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건넌 25살 동갑내기…이정후·페라자는 꿈 꾼다

김양희 기자 2024. 4. 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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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1998년생이다.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 마련을 위해 미국에서 건너온 이는 요나단 페라자(한화 이글스)다.

페라자 또한 내야수로 프로에 입문했다.

한화 이글스가 페라자에 대해 가장 높게 평가한 점도 선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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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 AFP 연합뉴스

똑같은 1998년생이다. 한 명은 일본 나고야에서, 한 명은 베네수엘라 메리다에서 태어났다. 둘은 2024년 태평양을 건넜다. 한 명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한 명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눈치챘는가. 어릴 적 꿈을 이뤄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는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다.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 마련을 위해 미국에서 건너온 이는 요나단 페라자(한화 이글스)다.

#. 이정후는 테어날 때부터 ‘바람의 손자’였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 전 엘지(LG) 트윈스 코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원래 오른손잡이다. 하지만 야구를 하려면 왼손으로 하라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왼손잡이 타자가 됐다. 타고난 왼손잡이였는데도 집안 사정으로 왼손 글러브를 사지 못해 오른손으로 야구를 한 아버지와는 반대다. 이종범 코치는 아들에게 기술적인 면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감독이나 코치에게 배워라”라고 했다. 다만 정신적으로 힘들 때 조언 등을 해줬다. 이 코치는 아들에게 늘 “너는 아빠보다 더 위대한 선수다. 순리대로 하면 된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견뎌내면 그것이 나중에 다 경험이 된다”라고 말해주고는 했다. 이정후는 아마추어 때부터 타격이 잘 안 되면 주차장에서라도 방망이를 휘두르며 타격 연습을 했다.

페라자의 아버지는 베네수엘라에서 소프트볼 선수였다. 포지션은 1루수였다고 한다. 4살 때 처음 방망이를 쳐보고 너무 재밌어서 야구를 시작했다. 페라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야구 연습을 많이 했다. “타격이 좋아서 그쪽으로 조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페라자가 현재의 방망이 실력을 갖추게 된 데는 아버지의 도움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짧고 간결하게 치라”는 것도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올 시즌 초반 페라자가 리그 타격 최상위권에 있는 것도 어릴 적부터 몸에 정립된 타격 폼 덕이다. 페라자의 아버지는 늘 말했다. “야구는 재능보다 열정과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고. 페라자는 경기 때마다 제일 먼저 야구장으로 나와서 배트를 휘두르면서 땀을 흘린다.

한화 이글스 요나단 페라자. 한화 이글스 제공

#. 이정후는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 소속으로 2017년 KBO리그에 데뷔했다. 휘문고에서는 주전 유격수로 뛰었는데 프로로 들어오며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고교 시절 내야수로 실책이 많았다. 송구에도 부담을 느꼈다. 김하성, 서건창 등 팀 내 내야 자원도 풍부했다. 외야수로의 변신은 성공이었다. 그는 신인 첫해부터 외야수로 풀타임을 뛰었고 신인왕까지 됐다. 당시 적장으로 이정후를 지켜봤던 김태형 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고졸 신인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놀랄 정도로 포커페이스였다. 자기 타격에 대한 확신이 있다. 19살이 마치 베테랑처럼 야구 한다. 놀랄 ‘노’자”라며 이정후를 평가했다.

페라자는 2015년 시카고 컵스와 아마추어 선수 계약을 했다. 그의 나이, 열여섯 살 때였다. 2016년 도미니카 서머리그를 거쳐 2017년 마이너리그 루키리그에서 뛰었다. 페라자 또한 내야수로 프로에 입문했다. 하지만 2019년 싱글 A 시절 2루수, 3루수, 좌익수로 뛰더니 2020년 완전히 포지션을 외야로 옮겼다. 풀타임 외야수로 결정됐을 때 그는 울었다. “포지션 변경 다음은 방출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구단 생각은 달랐다. 2020년 컵스 마이너리그 리포트에는 “비교적 체격이 크고, 몸에 지방이 1​​온스도 없는 것처럼 보이며, 가슴과 어깨가 꽤 두껍고, 경기 전에는 엉덩이를 들썩이고 경기 중에는 허슬을 뛴다”라고 되어 있다.

#. 이정후의 최강점은 콘택트 능력이다. 나쁜 공에 방망이가 잘 나가지 않고 어느 쪽으로 공이 오든지 당황하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삼진도 잘 당하지 않는다. 무조건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려고 한다. 이정후는 프로 7시즌 동안 3947타석에서 304차례만 삼진을 당했다. 병살타는 64차례밖에 없었다. 2023년엔 고작 1개뿐(387타석)이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가장 주목한 점도 콘택트 능력과 삼진율이었다. 한국인 선수 포스팅 최고액으로 샌프란시스코와 계약(6년 1억1300만달러)할 수 있던 밑바탕이다.

한화 이글스가 페라자에 대해 가장 높게 평가한 점도 선구안이었다. 나쁜 공을 골라낼 줄 아는 능력에 후한 점수를 줬다. 빠른 배트 스피드도 강점으로 꼽혔다. 발도 느리지 않았다. 페라자는 2023시즌 아이오와 컵스에서 2루타만 40개를 칠 정도로 장타율이 0.534에 이르렀다. 하지만 컵스 외야 자원이 많아서 메이저리그 승격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는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스프링캠프 초청도 받았으나 총액 100만달러 계약으로 독수리 유니폼을 입었다. 그의 목표는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은퇴 후에는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이다.

이정후는 한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페라자는 한국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메이저리그 데뷔 무대를 열려고 한다. KBO리그에서 4년간 뛴 뒤 메이저리그 데뷔 기회를 잡은 메릴 켈리(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떠올리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만약 페라자가 역수출 성공 사례를 연다면 마이너리그의 어린 타자들이 KBO리그를 성장의 장으로 여길 수도 있다. 이정후가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5살 동갑내기의 꿈을 향한 여정을 응원한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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