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심판하고 미래 염려하는 투표를 [김누리 칼럼]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마침내 22대 총선 투표의 날이 밝았다. 내일의 태양은 오늘과 달라야 한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환멸에서 환희로, 위기에서 기회로, 이제 새로운 태양이 떠올라야 한다.
지난 2년, 뼈저린 경험이었다. 한 표의 가치가 이리도 무거운지 이제야 알겠다. 불과 1%도 나지 않는 차이가 우리의 삶을 이리도 무참히 무너뜨렸다. 아주 작은 차이가 너무도 거대한 위기를 몰고 왔다. 목하, 우리는 총체적 난국의 소용돌이 속에, 절망적 파국의 낭떠러지 끝에 위태로이 서 있다. 지금 벗어나지 않으면, 당장 돌아서지 않으면 미래는 가없는 벼랑이다.
22대 총선은 다른 어떤 선거보다도 중요한 선거다. 이제껏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극단적 위기의 시대를 우리가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다. 지금 우리를 휩싸고 있는 것은 거대한 ‘3중의 위기’다.
첫째, 우리는 사상 초유의 ‘생태 위기’ 시대에 살고 있다. “22세기는 오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인류가 최후의 인류가 될 것이다”라는 경고는 이미 낡은 것이 되었다. ‘2050 거주 불능 지구’라는 무서운 경고도 지금은 낙관적으로 들릴 지경이다. 최근에 나와 큰 주목을 받은 책 ‘브레이킹 바운더리스’는 2030년, 그러니까 앞으로 몇년 내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지구 생태계의 연쇄적인 붕괴는 불가역적이라고 비관한다.
둘째, 지금 우리는 유례없는 ‘평화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위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얄타 체제의 해체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는 중국의 대만 침공과 북한의 핵 위협으로 이어질 ‘연결된 위기’(백승욱 중앙대 교수)의 시발점이라는 분석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정세 속에서 동북아와 한반도는 전쟁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위험 지대로 꼽히고 있다.
셋째, 오늘날은 또한 전면적인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이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과 유럽에서 극우 포퓰리즘의 부상은 ‘민주주의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로 읽히고 있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2세기 이상 존속돼온 ‘근대 민주주의가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경보음이 도처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에선 ‘한국의 도널드 트럼프’(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가 민주주의를 부지런히 부수고 있다.
요컨대,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위태로운 것이다. 지구가 위험하고, 한반도가 위험하고,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이 비상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유능한 정부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이러한 전대미문의 위기를 극복할 능력도, 의지도, 비전도 없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아니, 오히려 위기를 촉발하고, 심화하고,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윤석열 정부는 생태 위기에 대한 최소한의 문제의식도 결여한 채 대한민국을 ‘기후 악당’으로 전락시켰다. 원전 폐쇄와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면서 원전 확대와 수출에 온 힘을 쏟았다. 이 정부는 그것이 인류의 생태적 미래에 미칠 영향을 혜량조차 못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국제 정세에 대한 인식 수준 또한 너무도 우려스럽다. 그는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만들어낸 ‘공산 전체주의’라는 놀라운 말은 그의 무지를 단적으로 폭로한다.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인 한반도에서 여전히 낡은 냉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몽매한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안보 리스크다.
나아가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은 국제적으로 ‘민주주의 종언의 시대’를 상징하는 사례가 되었다. 최근 스웨덴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은 민주주의 최상위 그룹 32개국 중에서 ‘독재화’ 단계에 들어선 유일한 나라다. 군사 파시즘과의 오랜 투쟁 속에서 수많은 희생 끝에 이루어놓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하릴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이 거대 위기의 시대에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키고 있다. 그렇기에 22대 총선의 시대적 의미는 참으로 각별하다. 이번 총선은 우리 시대가 직면한 3중의 위기를 타개하는 극적인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한편으론 무능하고 무도한 정부의 ‘거대한 퇴행’을 심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생태계 파괴와 전쟁 공포로부터 미래 세대를 지켜내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나는 오늘 생태·평화·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려 투표소로 향한다. ‘한 표는 과거를 심판하며, 한 표는 미래를 염려하며’ 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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