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나중에 줄게 방 빼" 세입자 속인 집주인…대법 "사기 아냐"

양윤우 기자 2024. 4. 1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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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이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음에도 이를 돌려주겠다고 속여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세입자에게서 받았더라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어 "세입자로서는 오피스텔 반환을 거절하고 계속 점유할 권리가 있었음에도 한씨에게 속아 점유를 이전했기 때문에 이는 사기죄의 재산상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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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집주인이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음에도 이를 돌려주겠다고 속여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세입자에게서 받았더라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한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한씨는 세입자에게 오피스텔 임차보증금 1억2000만 원을 돌려줄 수 없는데도 "일단 5000만 원을 송금해 주고 7000만 원은 다음에 송금해 주겠다"고 속여 점유권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세입자는 임차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짐을 빼고 비밀번호를 바꿨다. 이에 한씨는 "새 임차인이 이사를 오기로 했다"며 보증금 일부를 보내주고 바뀐 비밀번호를 얻어냈다.

재판에서는 '무엇에 대한 사기인가'가 쟁점이 됐다. 형법상 사기는 사람을 속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해야 성립된다.
검찰은 한씨가 세입자의 오피스텔 점유권을 처분하게 해 빼앗은 셈이므로 사기라고 봤다. 그러나 한씨 측은 "세입자가 오피스텔을 돌려준 건 계약 종료에 따른 임차인의 의무였을 뿐이고 세입자가 이에 따라 얻은 재산상 이득이 없다"고 주장했다. 단순 채무불이행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1심과 2심은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사기죄의 객체로서의 재산상의 이익에는 채무이행의 연기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어 "세입자로서는 오피스텔 반환을 거절하고 계속 점유할 권리가 있었음에도 한씨에게 속아 점유를 이전했기 때문에 이는 사기죄의 재산상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2심 재판부도 "피해자는 임차목적물인 오피스텔의 반환을 거절해 계속 점유할 권리가 있는데도 피고인의 기만행위에 속아 피고인에게 점유를 이전했기 때문에 사기죄의 재산상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판단이 뒤집혔다. 오피스텔이 한씨의 소유라서 사기죄의 성립 요건인 '타인의 재산상 이익을 빼앗았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 말에 속아 나머지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지 않고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이전했더라도 사기죄에서 재산상의 이익을 처분했다고 볼 수 없어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사기죄는 타인이 점유하는 타인의 재물과 재산상의 이익을 객체로 하는 범죄"라며 "재물을 점유하면서 향유하는 사용·수익권은 재물과 전혀 별개의 재산상의 이익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재물에 대한 사용·수익권은 형법상 사기죄에서 보호하는 재산상의 이익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전체 판결을 파기함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새롭게 형량을 정하게 된다.

양윤우 기자 moneyshee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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