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감행 vs 무기한 연기…'주연 리스크' 터진 작품들의 선택지

오명언 2024. 4.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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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 하면 터지는 주연 배우들의 사건·사고로 빨간불 켜진 작품 수두룩
왼쪽부터 배우 송하윤·유아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만화가 김풍의 유일한 완결작이자 대표작 '찌질의 역사'는 3년 4개월에 걸쳐 연재됐고, 원작자인 김풍이 직접 극본을 맡아 대본 작업에 총 2년 4개월을 쏟아부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드라마는 이미 촬영을 마친 지 오래지만, 현재로서는 빛을 보지 못 한 채 사장될 위기에 처해있다. 주연을 맡은 배우 조병규에 이어 송하윤까지 학폭 의혹으로 대중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다.

수년간 작품에 매달리며 편성일을 기다려왔던 김풍은 송하윤의 학폭 의혹이 터진 다음 날 개인 SNS에 이렇게 심경을 전했다. "미치겠다하하하하......"

10일 방송가에 따르면 잊을 만하면 터지는 연예인들의 각종 사건·사고로 빨간불이 켜진 작품들이 늘어나면서, '주연 리스크'를 떠안게 된 작품들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주연 배우의 도덕적 해이로 위기를 맞은 작품들은 배우를 교체하거나 재촬영하는 식으로 수습됐다.

드라마 '달이 뜨는 강' [연합뉴스 자료사진]

SBS 드라마 '모범택시2'는 전체 촬영이 60% 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학폭 논란이 일었던 에이프릴 이나은 대신 배우 표예진을 투입해 전부 재촬영했고, KBS 드라마 '달이 뜨는 강'은 총 20부작 중 6회까지 방송된 상태에서 학폭 논란에 휩싸인 배우 지수 대신 나인우를 투입해 배우를 교체했다.

그러나 사전 제작이 일반화되는 요즘에는 중도 하차나 배우 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방송 관계자는 "과거에는 국민정서상 사회적 물의를 배우를 방송에서 통편집하는 게 맞았고, 그게 가능했지만, 요즘에는 OTT뿐 아니라 방송사들도 드라마를 사전 제작하고 있다"며 "촬영을 다 마친 상황에서 주연급 배우 한 명을 아예 통편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작품 공개일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리스크를 안고 공개를 감행하는 두 가지 선택지뿐"이라고 짚었다.

'빌런즈' 캐스팅 라인업 [연합뉴스 자료사진]

예컨대 드라마 '빌런즈'는 티빙 오리지널로 지난해 중 공개 예정이었지만 주연 곽도원이 음주 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키면서 공개일이 불투명해졌고, KBS 드라마 '디어엠'도 박혜수의 학폭 의혹으로 편성이 무기한 연기됐다.

다만 글로벌 시청자들을 품은 해외 OTT의 경우에는 주연 리스크를 안고 가는 과감한 선택지도 열려있는 듯하다.

넷플릭스는 프로포폴 등 의료용 마약류를 상습 투약한 혐의 등으로 재판받는 유아인이 출연한 넷플릭스 시리즈 '종말의 바보'를 오는 26일 통편집 없이 공개한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작품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주요한 캐릭터로서 유아인 배우가 등장한다"며 "작품의 흐름을 최대한 해치지 않기 위해 감독, 작가, 제작진 등이 모두 충분한 논의를 거쳐 재편집과 후반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공개됐던 넷플릭스 '사냥개들'도 음주 운전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김새론을 어쩔 수 없이 등장시켰다.

'음주운전 사고' 배우 김새론 벌금 2천만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미 찍은 분량은 최대한 편집했고, 촬영 전인 마지막 부분 대본은 다시 써서 시청자들의 보는 불편함을 덜어냈지만, 중반부까지 중심인물이었던 차현주(김새론)가 외국으로 떠나고 갑자기 새로운 인물이 조력자로 등장하면서 후반부가 다소 산만하게 전개됐다는 지적은 피하지 못했다.

드라마 제작비가 수백억원대까지 이르는 요즘, 배우 한 명의 일탈이 작품 전체에 미치는 피해는 단순히 위약금으로 계산하기 어렵다.

작업에 참여한 수많은 스태프, 배우, 후반 작업 업체, 대행사 등이 줄줄이 피해를 보게 되는데, 전체 작품을 사장하는 것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각에선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방송사는 시청자들이 불특정 다수이기 때문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배우가 출연한 작품을 방송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OTT는 구독자들이 선택해서 보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주연 리스크'가 터진 작품들에 대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나의 작품은 수백명 규모에 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동창작물"이라며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사장되는 것은 엄청난 손해이기 때문에 제작사들은 뼈 깎는 심정으로 대안을 찾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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