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가 돈이 부족하다고? 네옴시티 야망이 주춤한 이유[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4. 4. 10. 10: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홍해 바다에서 사막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반짝이는 거대한 벽. 사우디아라비아의 야심 찬 신도시 프로젝트 ‘네옴(NEOM)’의 주거지구 ‘더 라인(The Line)’ 조감도를 기억하시나요.

최근 이 더 라인과 관련해 엇갈린 소식이 들려옵니다. 한편에서는 성공적으로 공사가 착착 진행 중이라는 홍보 영상이 눈길을 끌고요. 다른 한편에선 더 라인 프로젝트의 중간 계획이 크게 축소됐다는 보도가 나왔죠. 한국 기업도 관심이 큰 프로젝트라서 과연 어떻게 진행될지가 궁금한데요. 오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 프로젝트를 중간점검해보겠습니다.
최종적으로 900만명이 거주하게 될 사막의 반짝이는 긴 장벽 도시, 더 라인의 이미지. 네옴 홈페이지
*이 기사는 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2030년 첫 단계 완성”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흙길 위를 한 줄로 달리는 덤프트럭들 모습이 마치 개미들의 행진처럼 느껴집니다. 분주히 움직이는 수십 대 굴착기를 미니어처로 착각할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공사판. 지난 2월 네옴이 공개한 ‘더 라인’ 공사 현장의 항공촬영 영상입니다.
네옴이 2월 짤막한 동영상으로 공개한 더 라인 공사 현장의 모습. 유튜브 화면 캡처
더 라인은 사우디아라비아 서북부 타북 지방에 건설 중인 신도시 ‘네옴’의 주거지구이죠. 길이 170㎞, 폭 200m의 부지에 500m 높이 고층 건물 두 개를 나란히 짓는다는 계획인데요. 서울 송파구와 비슷한 면적(34㎢)에 총 900만명을 수용하는 대단히 효율적인 도시를 추구합니다.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더 라인에선 ‘세계 최대 토공사(Earthwork)’가 현재 진행 중입니다. 또 매주 200만㎥가 넘는 흙이 옮겨지고 있고, 260대의 굴착기와 2000대의 트럭이 연중무휴로 24시간 작업 중이라고도 공개했죠.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솔직히 잘 감이 잡히진 않는 모호한 숫자이긴 한데요. 영상에서 이 프로젝트의 최고개발 책임자인 데니스 히키는 이렇게 말합니다. “더 라인의 첫 번째 단계는 2030년에 완료됩니다. 우리가 약속합니다.”

목표치 대폭 하향?

영상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입니다. “정말 대단하고 흥미롭다”는 찬사와 “이것이 바로 디스토피아”라는 한탄이 동시에 나오는데요(비중은 3대 7 정도). 어쨌거나 영상을 통해 말하려는 건 이거죠. ‘터무니없이 야심 차다고 평가받았던 더 라인, 진짜로 땅 파고 공사 진행 중이다.’

그런데 순조롭게 공사가 진척되는 줄 알았던 더 라인에 대해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더 라인의 1단계 목표치를 원래 계획보다 크게 낮춰 잡았다는 뉴스이죠. 지난 6일 블룸버그가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는데요.

당초 더 라인은 2030년까지 150만명 주민이 거주하는 도시가 된다는 1단계 목표를 잡았죠. 하지만 이젠 2030년 기준으로 거주민이 30만명 미만이 될 것으로 예상치를 조정했다고 합니다. 전체 170㎞ 길이의 선형도시 중 겨우 2.4㎞만 그때까지 완료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죠.

7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이를 확인합니다. 익명의 네옴 전 임원을 인용해 더 라인의 추정인구와 규모가 이전 계획보다 축소됐다고 전하는데요.

네옴 측은 늘 그렇듯 보도와 관련해 아무 입장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정확히 계획이 어떻게 축소됐는지는 알 수 없는데요. 하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원대한 계획이 삐그덕거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은 커집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별명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뜻의 ‘미스터 에브리싱’. AP 뉴시스

“수학 법칙에 어긋나는 프로젝트”

더 라인 프로젝트를 두고 회의론이 불거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규모가 커도 너무 큰 공사이기 때문이죠. 네옴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 있는 마넬 산로마 스페인 로비라 이 비르길리대학 교수가 최근 링크드인에 남긴 글이 인상적인데요. 그는 더 라인을 두고 “물리학, 경제학, 간단한 수학의 법칙에 어긋나는 프로젝트”라며 이렇게 지적합니다.

“엔지니어, 건축가, 컨설턴트는 필요 없고 중학생만 있으면 됩니다. 길이 170㎞×너비 200m×높이 500m의 더 라인은 뉴욕시의 원월드 트레이드센터(높이 541m) 8000개를 지을 수 있는 규모를 자랑합니다. 원월드 트레이드센터 건설엔 7년이 걸렸고 39억 달러 비용과 하루 3500명의 근로자가 소요됐습니다. 더 라인 건설에 5만6000년이 걸리진 않을 수도 있죠. 하루 350만명의 근로자를 투입하면 56년 안에 할 수 있습니다.”
‘수직 도시’를 표방한 더 라인의 어마어마한 규모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네온 홈페이지
물론 이렇게 반문할 수 있습니다. 돈이 넘치는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인데, 돈을 퍼부어서라도 하겠다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네옴 프로젝트 전체 공사비용은 5000억 ~1조 달러라고 보통 얘기하죠. 1단계에 들어가는 비용만 3190억 달러로 추정됐고요. 빈 살만 왕세자는 그중 절반을 사우디 국부펀드인 공공투자기금(PIF)이 댈 거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나머지는 투자를 받든, 어디서 빌려오든 방법을 찾아야 하죠. 그런데 생각보다 이 자금 조달이 만만찮습니다. 즉, 계획대로 진행하기엔 돈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너무 펑펑 써버렸나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계 최고 갑부 중 하나라는 빈 살만 왕세자가 하는 사업인데 돈이 부족해서 걱정이라니. 좀 이상하게 들리나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투자은행 자드와인베스트먼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제임스 리브는 “(네옴을 포함한) 비전 2030 프로젝트 전체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자본 부족”이라고 말합니다.

일단 네옴 프로젝트 비용의 절반을 책임져야 하는 사우디 공공투자기금의 현금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2022년 말 500억 달러였던 현금보유 규모가 지난해 9월 말 150억 달러로 줄어들었는데요. 데이터를 공개한 2020년 12월 이후 최저이죠,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동안 기금을 펑펑 써버렸죠. 각종 스포츠(축구·골프·e스포츠·테니스 등)와 함께 항공·전기차·관광·건강 등 참 다양한 사업에 돈을 쏟아부었는데요. 지난해 전 세계 국부펀드 중 가장 많은 지출규모(315억 달러)를 기록했을 정도이죠.

공공투자기금이 손댔던 사업이 대박이 난다면 걱정 없겠지만, 그렇지가 않죠. 사우디 국부펀드는 이미 54억 달러를 투입한 전기차 기업 루시드가 위기에 몰리자, 최근 10억 달러를 추가로 출자했습니다. 대박은커녕 돈 들어갈 일이 너무 많데요. 공공투자기금이 올해 들어 채권 매각으로 조달한 금액만 이미 70억 달러라고 합니다. 빚으로 메우고 있는 거죠.

또 흔히 사우디 하면 석유수출이 화수분처럼 오일머니를 무한정 퍼주는 줄로 아는데요. 생각과 달리 지난해 사우디 재정수지는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재정적자규모가 GDP의 1.9%에 달할 걸로 전망된다고 하죠. 예상보다 국제유가가 낮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우디 재정수지는 거의 전적으로 기름값에 달려있죠. 브렌트유가 최근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고는 하지만, 사우디가 재정 균형을 이루기엔 한참 부족합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배럴당 108달러는 돼야 재정 적자를 피할 수 있다는데요. 당분간은 재정수지도 적자 탈출이 쉽지 않단 뜻입니다. 사우디 정부는 재정적자가 2026년까지 지속될 거라고 내다보죠. 그동안은 빚(국채 발행)을 내서 버텨야 한다는 뜻입니다.
최근 5년의 브렌트유 선물 가격 추이. 2022년 1월 배럴당 120달러를 찍었던 국제유가는 다시 안정됐다가 최근 90달러선을 돌파했다. 트리이딩이코노믹스

해외 투자 유치 나서지만

그럼 돈 나올 구멍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사우디 입장에서 최선은 해외 투자를 받는 겁니다. 사우디 정부는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죠. 2030년까지 외국인 직접투자를 연 1000억 달러로 늘리겠다는 목표인데요. 하지만 지난해 외국인 직접투자 금액은? 2023년 목표치(220억 달러)에 미치지 못한 190억 달러에 그쳤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투자자를 기다리고 있을 순 없죠. 사우디는 최근 투자유치를 위한 마케팅에 한층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2월엔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네옴 사무실을 열고 월스트리트 투자자 공략에 나섰고요. 이달 중순엔 네옴의 나드미 알 나스르 CEO가 직접 중국 본토와 홍콩을 찾아가 로드쇼를 열 예정입니다. 앞서 소개한 더 라인 홍보 영상 공개도 다 투자 유치를 위한 거죠.

하지만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직까지 해외 투자 유치에서 의미 있는 진전은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금리와 함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중동지역 정세가 불안한 것이 투자자들이 선뜻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로 꼽히죠.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두고 이렇게 꼬집습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아직까진 자기 돈을 사우디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사우디 돈을 가져가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도 네옴 이사회는 새로운 관광지 개발 계획을 계속 추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공개한 네옴 신도시의 럭셔리 리조트 ‘트레얌’의 이미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환상적인 이미지의 리조트 건설 계획이 여러 건 추가되고 있지만, 정확히 얼마의 공사비가 들고, 언제나 개장하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화려한 사진과 홍보문구는 있지만, 손에 잡히는 정보는 찾을 수 없다는 게 네옴 계획의 공통된 특징. 네옴 홈페이지
결국 이런 자금 상황이 더 라인 목표 수정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추측할 수 있는데요. 혹시 그럼 네옴 프로젝트 자체가 이대로 흔들릴 수도 있으려나요?

물론 시니컬한 의견은 예전부터 워낙 많긴 했는데요(가디언 “더 라인은 결코 완료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사우디가 단기간에 공사비를 대지 못할 지경이 될 거라고 보는 이는 현재로서 없는 듯합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쓸 카드가 아직 남았기 때문이죠.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 지분을 시장에 더 내다 팔 수도 있고요(현재 정부가 지분 82%, 국부펀드가 16% 보유).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아직 매우 낮기 때문에(27%), 국채를 한참 더 찍어내도 되죠. 무엇보다 석유 가격이 어쩌면 오를지도?

빈 살만이 ‘탈 석유’를 위해 추진하는 네옴 프로젝트의 성패가 사실 석유 가격에 달려있다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네옴은 과연 두바이를 잇는 또 다른 사막의 기적이 될 수 있을까요. By.딥다이브

사우디는 벌려놓은 일이 많습니다. 2029년엔 네옴의 산악지역 트로제나에서 동계올림픽을 열기로 했고요(인공눈 스키장을 만들 예정). 2030년엔 리야드에서 엑스포를 개최합니다.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이 초대형 프로젝트들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가 궁금하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사우디 신도시 네옴에서 ‘더 라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2030년에 첫 번째 단계 공사를 완료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계획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30년 거주자가 150만명이 아닌 30만명 미만으로 조정됐습니다. 전체 170㎞ 중 2.4㎞만 완공될 거라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더 라인은 규모가 커도 너무 큽니다. 수학적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프로젝트이죠.

-사우디는 현금이 많지 않습니다. 유가가 90달러 수준에 머물러서 재정적자 상태이죠.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해 뛰고 있지만 아직은 큰 진전이 없습니다. 어쩌면 네옴의 성패는 석유 가격에 달렸을지도.

*이 기사는 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