빈 방미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6·25전쟁 참전용사이자 명예훈장 수훈자인 랠프 퍼켓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의 휠체어를 직접 밀며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23년 4월 미국을 국빈으로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어느 노병이 탄 휠체어를 직접 밀며 행사장에 입장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안겼다. 당시 97세로 거동이 불편했던 랠프 퍼켓 예비역 육군 대령이 주인공이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우리 국가보훈부와 한미연합사령부가 공동으로 선정한 6·25전쟁 10대 영웅 중 한 명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방미를 계기로 마련한 동맹 70주년 기념 오찬에 그를 특별히 초대하면서 말 그대로 최상의 예우를 갖췄다. 한국군 무공훈장 가운데 최고 훈격에 해당하는 태극무공훈장을 퍼켓 대령에게 달아줬다. 이는 우리 현직 대통령이 외국 방문 도중 무공훈장을 수여한 첫 사례에 해당한다.
퍼켓 대령은 1949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한 이듬해인 1950년 6·25전쟁이 한창이던 한국에 파병됐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기세가 오른 한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에 나섰다. 그러나 곧 중공군이 북한을 도와 개입했다. 그는 1950년 11월 청천강 일대 205고지에서 부대원 51명과 한국군(카투사) 9명을 이끌고 중공군 수백명을 물리쳤다. 이 공로로 2021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다. 미국에서 명예훈장은 군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백악관에서 열린 훈장 수여식에는 마침 미국을 방문 중이던 당시 문재인 대통령도 함께했다. 수여식 후 다 같이 기념촬영을 하며 퍼켓 대령 양옆의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나란히 무릎을 꿇은 모습은 오늘날까지도 굳건한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거론된다.
2021년 5월 미국을 방문 중이던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6·25전쟁 참전용사인 랠프 퍼켓 미 육군 예비역 대령에 대한 명예훈장 수여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문 대통령, 퍼켓 대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군 6·25 참전용사로는 이례적으로 한국 대통령 두 명과 직접 대면한 퍼켓 대령이 8일(현지시간) 9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명예훈장을 받기 직전 백악관에서 “행사에 참석했으면 한다”는 전화를 받자 “왜 야단들인가. 그냥 우편으로 보내줄 수 없느냐”고 까칠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전 주위에 “미국이 도왔던 모든 나라 중에 한국이 가장 감사를 표할 줄 안다”고 말했다고 한다. “(6·25전쟁 발발 직후) 한국에 가고 싶었다. 한국을 방어하는 것이 정말 내 소명이라고 느꼈다”고도 했다. 미국인 대다수가 한국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시절 오로지 장교의 사명감만으로 의연하게 한국행(行)을 택했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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