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고 출근해야죠"…줄 선 시민들, 투표소 오픈런 [르포]
"공휴일에도 일하지만 투표하고 출근해야죠" (아파트 경비원 A씨)
"일 마치고 이 시간에 퇴근해 투표하러 왔습니다" (농수산물 도매시장 상인 B씨)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본투표가 진행되는 10일 오전 5시 55분쯤.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투표소 앞에는 시민 5명 정도가 줄을 서기 시작했다. 대부분 한 손에 선거 공보물을 들고 본인의 투표소가 이곳이 맞는지 재차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6시 정각이 되자 투표소 문이 열리며 1명씩 투표소 안으로 입장했다.
이 투표소의 첫 번째 투표자는 인근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69세 남성 A씨였다. 14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A씨는 "법정공휴일인 선거 날에도 주로 근무가 있다 보니 선거 때마다 투표 시작 시각에 맞춰 투표소에 오곤 한다"고 말했다.
A씨는 "국민과 지역 사회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당선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투표했다"며 선거 소감을 밝혔다. 투표를 마친 그는 투표소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다.
오전 6시쯤 퇴근길이라며 투표소를 들른 이도 있었다. 경기도 구리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농산물 도매 일을 한다는 67세 남성 B씨는 어제 오후 5시쯤 시장으로 출근해 밤을 새워 일을 마치고 오늘 오전 4시30분쯤 퇴근했다고 한다.
B씨는 "다른 분들과 밤낮이 뒤바뀐 일을 해서 그런가 사전투표는 해본 적이 없는 것 같고 늘 본투표 일에 투표를 해왔다"며 "퇴근하고 잠을 자러 가야 하는데 투표하는 일을 잊지 않으려고 일이 끝나자마자 달려왔다"고 했다. B씨는 "여야가 싸우지 않고 합리적으로 일하는 국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기 줄이 길어질까 투표가 시작하는 이른 시간에 맞춰 투표소를 찾았다는 이들이 많았다. 투표를 마치고 등산을 갈 계획이라 등산복 차림에 등산 장비를 챙겨 투표소에 온 무리도, 교회에서 새벽 예배를 마치고 투표하러 왔다는 무리도 있었다.
이날 오전 6시부터 7시까지 투표소 앞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대부분 60대에서 70대로 보이는 이들로, 2030세대 유권자들에 비해 눈에 띄게 많았다.
남편과 함께 투표소를 찾았다는 62세 여성 C씨는 "사전투표 기간에는 여행을 가는 바람에 여행 일정상 투표소를 들를 시간이 없었다"며 "오늘은 줄이 길어지기 전에 투표를 마치고 꽃구경하러 가려고 한다"고 웃어 보였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41세 여성 D씨는 "자녀가 중학생이 되는 내년부터는 학업에 열중하느라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질 것 같아 오늘 투표를 일찍 마치고 아들과 꽃놀이를 하러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D씨는 투표를 마치고 투표장 안내문 옆에서 투표 인증 사진을 찍기도 했다.
대단지 아파트에 위치한 이 투표소는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 각각 투표소가 설치돼 있었다. 거주하는 동에 따라 투표소가 구분되다 보니 자신의 투표소를 헷갈리는 주민들도 종종 있었다. 선거관리원은 주민들의 주소지를 확인하고 각자에게 맞는 투표소로 이들을 안내했다. 아파트 주민인 55세 남성 E씨는 "선거 때마다 여기서 투표하는데도 투표소를 헷갈리는 주민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길어진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신기해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사용되는 비례대표 투표용지 길이는 51.7cm다. 38개 정당이 이름을 올리면서 역대 최장 투표용지다. 주부인 56세 여성 F씨는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너무 길어 놀랐다"며 "그래도 어느 쪽에 투표할지 확실히 마음을 정했고 혹시 몰라 투표장에 나오기 전 선거공보물도 다시 확인하고 왔기 때문에 잘 보고 찍었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투표장을 찾은 41세 남성 G씨는 "보통 투표용지를 접을 때 가로로 반을 접으면 도장이 다른 후보자나 정당 기표란에 번져 무효표가 될까 걱정돼 세로로 접곤한다"며 "그런데 이번 비례대표 투표용지는 세로로 한번 접으면 너무 길어져서 세로로 접고도 (가로로) 한 번 더 접었다"고 말했다.
사전투표가 아닌 본투표 일에 투표장을 찾은 이들은 저마다 이유가 다양했다. 남편과 함께 투표장을 찾은 39세 여성 H씨는 "사전투표일에도 어느 후보자와 정당에 투표할지 마음을 정하기는 했지만 요즘 선거판을 보면 돌발 이슈가 많이 생긴다"며 "며칠 사이에 생긴 논란으로 사람 마음이 바뀌어 사전투표의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본투표 일인 오늘 투표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투표하러 온 21세 여성 I씨는 "이번이 첫 투표인데 엄마와 함께 시간 맞춰 인증샷을 찍고 싶었다"며 "사전투표일에는 엄마와 시간이 안 맞아 본투표 일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42세 여성 J씨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쪽에는 사전투표보다 본투표가 믿음직스럽다는 생각이 있다"며 "내 표가 안전했으면 하는 마음에 본투표 일에 관내 투표소에서 투표한다"고 말했다. 78세 남성 K씨도 "사전투표는 믿을 수 없다"며 "사전투표제도가 생겨도 지금까지 꼭 본투표 일에만 투표해왔다"고 전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는 이날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전국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18세 이상(2006년 4월 11일 출생자 포함) 국민이라면 누구나 투표할 수 있다. 투표 시 신분증(주민등록증·여권·운전면허증 등)을 지참해야 한다.
천현정 기자 1000chyun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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