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가꼬 16강 가긋나"…축구 '레전드'도 예외 없던 '독이 든 성배' [스프]

권종오 기자 2024. 4. 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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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스포츠+]


'독이 든 성배'.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을 수식하는 말입니다. 2005년 8월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된 직후 2006 독일 월드컵 공식 홈페이지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Poisoned Chalice)'라고 표현하며 본프레레 감독의 사임을 보도한 데서 비롯됐습니다. '성배'는 천주교 미사 때 포도주를 담는 신성하고 거룩한 잔입니다. 축구 대표팀 감독이 그만큼 대단하고 매력적인 자리이지만, 잘못하면 독을 마시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홈페이지는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 자리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뤄낸 이후 '독이 든 성배'와 같은 자리가 되어 버렸다"고 설명했습니다.

본프레레 전 감독

월드컵 본선 티켓 따내고도 해임된 본프레레

움베르투 쿠엘류 감독이 불명예 퇴진한 뒤 원래 대한축구협회가 생각했던 감독은 브루노 메추(프랑스)였습니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세네갈의 8강 돌풍을 이끈 주역으로 2004년 당시 메추는 아랍에미리트 알 아인 팀의 감독을 맡고 있었습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들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까지 날아가 면접까지 봤고 며칠 뒤 기술위원회에서 메추를 새 사령탑에 내정했다고 발표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연봉 등 구체적 조건을 놓고 협상을 시작하자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영입을 포기하는 촌극을 빚었습니다. 세부 계약 조건에 대한 합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내정 사실을 발표했다가 빚어진 해프닝이었습니다. 대한축구협회의 어설프고 미숙한 대응, 그리고 수준 이하의 행정력과 영입 전략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며 거센 질타를 받았습니다.


메추가 무산된 가운데 축구협회가 부랴부랴 찾은 인물이 조 본프레레(네덜란드)였습니다. 그는 메추, 스콜라리, 매카시, 귀네슈 등 쟁쟁한 지도자들이 포함됐던 1차 후보군에는 없었던 인물이었는데 그의 대표적인 성과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나이지리아의 금메달을 이끈 것이었습니다. 1946년생으로 거스 히딩크와는 동갑내기 네덜란드 사람이었습니다. 본프레레 신임 사령탑이 지휘하는 우리 대표팀은 2004년 12월 부산에서 열린 독일과 평가전에서 3대 1로 승리하는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독일 감독은 위르겐 클린스만. 아시아 국가 최초로 독일에 승리한 것이었습니다.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우리 팀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조에 속했습니다. 경기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경기 남겨놓고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쿠웨이트를 상대로 홈에서 2대 0 승리, 원정에서 4대 0 승리.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는 홈에서 2대 1 승리, 원정에서 경기 종료 직전 박주영의 천금 같은 동점골로 1대 1 무승부를 거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2패를 당했는데 원정에서 2대 0 완패, 안방에서도 1대 0 패배의 쓴잔을 마셨습니다. 본프레레호는 3승 1무 2패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2위로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습니다.

본프레레호는 2005년 6월 쿠웨이트 원정에서 4대 0 대승을 거두고 사우디와 최종전 결과와 상관없이 본선행을 확정했지만 그 이후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다음 달인 7월에 우리나라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에는 한중일 그리고 북한 등 4개국이 출전했는데 개최국인 우리 팀은 2무 1패로 최하위에 머무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중국과 1대 1 무승부, 북한과 0대 0 무승부. 그리고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 마지막 경기에서 1대 0으로 지면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됐습니다. 다음 달인 8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사우디아리비아와 월드컵 예선 최종전이 본프레레 감독에게는 단두대 매치가 됐는데, 설욕을 별렀지만 여기서도 1대 0으로 패배하면서 결국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고도 사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시안컵이 '무덤'이 된 베어벡 감독

본프레레가 물러난 뒤 지휘봉을 잡은 사람은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바로 물러났습니다. 아드보카트의 뒤를 이은 지도자가 바로 핌 베어벡.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인물이었습니다. 베어백이 사령탑에 오르자 국내 축구계에서는 "네덜란드가 다 해 먹는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히딩크,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베어벡이 모두 네덜란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베어벡 전 감독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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