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돌려줄게’ 속여 점유권 받은 집주인…대법 “사기 아냐”

이슬비 기자 2024. 4. 1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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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집주인이 임차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속여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세입자에게서 받았더라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A씨의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A씨는 본인 소유의 서울 영등포구 오피스텔을 임차보증금 1억2000만원에 전세로 내줬다. 계약은 2020년 8월에 해지됐지만, 세입자는 7000만원만 돌려받았다. 세입자는 임차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비밀번호를 바꿨다. 그러자 A씨는 “은행1일 이체 한도로 나머지 5000만원은 은행에 가서 송금하겠다. 대신 다른 계약자가 오늘 들어오기로 했으니 오피스텔 비밀번호를 공인중개사에게 알려주라”고 했다. 세입자는 잔금을 받지 못한 채 오피스텔 비밀번호를 알려줬고, 새로운 임차인이 해당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세입자는 5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세입자에게 오피스텔 임차보증금을 잔금을 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줄 것처럼 속여 점유권을 넘겨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에서는 세입자가 점유권을 잃은 것이 사기죄의 구성 요건인 ‘재산상 손해’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사기죄는 ‘타인의 재물과 재산상의 이익’을 속여 갈취하는 범죄다.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재물을 내어 주거나 재산상의 손해를 입어야 한다.

1심과 2심은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세입자는 피고인(A씨)의 기망행위에 속아 피고인에게 점유를 이전했기 때문에 사기죄의 재산상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오피스텔 점유권을 넘겨준 행위 자체는 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세입자가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 5000만원이 아닌 A씨 소유 오피스텔에 대한 ‘점유권’을 두고 다툰 사건이다. 대법원은 세입자가 잃은 점유권은 사기죄의 구성 요건인 ‘재산상 손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집주인인 A씨에게 점유권을 넘겨주었다고 해서 세입자가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2년 ‘재물에 대한 사용·수익권은 형법상 사기죄에서 보호하는 재산상의 이익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례에 따라 이같이 판단했다. 대법원은 “재물을 점유하면서 누리는 사용권이나 수익권은 재물과 별개의 이익이라 보기 어려우므로 재물에 대한 사용권이나 수익권은 사기죄에서 말하는 재산상의 이익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A씨는 별도의 부동산·사모펀드 투자 사기 범죄로도 함께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오피스텔 점유권 사기 부분을 파기하는 이상 경합범 관계에 있는 나머지 범죄에 대한 원심 판결도 전부 파기돼야 한다며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A씨 형량은 파기 환송심에서 다시 정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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