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골목서 ‘진실의 노래’…세월호 10주기 4160명 시민합창단

김채운 기자 2024. 4. 1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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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주기-잊지 않았습니다
10주기 무대 오를 시민합창단 연습 현장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4160인 시민합창단 ‘세월의 울림’이 공연을 앞둔 가운데, 3월17일 저녁 7시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공방골목의 동네 합창단 ‘파노라마’ 단원들이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3월17일 저녁 7시,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의 ‘공방골목’에도 땅거미가 졌다. 아직 쌀쌀한 동네 거리를 한 주택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노랫소리가 감쌌다. 다섯살 아이부터 50대까지,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각 성부에 맞게 옹기종기 모여 앉은 주민들이 지휘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를 불러 보길 반복했다.

파주 문발동의 동네 합창단 ‘파노라마’ 단원 25명은 4월16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식 무대에 4160인 시민합창단 ‘세월의 울림’ 일원으로 서기 위해 지난 2월부터 연습을 이어왔다. 4160인 시민합창단 세월의 울림에는, 이름 그대로 시민 4160명이 참여한다. 파노라마처럼 전국 곳곳에서 온 합창단원 700여명이 무대에 오르고, 영상으로 참여하는 시민도 있다. 관객들도 무대 아래서 ‘따라 부르기’로 참여할 수 있다. 12분 동안 6곡을 이어 부른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시민합창단의 연습을 돕는 ‘세월의 울림’ 전체 지휘자 박미리(48)씨가 이날 파노라마의 연습에 함께해 ‘허밍’(콧노래)과 ‘합창’의 의미를 설명했다. “허밍은 위로예요. 다른 선율을 따스하게 안아주는 거죠. 보통 위로할 때 어깨에 손을 바로 얹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 조심스러운 마음이 바로 허밍이에요.” “합창은 한 사람만 다른 리듬을 불러도 어긋나죠. 대신 우리가 마음을 딱 맞췄을 때 그 효과가 어마어마하잖아요. 그래서 옆 사람의 소리를 더 들어야 해요. ‘내 존재감을 보여주겠어’가 아니라 옆 사람에게 기대어 간다고 생각하면 더 아름다워집니다.” 합창은 상처 입은 이들이 서로 다가가 함께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아∼’ 하고 탄성했다.

파노라마는 2015년 결성부터 세월호 참사와 연관이 깊다. 테너를 맡고 있는 ‘원년 멤버’ 조형근(57)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마을 사람들이 중앙공원에 분향소를 세우고, 주민대책위를 만들면서 마을공동체 활동이 굉장히 활발해졌다. 파노라마도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남성 6명으로 시작했던 파노라마는 점점 단원이 늘어, 올해 세월호 기억식 공연을 앞두고는 25명 정도로 불어났다. 조씨는 “원래 3분짜리 곡 하나 끝내는 데 몇 주가 걸리는데, 이번엔 (6곡인데도) 첫 연습부터 완창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함께 힘들어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고 싶었던 기억이 되살아나서인지, 단원들 마음가짐이 달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는 참혹한 슬픔이었으나 그를 통해 맺어진 사람들은 합창처럼 서로의 아픔을 보듬었다. 이날 아들 나무(가명·28)와 함께 연습에 온 장아무개(55)씨의 삶은 16년 전 송두리째 바뀌었다. 초등학생이던 나무에게 갑자기 조현병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3년 동안 아들을 편견 없이 바라봐 줄 돌봄공동체를 찾아 전국을 떠돌다가 파주의 한 대안학교에 아들을 보내면서 파노라마 단원들을 만났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며 나무의 증상 또한 많이 나아졌다. 장씨는 “합창곡 중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라는 가사가 있는데, 딱 그런 마음으로 참여한다”고 했다. 그는 “(나무가) 집중하는 시간이 짧은 아이인데도 매번 2시간 넘게 노래 연습을 하고, ‘끝까지 하겠다’고 말한다. 아이의 발병과 사회적 편견 때문에 그동안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데, 사람들과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이 치유의 시간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4160인 시민합창단 ‘세월의 울림’이 공연을 앞둔 가운데, 3월17일 저녁 7시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공방골목의 동네 합창단 ‘파노라마’ 단원들이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미얀마인 결혼이주여성 미모뚜(46)와 일본인 니카미 유리에(38)도 파노라마 단원이다. 2009년 한국에 온 미모뚜는 한국에서 미얀마 군부 독재에 맞선 민주화 운동을 한다.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 한국지부와 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 집’에서 활동한다. 그에게 세월호의 슬픔은 고국의 슬픔과 이어진다. 미모뚜는 “미얀마에서도 (내전으로)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미얀마 아이들 생각이 난다. 애 엄마로서 (세월호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합창단의 네번째 곡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에 이르자, 이 순간만 기다린 니카미씨의 두 딸 하루(8)와 하나(5)가 눈을 반짝였다. 노래에는 어린이 합창 부분이 있다. 두 아이의 우렁찬 목소리에 어른들은 “너희가 없으면 노래가 완성이 안 돼”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지휘자 박미리씨도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참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합창을 기획했는데, 오늘 연습을 보며 ‘기획과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합창단이다’ 싶었다”며 함께 웃었다.

4160인 시민합창단 ‘세월의 울림’이 전하는 노래는 4월16일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리는 세월호 10주기 기억식 무대에서 공개된다. 세월호 기억식엔 늘 합창이 함께했지만, 4천명 넘는 시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합창에 담긴 의미는 각별하다. 박미라 지휘자는 “5·18에도 6·10에도 모두가 함께 같은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노래에는 정치적 색깔, 배경과 관계없이 함께 추모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누구나 찾아와서 추모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세월호 기억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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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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