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접수를 돈 내고 한다고? ‘민원대행업체’ 제도권 편입 골머리

2024. 4. 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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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연구용역 의뢰한 금융연구원 보고서
별도법 마련해 신속한 분쟁해결 방법 있지만
“영국처럼 민원처리 유상화, 도입 어려울 것”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 최근 경제적 사정으로 종신보험 계약을 해지하려던 김씨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민원 대행업체’에 대해 알게 됐다. 업체에선 그동안 낸 보험료는 물론, 이자까지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대신 일이 잘 마무리되면 환급금의 10%를 성공보수로 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김 씨는 중도해지로 손해 보는 것보단 수수료를 내는 게 더 이득일 거라고 생각하고 민원 대행을 맡겼다.

금융당국이 보험금을 받아준다며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민원 대행업체’를 잡기 위해 제도권 편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따를 전망이다. 민원대행을 유일하게 합법으로 인정하고 있는 영국의 사례를 연구용역을 통해 살펴보니 국내에 적용했을 땐 사회적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내 민원대행업체는 대법원에서 변호사법 위반으로 판결받았지만, 로펌과 제휴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5일 헤럴드경제가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한국금융연구원의 ‘민원대행업의 제도적 수렴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민원대행업체들은 사익추구를 위해 소비자들에게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도록 유도하고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게 해 보험사기 연루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보고서는 금감원이 한국금융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작성됐다.

현재 보험 민원 대행업체들은 블로그나 온라인 커뮤니티, 자사 홈페이지 등에서 민원 대행 성과 및 민원인을 모집하기 위한 글과 이미지를 게재해 놓고 영업하고 있다. 민원 대행업체들은 주로 ‘민원인이 잘못 가입한 보험의 기납입 보험료를 전액 환급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영업하고 있다.

생명·손해보험협회가 소비자 피해를 우려해 2019년 12월 A업체를 형사고발했고, 대법원은 변호사법 위반죄를 물어 300만원의 벌금을 확정했지만 이들 업체들은 변호사법 위반 소지를 피하기 위해 로펌과 제휴, 변호사를 직접 활용해 여전히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요즘 업체들은 불법인걸 알기 때문에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변호사 사무실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라며 “주로 유튜브 라이브를 켜 모집하거나 ‘불완전판매 증거 부족해도 이렇게 하면 보험민원 수용된다’는 식으로 변호사가 직접 영업하는 사례가 심심치않게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사례 도입 시 국내 반발 우려”

보고서에서는 민원대행업을 유일하게 합법으로 보고 있는 영국의 사례를 토대로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선의 민원 해결 방식은 공적 기구에서의 효율적인 분쟁 해결 능력이지만, 자원의 제약으로 이를 단기간에 실현하기 어려울 경우 영국과 같이 금융서비스업 창설과 인허가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국내의 경우에도 금감원 인력 부족으로 민원 처리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보고서에서는 민원대행서비스업을 창설할 경우 은행, 금융투자, 보험, 비은행금융업 등 주요 금융상품 및 서비스를 포괄하기 위해서는 별도 근거법을 마련해 인가, 건전성, 영업행위, 분쟁조정, 제재까지 포괄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영국의 경우 민원대행업체에 따른 소비자 피해 및 시장 교란에 따른 민원이 증가함에 따라 보상 전반을 다루는 일반법에서 관련 내용을 삭제하고 별도의 법을 입법하고 규제 내용을 강화했다. 국내에서도 기존의 소비자 피해사례, 보상문화의 특징, 금융회사 지배구조 및 시스템 통제 기능이 정착해가는 단계에 있음을 감안해 별도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다만 영국의 경우에는 민원 접수를 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 공식 분쟁조정기구에서 민원 접수 대상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금융감독원이 접수하는 민원의 범위를 한정하기 위해서는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고, 유료 서비스 이용을 강제할 경우 사회적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민원인의 권리 제한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영국처럼 민원 처리를 유상화하는 논의가 구체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원 접수하면 하세월…답답한 소비자 어쩌나

금융당국이 민원대행업의 제도권 편입을 고민한 또 다른 이유는 민원처리 속도 때문이다. 보험 관련 민원 및 분쟁 업무를 담당하는 금감원의 인력은 제한돼 있지만 민원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있어 분쟁 처리기간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결국 소비자들은 더디기만한 민원처리 속도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난해 상반기 금감원이 처리한 민원 건수는 4만8902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1% 증가했다. 분쟁민원 처리 기간은 평균 103.9일로, 91.7일이었던 전년 동기 대비 12.2일 늘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민원을 보험협회에서 처리하도록 해, 금감원의 민원 처리 부담을 덜자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계류중인데 21대 국회에서 진행될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당장 피해는 없어보일 수 있지만, 불필요한 민원을 야기하면 정작 보호가 필요한 소비자에게 소비자보호 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을 수 있다”라며 “소비자는 보험과 관련한 불만 해결을 위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보험사나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sj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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