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림 도록 논란이 드러낸 ‘국가대표 미술관’의 수준
“죽기 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이지 못한 내 작품을 모두 펼쳐서, 후배들한테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는 11년 전 가장 절실한 소망을 이렇게 털어놨다. 한국 전위 미술의 밑돌을 놓은 선구자로, 지금도 작업을 계속 중인 김구림(88) 작가다. 2013년 7월15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생존작가의 초대전시로는 처음 열린 대규모 회고전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개막 전시 설명회에서 감개무량한 어조로 꺼낸 말이었다.
작가가 눈물 흘렸을 정도로 당시 전시의 울림은 컸다. 잊혀가던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대가 김구림을 대중 앞에 화려하게 복권시켰다. 1969년 서울 도심의 일상 이미지를 콜라주한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를 만들고, 1970년 서울 뚝섬 살곶이다리 옆 강둑을 불에 그슬리면서 펼친 한국 최초의 대지예술 ‘현상에서 흔적으로’를 실연했던 한국 전위미술사의 전설적 존재를, 기획자는 도발적인 문제작 위주의 전시틀로 새롭게 환기시켰다.
미술관에 3m 높이 얼음을 몇 톤씩 쌓고, 빨간 천을 둘러놓고 2주간 얼음이 녹아 천의 모양이 변하는 양상을 보여줬고, ‘1/24초의 의미’를 16㎜ 필름 4편으로 복각해 상영했다. ‘1/24초의 의미’는 나중에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사 갔고 국내외 영상 기록물 전문 기관에도 소장됐다. 1968년 만들었으나 국외 전시 중 분실된 국내 최초의 일렉트릭 아트작품 ‘공간구조’도 재현하는 등 전시 작품의 80%를 철저한 고증 아래 재제작했다.
김 작가가 구상하는 것은 가능한 한 모두 실현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준비한 전시는 대성공이었다. 관객이 15만명 이상 몰렸고, 서울시립미술관의 가장 뛰어난 기획전시 가운데 하나로 회자된다. 망실된 과거 초창기 작품들 도판까지 망라하고 면밀하게 선정된 전문가들의 해설이 실린 도록도 절찬을 받았다. 김 작가는 “준비 기간 당시 김홍희 관장, 신은진 학예사와 항상 밀접한 대화를 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옛 기록과 작품 사진들까지 챙기면서 전시와 도록을 만들어줘 너무나 고마웠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11년이 지난 지금 작가는 한국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꿈꿨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가 지난해 이뤄졌지만, 결과는 처참하다. 지난해 8월부터 지난 2월까지 열린 회고전은 준비과정부터 파행이었다. 담당 학예사가 준비기간 중 돌연 교체됐고, 경복궁 안 옛 국립미술관 건물을 천으로 쌌던 1969년 프로젝트 재현에 대한 작가의 요구를 미술관이 가로막으면서 개막 직전까지 출품목록도 확정하지 못했다. 급기야 개막날 언론설명회에서 작가가 미술관을 성토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전시의 기록물인 도록도 말썽이 됐다. 은관문화훈장까지 받은 대가가 지난 2월 초 나온 도록의 작품도판 인쇄상태가 실물과 전혀 다르다며 배포 중단을 요구해, 여태껏 1부도 배부하지 못한 상황이다. 김 작가는 도록 폐기와 재인쇄를 요구했으나 미술관 쪽이 작가 의향을 들어줄 만큼 들어주고 만들었다며 거부하자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국을 떠나겠다는 폭탄선언까지 했다.
결국 김 작가가 도록 내용이 작품 실물의 동일성 유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소송 방침을 통보하자 지난 2일 미술관 관계자가 작가 작업실을 찾아와 해법을 놓고 협상한 끝에 새로 2쇄를 찍는 데 양쪽이 합의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이마저도 작가는 문제가 된 1쇄본을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미술관 쪽은 작가와 협의해 일부 기관에 배포는 해야 한다는 방침을 고수해 합의가 깨지고 소송전이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면 당연히 미술관장이 작가를 만나 대화하며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아직도 관장과 작가는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미술관 학예실 담당자는 “작가가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왔다 갔다 말씀하셔서” 대응을 종잡기 어렵다는 식으로 말했다. 전시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파행이 거듭된 사실이 국외에도 알려져 망신살이 뻗치는 상황인데, 여전히 사태가 온전히 수습되지 않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지난해 역대 가장 많은 340만명이 관람한 국립현대미술관은 관객 수에서 아시아 최대 미술관이 됐다. 하지만 운영 방식이나 소통 역량은 아마추어에 불과한 게 아닐까. 엎질러진 물이지만, 관장이 우선 작가와 담판해 도록 1쇄 처리 방향 등에 대해 제대로 매조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김 작가는 기획자들 사이에서 작품 전시에 대해 까다롭게 자기주장을 밀어붙이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개인적 성품과 취향이 전시 파행을 합리화하는 핑계가 돼선 안된다. 초대한 미술관이 작가와 계속 소통하며 도록과 작품 관리, 홍보 등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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