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척 없는 의·정 대화… 의료계, 총선 후 한목소리 낼까 [오늘의 정책 이슈]

정재영 2024. 4. 1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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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 철회를 요구해 온 의료계가 대통령과의 회동을 기점으로 ‘내홍’이 깊어지면서 의·정 대화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당초 ‘2000명 증원’은 논제가 될 수 없다던 정부는 “2000명에 매몰되지 않겠다”며 다소 유연한 태도로 바뀌었지만, ‘원점 재검토’를 원하는 의료계 입장과는 여전히 차이가 크다. 의료계 일각에서 제기된 2000명 증원 ‘1년 유예’ 안에 대해서도 정부는 “검토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의·정 갈등을 극대화시킬 집단이탈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 절차를 멈춘 상태인데, 의·정 대화가 총선 이후에도 재개되지 않으면 면허정지 절차를 재개할지, 의·정 합의 때까지 장기 유예할지, 아예 행정절차를 그만둘지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의료 관계자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 내홍의 발단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내홍은 지난 4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의 회동 직후 불거졌다. 의료계 인사 제안에 윤 대통령이 “전공의와 대화하겠다”고 언급한 지 사흘만에 이뤄진 회동이 만남 2시간 전에 공지되자 대전협 내부에서조차 ‘밀실 회동’ 등의 비판이 나왔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만남을 알리면서 “2월20일 성명서 및 요구안의 기조에서 달라진 점은 없다. 최종 결정은 전체 투표로 진행하겠다”고 밝혔고, 대전협 비대위는 만남 직후 “7주 내내 얘기했듯 요구안 수용이 불가하다면 그냥 저희쪽에선 ‘대화에는 응했지만 여전히 접점은 찾을 수 없었다’ 정도로 대응 후 원래 하던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다. 오늘 당장 변하는 건 없다”고 수습에 나섰다.

이번 만남을 주선한 대한의사협회(의협) 비대위는 ‘대통령과 전공의 대표간 만남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은 대통령과의 회동이 의견 조율없이 결정된 점과 회동 후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점 등을 문제삼았다.

정부와의 대화를 주도한 의협 비대위는 7일 ‘총선 후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 등과 합동 브리핑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이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합동 브리핑에 합의한 적 없다”고 밝히면서 의료계의 한목소리 내기는 당분간 미뤄진 양상이다.

의협 비대위는 전날 기자회견에선 “최근 의료계 내부의 갈등 상황으로 인해 회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있는 점 매우 송구하다”고 의료계 내홍을 인정하면서도 “최근 의협 회장 선거를 마치면서 대내외적으로 비대위를 흔들려는 시도가 있어 심각하게 우려된다. 비대위는 비대위원장이나 특정인의 의지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전공의 집단사직·이탈 직전인 2월17일 구성된 의협 비대위는 임 당선인 취임 전날인 30일까지 운영된다.

지난 9일 수업이 재개된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빔 프로젝터만 켜진 채로 비어 있다. 지난 4일 기준 전국 40개 의대 중 12곳이 수업을 재개했다. 하지만 수업을 시작한 상당수 의대는 대면과 비대면 강의를 병행 중이다. 연합뉴스
◆‘원점 재검토’와 ‘○년 유예’의 의미

전공의 대표와 대통령간 회동으로 의·정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데 이견은 없다. 의·정 모두 50일을 넘긴 의료계 집단행동의 출구 전략을 고민할 시점이기도 하다. 아울러 의료계가 표면적으로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2000명 증원에 대한 ‘원점 재논의’ 입장으로 수렴한 것 같다.

김성근 의협 홍보위원장은 전날 “의료계가 합의한 통일된 안은 ‘원점 재논의’라는 걸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2000명 증원을 고수해오다 최근 변화를 보이고 있는 정부와 입장차를 좁힐 수 있느냐인데, 그런 면에서 ‘1년 유예’ 안을 둘러싼 해프닝은 의미가 작지 않다.

앞서 김성근 홍보위원장은 7일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하고 2026학년도 적용을 목표로 위원회를 꾸려서 1년간 증원 문제를 논의한 뒤 결과가 나오면 정부와 의료계 모두 따르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8일 브리핑에서 내부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논란이 확산하자

“정부는 의대 정원의 경우, 의료계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통일된 의견을 제시한다면 열린 자세로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입장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 1년 유예안은 내부 검토된 바 없으며, 향후 검토 여부에 대해서도 결정된 바 없다”는 보도 설명자료를 냈다. 아울러 박 차관은 브리핑 5시간30분 뒤 긴급 브리핑을 자청해 “검토한 적 없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고, 대통령실도 유사한 해명을 내면서 진화에 나섰다.

1년 유예안을 제안하고 전공의와 대통령 만남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 김성근 위원장은 전날 “정부에서도 혼란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1년 유예는 원점 재검토라는 걸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조금 다르게 보여질 수도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의료계 통일안은 원점 재검토인데 그 기간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알 수 없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하게 논의하고 결정해 합의할 있는 결론을 도출해 시행돼야 이런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의 ‘원점 재검토’ 입장과 ‘1∼2년 유예’ 안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8800명 행정처분 재개·유예? 

정부는 의료계와의 대화를 위해 전공의 8800여명에 대한 행정처분 절차를 미뤄둔 상태인데, 총선 이후에 대화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면허정지 등 처분을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 윤 대통령이 전공의들에 대한 ‘유연한 처분’을 지시한 이후 당·정 협의가 이뤄질 때까지 행정처분 절차를 유예하겠다고 했는데, 총선 이후에도 의·정간 대화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행정처분 절차를 재개할지, 아예 처분 자체를 의·정 합의 때까지 장기 유예할지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담화에서 ”정부는 의료법 59조 2항에 따른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하고 복귀하지 않은 8800명의 전공의들에 대해 의료법과 행정절차법에 따라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진행하고 있다”며 전공의들이 면허정지 처분 사전통지를 고의적으로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경우 3회까지 재발송해야 하고, 그래도 송달을 거부하면 공시송달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전공의들에게 2차 사전통지가 발송된 상황”이라며 “전공의 여러분, 통지서 송달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의료현장으로 돌아와 주기 바란다”고 현장 복귀를 당부했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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