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대사’와 ‘불가촉 대사’…윤석열 정부의 가상현실 외교
누가 한중관계의 현주소를 묻는다면,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둘러싼 두 나라의 ‘기싸움’에 그 답이 있다.
지난해 6월 싱하이밍 대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며 일장연설을 하는 모습이 생중계된 뒤 한국 외교부가 싱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고, 중국 외교부는 정재호 대사를 맞초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싱 대사를 “(조선의) 국정을 농단한 위안스카이”에 비유했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신원식 국방장관은 “좌고우면 말고 싱하이밍 대사를 기피인물로 지정해 추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한중 양국을 대표하는 두 대사는 주재국 정부가 상대해주지 않는 사실상의 기피 인물, ‘불가촉 대사’가 되었다. 한국 당국자들은 싱 대사와의 만남을 철저히 피하고, 부대사 격인 팡쿤 정무공사를 상대해왔다. 한 외교관은 “싱 대사로부터 연락이 와도 만나기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정 대사는 최근 부하 직원에 대한 모욕적 언행으로 ‘갑질 신고’를 당하기 훨씬 전부터,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언행을 거듭했고 중국 고위급과의 소통도 거의 차단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 정부 간 핵심 소통 채널이 10개월 내내 두절 상태인 것이다.
최근 중국이 한미일 협력에 대응하려는 자체 전략에 따라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에 동의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한중관계의 문제들이 해결될 수는 없다. 중국의 한 외교 전문가는 “(중국) 당국은 윤 대통령이 중국을 때리는 데 왜 미국보다 더 앞장서냐며 불만이 크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4월 미국 국빈방문을 앞둔 윤 대통령이 대만 문제를 남북관계에 빗대는 발언을 한 것,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중국과의 경제 협력이 끝난 것처럼 공개 발언을 해온 것 등을 예로 들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중관계의 핵심적 문제는 분명한 전략과 목표를 제대로 보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과 관계 악화도 북핵 문제 같은 한국 안보의 핵심적 의제를 논의하다가 벌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이 “자유 진영”의 일원인 “글로벌 중추국가”이기 때문에 “공산전체주의” 진영에 있는 중국을 중시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노골화해 불필요하게 관계만 악화시킨 것이다. 그 ‘자유 진영’의 대표들이자 미국의 핵심 동맹들인 일본, 독일,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행보를 보면 현 정부가 얼마나 심각하게 착각 속 외교를 하고 있는지 명백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중일 정상회담은 성사됐는데 한중 정상회담은 왜 불발되었을까. 한미일이 협력을 했는데, 왜 한중관계만 유독 꽉 막혀 있을까. 일본 외무성의 대표적 ‘중국통’인 다루미 히데오 전 주중 일본대사가 지난 2월 월간 ‘문예춘추’에 기고한 회고록을 보면, 분명한 답이 나와 있다.
지난해 말 주중대사를 끝으로 퇴임한 다루미 전 대사는 40년 가까운 외교관 생활을 모두 중국과의 외교에만 집중한 전문가다. 중국에 주재하면서 최고 지도자부터 반체제 인사까지 1년에 300일 이상을 중국인들과 만났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이 가장 위험하게 여기는 남자’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2021년 12월1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대만의 유사 (사태)는 일본의 유사이자 미일 동맹의 유사”라고 한 발언 때문에 한밤중에 중국 외교부에 긴급 초치된 일로 글을 시작한다. 이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전면 금지 등으로 중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2023년 봄 무렵부터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일본을 향해 ‘전략적 호혜관계’를 회복하자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중국과 일본은 2006년 양국 사이에 ‘전략적 호혜관계’를 추진하기로 했지만 이후 관계가 악화되면서 거의 잊혀진 표현이었다. 다루미 대사는 2020년 중국대사로 부임한 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왕이 외교부장과 만나 “일중관계 개선을 향해 이런 방향이 좋다”고 제안을 했고, 중국 쪽이 호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2023년 8월 다루미 대사는 일본에 일시 귀국해 기시다 총리에게 “중일관계를 재구축하기 위해 전략적 호혜관계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총리의 이해를 받았다고 한다. 베이징에 돌아온 그는 10월23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거행된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5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일중관계에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은 지금도 당시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연설을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오자 왕이 부장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면서, “대사, 훌륭한 연설이었습니다. 반드시 전략적 호혜관계를 재구축합시다”라고 했다. 다루미 대사는 곧바로 이를 도쿄의 외무성 본부에 전하면서 외교사령탑인 아키바 다케오 국가안보국장에게 “왕이와 전략적 호혜관계를 전제로 교섭해달라”고 직접 부탁했다. 일본과 중국의 외교안보 최고 책임자 사이에서 담판이 이뤄졌다. 그로부터 20여일 뒤인 11월1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진핑 주석과 기시다 총리는 1시간 동안 정상회담을 했고 전략적 호혜관계를 포괄적으로 진전시키기로 합의했다.
다루미 대사와 왕이 외교부장이 제안을 주고받으며 소통하고 일본 국가안보국장(안보실장)이 중국과 직접 조율에 나서고 있던 바로 그때, 한국과 중국은 양국 대사를 기피 인물 취급하면서 실질적인 논의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8월20일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이후 한국 고위 당국자들은 “한중관계 관리가 아주 잘되고 있다”고 거듭 주장했고, 조태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시진핑 주석의 방한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박진 당시 외교장관은 중국 대사관 관계자들도 참석한 행사에서 ‘한미일 협력을 강화해야 중국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한다’는 발언을 했다. 중국 대사관 관계자들이 매우 불쾌해했다고 한다. 결국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진핑 주석은 유독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만 거부했다. 미국·일본은 한미일 협력과 동시에 치밀하게 중국과의 외교 채널을 가동했는데, 한국 외교 책임자들은 자신만의 가상현실 속에 갇혀 있었다.
다루미 대사는 회고록에서 현재 중국의 문제도 조목조목 지적한다. “덩샤오핑 시대의 최우선 목표는 경제성장이었지만, 시진핑은 경제 성장보다 국가 안보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며 여기서 비롯된 1인 독재와 미국과의 대립,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 청년 실업, 민영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언급한다. 그는 “나는 중국의 미래에 대해 민주주의적 요소와 법의 지배가 반드시 중요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서, “중국 사회의 변화는 중국인들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지만, 이웃 국가 일본으로서는 인내하면서 전략적으로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중국을 대하는 원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중국의 부조리한 주장에 대해서는 일본의 국익에 근거해 정확하게 반론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비판 일변도도 좋지 않다. 말해야 할 것은 말하면서, 일중관계의 안정 그리고 발전을 향한 발걸음은 결코 멈출 수 없다. 그것이 외교관으로서 내가 유의해온 것이다.”
일본만이 아니다. 파이브 아이스, 오커스(AUKUS) 등으로 미국과 겹겹으로 촘촘한 안보동맹을 맺고 있는 호주는 차근차근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 2018년 호주가 5세대 이동통신망 사업에서 중국 화웨이를 배제하고 2020년에는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요구하자, 중국은 호주산 와인, 쇠고기, 석탄 등에 고율 관세를 물리면서 양국 관계는 극도로 험악해졌다. 하지만 2022년 취임한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자국의 외교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중관계를 매우 실용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유럽 국가들도 미국과 손을 잡고 중국과의 ‘디리스킹’을 추진하면서 공조해왔지만, 중국과 관계를 유연하게 관리한다. 특히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지자, 중국과 소통을 늘리면서 플랜비(B) 외교에 힘을 쏟고 있다.
오랫동안 미뤄져 온 한중일 정상회의가 5월 서울에서 열린다면 대중 외교의 출구가 열릴 수는 있겠지만, ‘자유’의 깃발을 휘날리며 돈키호테처럼 돌진하는 윤 대통령과 주변 강경파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 외교의 위기는 풀리지 못한다. 왜 한국만 유독 ‘왕따’ 처지로 몰렸는지 윤 대통령은 과연 관심이나 있을까.
박민희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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