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동물병원도 전문화 추세
※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반려동물과 행복한 동행을 위해 관련법 및 제도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멍냥 집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반려동물(pet)+정책(policy)'을 이학범 수의사가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
혹시 주변에서 내과·외과·안과·치과·피부과 등 특정 진료과목을 내건 동물병원 간판을 본 적 있나요. 최근 동물병원이 진료과목별로 분화하기 시작하면서 '종합동물병원'이 아닌 '전문동물병원'이 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과동물병원은 백내장 수술을 비롯해 결막염 치료 같은 안과질환만 다룹니다. 치과동물병원은 스케일링, 발치, 신경치료 등 치과질환만 보죠. 예방접종이나 중성화수술처럼 동물병원이라면 기본으로 해야 할 것 같은 진료를 아예 하지 않습니다. 또 반려동물 사료와 용품 등도 판매하지 않죠.
현재 전문동물병원은 전국에 100개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체 동물병원 수(4200~4300개)와 비교해 많은 수라고 볼 수는 없지만 맨 처음 전문동물병원(피부전문동물병원)이 생긴 지 이제 10년가량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전문동물병원, 전국 100여 개
사람은 감기 기운이 있으면 내과나 이비인후과에 가고, 발목을 삐었을 땐 정형외과에 가며, 충치가 생겼다면 치과에 갑니다. 그런데 왜 반려동물은 모든 진료를 한 동물병원에서 보고 심지어 수의사 1명이 처리하는 걸까요. 아마 그동안은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과 수의학 전문성이 지금 같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젠 반려동물 진료에 대한 보호자의 기대치가 커지고 있고, 이에 발맞춰 수의학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수의사 1명이 모든 진료과목에서 최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거죠.
그렇다면 전문동물병원 수의사는 일반 의사처럼 '전문의' 자격을 갖추고 병원을 운영하는 것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일반 병원은 전문의 수련 기준, 전문 과목 표시 기준 등이 모두 의료법에 명시돼 있습니다. 일례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자격이 없는 의사는 '정신건강의학과'라는 말을 병원 상호나 간판 등에 표기할 수 없죠.
반면 수의사는 법으로 규정된 전문의 제도가 없습니다. 한국수의내과학회 '한국수의내과전문의', 한국수의안과연구회 '한국수의안과인증의' 등 개별 학회가 부여하는 전문 자격이 있긴 하지만 법으로 규정된 자격은 아닙니다. 수의대(6년제)만 졸업한 수의사가 안과동물병원, 치과동물병원 등을 개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겁니다. 이때 학부만 졸업한 수의사보다 별도의 수련을 거쳐 전문의·인증의 자격을 취득한 수의사의 전문성이 더 높을 개연성이 큽니다. 따라서 전문동물병원에서 진료받길 원하는 보호자라면 사전에 해당 동물병원과 수의사의 전문성을 미리 알아보고 방문하기를 권합니다.
정부, 전문수의사 법제화 후 2025년부터 배출
이 같은 상황은 조만간 변화할 예정입니다. 전문동물병원 수가 늘어나는 가운데 정부가 수의사법을 개정해 전문수의사에 대한 근거를 법제화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전문수의사 자격을 인정받은 수의사만 병원에 안과, 치과 등 진료과목을 표시할 수 있도록 관련 자격 제도를 도입하는 거죠.정부는 올해 안으로 진료과목 표시 기준을 만들고 대한수의사회를 중심으로 현재 개별 학회에서 운영 중인 전문의 인정 시스템을 새롭게 총괄할 운영조직(umbrella organization)을 설립할 예정입니다. 전문수의사 제도가 잘 정착된 미국의 경우 미국수의사회 내에 전문의제도운영조직(American Board of Veterinary Specialties·ABVS)이 있는데요. 이와 유사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2025년부터는 법적 근거를 갖춘 전문수의사가 배출되고 진료과목 표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부턴 반려동물 보호자가 전문동물병원 간판 등을 통해 전문성을 판단할 수 있을 전망입니다. 내년까지만 보호자 스스로 동물병원과 수의사의 전문성을 확인하는 수고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학범 수의사·데일리벳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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