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전날 만난 '10살 고양이'…살려달란듯 울었다
추운 겨울, 빗자루처럼 삐쩍 말라 있던 고양이
처음 보자마자 뛰어와 '야옹야옹' 데려가달란듯 말 걸고, 몸 기대어
"나이 많아 편한 점 많아요, 손도 덜 가고 찰떡같이 알아듣고요"
[편집자주] 이제는 소중한 가족이 된, 유기동물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 드립니다. 읽다 보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가면 좋아지고, 그리 버려진 녀석들에게 좋은 가족이 생기길 바라며.
'고양이 샴. 수컷. 중성화됨. 회색. 2009년생. 2.8킬로그램. 기력 없음. 피부병. 매우 순함.'
귀가 쫑긋하고 얼굴은 갈색과 흰색 빛깔이 섞인 고양이. 사진 찍을 때 눈을 맞추지도 않은 힘없는 고양이. 녀석은 비쩍 말라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사진으로만 봐도 그랬다.
나이는 10살. 게다가 아프기까지 해 정말 아무도 안 데려갈 것 같았다.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보호 중이라는 경기도 수원의 한 동물병원에, 신영씨가 전화를 걸었다.
"혹시 고양이를 한 번 보러 갈 수 있나요?"(신영씨)
"시간이 없어요. 공고 기한이 다 되어서, 내일 시청에서 동물 수거할 직원이 와요."(병원 직원)
"아…시청에 가면 어떻게 되나요?"(신영씨)
"아마 연계된 동물보호소로 가서 안락사될 거예요."(병원 직원)
문을 열고 들어가 고양이를 처음 만났다. 비쩍 마른 싸리 빗자루 같았단다.
고양이는 신영씨를 보자마자 펄쩍펄쩍 뛰어왔다. 온기가 그리웠는지 신영씨 다리에 몸을 마구 비비었다.
"야옹, 야아옹."
첨 봤으면서.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길 데리고 가라는 듯 말을 걸었다. 가까이서 보니 몸엔 흉터와 상처투성이였다. 길 위에서 지낸 고단함이 느껴졌다. 털은 꼬질꼬질하고 윤기 없이 뻣뻣했다.
그게 다는 아녔다. 호수처럼 파란 눈만은 반짝거렸다. 신영씨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주하는 동안 이리 말을 거는 듯했다.
"저는 아직 살아 있어요. 더 살고 싶어요."
"이리 나이 많고 집에서 키우던 애면 열에 아홉은 뻔해요. 키우다 결혼하고, 아이 낳는다고 많이들 버려요. 결혼하기 전 몇 년은 애지중지 키우다 애 생기면 털 핑계, 시간 없단 핑계로 부모님 집에 갖다 놔요. 동물 키우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 부모님은 떠맡은 동물이 털도 날리고 귀찮지요. 몇 달 후 '얘, 문 열어놨더니 고양이가 집을 나갔더라. 어떡하니' 하고 마는 거죠."
그런 집을 수백, 수천 곳 봤다고 했다.
부디 두 번째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신영씨는 고양이를 보며 그리 생각했다.
"회사가 맞지 않아 퇴사한 사람이 창업으로 대박 날 수 있잖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뒤 더 멋진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요. 한 번 버림받은 동물들은, 왜 '두 번째 기회'가 그리도 어려운 걸까 싶었어요."
첫 번째 삶은 아팠잖아, 두 번째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우리 같이 살자.
고양이를 그리 가족으로 맞아주었다. '노을이'란 보드라운 이름도 생겼다. 많은 이름 중 왜 노을이였을까.
"크리스마스 한 달 전에 데려왔거든요. 프랑스어로 크리스마스란 뜻을 가진 '노엘(Noel)로 지었지요. 그런데 부르다 보니 더 친숙한 우리 말, 노을이가 되더라고요(웃음). 제겐 크리스마스 선물 같고, 털빛이 노을을 닮기도 했고요."
평온한 집에 와서도 눈치를 많이 보았다. 예전 노을이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언가 궁금해도, 신영씨 무릎에 올라오기 전에도, 늘 밑에 앉아서 꼬박꼬박 물어보며 허락받았다. 안 된다고 하면 발을 얼른 떼었다. 맘이 안쓰럽고 짠했단다.
오래 쌓인 믿음이 노을이의 불안을 밀어내었다. 가랑비에 옷이 스며들어 젖듯이. 녀석은 집을 편안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불에 올라와 잠을 자고, 간식을 집사에게 조르며 투정하기도 했다.
"요즘엔 밥 달라고, 화장실 치워달라고 왱알왱알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웃음)."(신영씨)
"그걸 바라셨던 거지요?"(기자)
우선 손이 훨씬 덜 간단다. 나이 든 고양이는 차분하고, 사고도 덜 치고, 홀로 알아서 하는 게 많다고.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데려올 수 있는 것도 좋단다.
"노을이는 낮엔 거의 햇볕 아래 낮잠을 자요. 밥 먹는 시간도, 노는 시간도 확실해 키우기가 편하지요. 바깥 생활로 철이 들어서인지 하지 말란 것도 찰떡같이 알아듣고요. 말이 통하는 어른 친구가 생긴 것 같은 든든한 기분이에요."
순간순간 뭉클하단다. 노을아, 부르면 야옹하고 대답한다. 신영씨가 슬퍼하면 열심히 위로해주는 고양이. 햇볕을 정말 좋아해 종일 쬐다가 차가운 타일에서 몸을 식히는,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즐기는 고양이 어르신.
나이가 든 유기동물 입양을 망설이는 이들을 위한 자세한 이야기였다. 이면엔 바람이 담겨 있다. 이들도 가족을 만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병원비 걱정도 이해한단다. 신영씨는 마음으로 어느 정도 선을 정해두었다. 충분히 나을 병이라면 치료하지만, 예후가 좋지 않거나 노을이가 더 힘들 거라면 아픔을 덜어줄 정도로만 하자고.
"그 말이 혹여나 매정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요. 미래의 병원비를 걱정하느라 다시 사랑 받을 기회를 줄 수 없다면, 그거야말로 매정한 일이 아닐까요. 언제 가더라도 우리 집에서 맛있는 거나 먹이자는 마음으로 데려와도 괜찮은 것 아닐까요."
신영씨가 이어 덧붙인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오늘도 안락사된 동물이 얼마나 많을까요. 몸 누일 공간 하나 없어서, '두 번째 기회'를 얻지 못해서."
에필로그(epilogue).
나이 많은 고양이를 키운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수명(壽命) 걱정을 많이 했어요. 누구든 죽음을 먼 미래의 일로 남겨두고 싶어 하니까요.
그럴 때면 저는, 10년 전에 키운 어린 고양이 '미루' 얘길 해줘요.
미루와는 앞으로 시간이 아주 많을 줄 알았어요. 바빠서 신경을 못 쓸 때도요. 나중에 다 보상해줄 거라 생각했어요.
두 살 넘어 고양이 백혈병에 걸렸어요. 온갖 치료를 해줬지만 시름시름 앓다 고양이별로 갔지요. 약과 사료와 병원비 영수증을 잔뜩 껴안고 울었어요. 정말 아팠던 건, 시간이 많을 거라 여기며 최선을 다해 사랑해 주지 못했단 거였어요.
노을이를 데려오며 사랑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게 됐어요. 오늘 할 수 있는 걸 해주고, 하루라도 더 편히 살게 해주자고요.
20년 키울 거라 생각했던 어린 미루는 2살에 떠났어요. 다음 달에 죽어도 어쩔 수 없단 맘으로 품었던, 마르고 늙은 노을이는 벌써 4년 넘게 저와 살고 있습니다.
'가는 데에는 순서가 없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오늘을 값지게 살 기회를 베풀어 주시기를. 이 글을 읽고 나이 많은 친구들이 더 많이 입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따스한 할머니 같은 최고의 고양이를 키우게 돼 행복하고 기쁜, 노을이 집사 드림.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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