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돌아오라” 했던 국립중앙의료원 주영수 원장의 작심 발언
3월17일 일요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의대 정원을 2000명 확대한다는 정책이 발표된 이후, 주영수 원장은 발언을 자제하며 병원이 정상적 진료를 유지하게 하는 데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1개월이 넘어가고 급기야 의과대학 교수들까지 사직서 제출 결의에 나서자, 의료계 내에 상당한 책임을 가진 국립중앙의료원장으로서 ‘역할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밤을 고심하며 입장문을 작성했다.
마이크 앞에 선 주영수 원장은 간곡한 어조로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의대 교수들에게는 책임감 있는 자세를, 전공의들에게는 병원 복귀를 호소했다. 그가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유언비어가 곧바로 의사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주영수 원장은 따지자면 전 정권 인사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획조정실장으로 국립중앙의료원에 합류해 2022년 1월 원장에 임명되었다. 그에 앞서 20여 년간은 예방의학자로서 공공의료 분야와 정책 연구에 매진해왔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진보적 의사단체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의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인의협은 정부보다 앞서 의사 수 늘리기를 주장해왔지만 지금의 의대 증원에는 지역·필수 의료로 의사를 보낼 방안이 부재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영수 원장은 오랜 기간 뜻을 같이해왔던 인의협 의사들과도 다소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비어 있는 곳이 많지만 정부가 의대 증원과 함께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한국 보건의료 체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흐름과 맞닿아 있는 정책이다.”
어떤 면에서는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는 일련의 개혁 시도가 흐트러져버리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그를 인터뷰 자리로 불러냈다. 3월26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연구동에서 2시간 동안 주영수 원장을 만났다.
발언 하나하나가 민감한 상황이다. 꼭 전달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나?
이번 사건이 단순히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이슈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한국 보건의료 정책의 변화 흐름 속에서 생긴 사건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문제의 본질이 드러난다.
어찌 보면 정부의 성격과 맞지 않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시장 주도 시스템으로 국정을 운영하려는 정부이고, 의료 영역만 하더라도 민간 의료기관을 중심에 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의 정책 기조와 매우 동떨어진 방향의 보건의료 기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고유한 철학과 확고한 의지에서 출발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기존 보건의료 체계가 한계에 부딪혔고 그 결과 응급실을 찾아 헤매거나 대형 병원 간호사조차 원내에서 뇌출혈로 사망하는 사건처럼 필수의료 분야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은 그런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제시된 것이다.
2월6일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발표에 앞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보건복지부는 몇 차례에 걸쳐 정책 시리즈를 내놓았다. 10월19일 ‘지역 완결적 필수의료 혁신 전략’이란 이름으로 핵심 의제를 제시했고, 올해 2월1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서는 세부 실행 과제를 포괄적으로 담았다. 2월2일에는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그동안 보건의료계에서 논의해온 것을 진일보한 수준으로 망라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한국 보건의료의 발전 단계에 부합하는 내용이다. 개혁적 보건의료단체들과 달리, 제가 이번 정책들에 덜 비판적인 이유이다. 전체 패키지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방향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의대 증원은 이 일련의 정책 구상에서 핵심 전략 가운데 하나다. 시장중심적이고 친(親)의사적인 보수 정권에서 2000명이라는 수치를 과감하게 제시했다. 이것은 전향적 시도라고 평가하고 싶다.
한국 보건의료 체계가 어떤 단계에 와 있다는 건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임계점에 다다랐다. 첫 번째는 민간 주도의 의료 공급으로 필수의료 영역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점에 와 있다. 필수의료 사각지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불확실성이 적은’ 고난도 환자들은 대형 민간병원에서 충분히 잘 보고 있다. 중증이라서 어렵기는 하지만, 진료나 수술 등 치료 일정을 미리 계획할 수 있는 암환자가 여기에 속한다. 민간은 수익이 많이 나는 분야로 몰려갈 수밖에 없고 이 영역으로 나날이 특화되고 있다.
반면 ‘불확실성이 높은’ 고난도 환자들은 민간 의료시장에서는 ‘잔여적인’ 영역이다. 중증 외상, 심뇌혈관 질환(뇌출혈, 심근경색 등)처럼 언제 벌어질지 모르지만 생기면 응급이고 생명이 경각에 달리는 문제들이다. 흉부외과, 신경외과, 심장내과 같은 과목이 여기에 해당한다. 시간대가 맞아서 마침 그 과목 의사가 병원에 있으면 수술해서 살리고, 운 나쁘게 빈 시간에 걸리면 사망하고, 이런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 소위 ‘빅5’라고 하는 대형 병원 중에 국립대인 서울대병원을 제외하면 고난도 외상 환자를 거의 보지 않는다.
이 빈틈을 일부 공공병원이 위태롭게 채워왔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서울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지역에서 가장 많은 외상 환자를 치료하고 살린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다. 그런데 전체 병원의 5%밖에 안 되는 공공병원으로 이 틈을 메우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코로나19를 거치며 그나마 있던 공공병원의 역량도 소진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런 환자들(불확실성이 높은 고난도 환자들)을 치료하던 의사들이 병원을 다 떠났다. 국립중앙의료원만 해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동원된 몇 년 사이 심혈관계 시술을 하는 전문의가 나갔다.
다른 한 측면은 무엇인가?
국민건강보험이 재정 측면에서 임계치에 도달했다. 한국의 GDP 대비 경상의료비 비율(9.7%)이 지난해에 드디어 OECD 평균(9.5%)을 넘어섰다. OECD 회원국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뜻이다. 한국은 의료비를 적게 쓰면서도 좋은 건강지표를 유지한다는 것이 그간의 인식이었다. 이제는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몇 년 내에 지출총액이 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차오를 것이다. 한국 의료가 세계적으로 상당한 효율을 자랑해왔다면 그렇지 못한 상황으로 넘어가고 있다. 우리 보건의료가 놓여 있는 위치다.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필수의료 정책들이 어떤 점에서 한국 보건의료의 단계에 부합하나?
보건의료의 여러 영역을 아우르는 내용이 다층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기존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봐야 하는 정책들이다. 예를 들어 2월1일 발표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부분에는 세부 정책 가운데 하나로 ‘혼합진료 금지’와 ‘실손보험 개선’이 제시되었다. 백내장 수술, 도수치료처럼 과잉 진료가 만연한 비중증 영역에 대해 급여(건강보험)와 비급여(손실보험) 진료를 동시에 하지 못하도록 막는 정책이다.
손실보험의 도입으로 비급여 시장이 팽창하면서 병원에 있어야 할 필수의료 인력이 금전적 인센티브가 높은 개원가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없어서 병원에선 수술방을 돌리지 못하는데, 동네 골목마다 통증의학과 의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을 아무리 높여줘도 손실보험에 기반을 둔 비급여 시장이 무한정 커진다면 이 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는 판단이 이 정책 패키지에 깔려 있다. ‘혼합진료 금지’의 실제 목적을 두고 여러 논쟁이 일지만, 적어도 현재 보건의료 구조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책 패키지에 비어 있는 부분이 있고 이해집단에서는 이견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부족하니까 백지화해라’가 아니라 ‘비어 있는 곳을 채워라’고 비판적 지지를 할 만한 수준의, 나름 잘 짜인 구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정책들은 누가 만들고 있는 건가?
보건복지부에서 모두 발표하고 있다. 사무관에서 시작해 과장, 국장으로 올라가며 전문성을 쌓고 역량을 키워온 공무원들이 있다. 그 시간이 축적되면서 한국 보건의료 정책도 점점 성숙해져왔다.
정권과 무관하게 유능한 관료 그룹이 복지부 내에 있다는 뜻인가?
특정 그룹이 있다기보다는 보건의료 체계가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르니 그걸 풀기 위해서 정말 내실 있는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시점이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정책 패키지에 협력 네트워크 보상, 중증·필수 인프라 적자 사후보전 등 ‘대안적 지불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가만히 뜯어보면 사실상 ‘총액예산제’에 가까운 성격을 갖는 정책까지 있다. 의사들이 가장 달가워하지 않는 변화가 지불제도(의료비 지급 방식) 개편이다. 지금의 행위별 수가제(의료 행위마다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 아래서는 필수의료 공백 해소, 의료비 상승 억제, 적정 진료 정착 등 보건의료의 문제를 풀 방법이 없으니 개혁적 성격이 다분한 정책도 정부가 더는 미뤄둘 수 없는 것이다.
필수의료 정책 시리즈에서 비어 있다고 보는 부분은 어디인가?
앞서 민간 병원만으로는 필수의료 보장이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설명했는데, 바로 여기가 비어 있다. 민간의료로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을 채우도록 공공의료를 키우는 방안이 없다. 전체 의료기관의 95%를 차지하는 시장의존형 의료 공급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그 안에서 고민하니까 미흡한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28년까지 건강보험 재정 10조원을 필수의료 수가를 높이는 데 쓰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피부·미용, 통증치료 등 비필수적 부문에 비해 현저히 낮은 보상 수준을 높이면 민간 병원으로도 필수의료 사각지대를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접근이다.
한계가 있을 거라고 본다. 민간 의료시장은 한정된 자원을 선점하려고 경쟁하는 생존 환경 속에 있다. 필수의료 보장을 일부 보완할 수 있지만 민간 중심 공급 구조로는 안정적으로 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시장 메커니즘과 무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공급자 구조’가 보건의료 영역에 일정 비율 이상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공공 의료기관의 비중이 얼마 정도 돼야 한다고 보나?
공공병원 비율이 일본 18%, 미국 23%, 유럽은 평균 50% 이상 된다. 한국은 5%이다. 적어도 20%까지는 공공의료 규모가 확대돼야 한다.
이번 정책에도 들어가 있고 그전부터 보건의료 분야에서 오랫동안 누누이 강조돼왔던 것이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이다. 의료기관을 1차·2차·3차(동네의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로 나누는 피라미드형 의료전달체계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17개 대진료권으로 나뉜다. 대진료권마다 피라미드형 구조의 정점에 국립대 병원을 두고 가장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을 보게 했다. 권역책임의료기관으로 권한도 갖는다. 찬성하는 바이다.
문제는 허리급인 2차에 공공병원 비중이 매우 낮고, 있어도 상당히 허약하다는 점이다. 절대 다수가 민간이 운영하는 전문병원, 종합병원이다. 이 허리급에 공공을 많이 넣어줘야 한다. 최소한 5개 중 1개꼴로 공공병원이 있어줘야 보건의료 정책이 지역까지 도달할 수 있다. 진료권은 17개 대진료권 아래 다시 70개 중진료권으로 나뉜다. 공공에서 2차 병원 역할을 하는 곳이 지방의료원인데 전국에 35개밖에 되지 않는다. 중진료권 70개마다 하나씩은 자리를 잡아야 한다.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대학병원 진료가 대폭 축소된 상황인데도 환자들이 공공병원을 찾지 않는다. 필수의료 중추를 담당하기에 공공의료의 역량이 많이 뒤처지지 않았나?
공공의료 인프라를 강화하는 정책에는 세 가지가 포함돼야 한다. 첫 번째, 지방의료원 수 확대. 두 번째, 공공병원 기능 보강. 세 번째, 중진료권의 지역의료 거버넌스 권한 부여.
지방의료원에 평균적으로 10개 진료과목이 개설돼 있다. 필수과의 상당수가 전문의 한 명으로 운영된다. 이 사람이 오전 9시에서 저녁 6시까지 일한다고 치면 외래진료는 되겠지만 하루 24시간의 나머지 3분의 2는 그 자리가 비어 있는 셈이다. 이래서는 ‘불확실성이 높은 고난도 환자’를 받을 수 없다. 진료 과목별로 최소 의사 3명은 갖춰져야 한다. 3명이 너무 급격하면 단계적으로 2명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기능 보강의 일차적 의미는 필수진료과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인력 충원이다. 이차적으로는 양질의 의료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인력과 장비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환자도 없는데 의사를 과마다 3명이나 뽑아서 어디에 쓰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 내에 충족되지 못하는 필수의료 수요는 분명 존재한다. 처음에는 파리 날릴 수도 있지만 인프라 구축에서 출발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동안 보건의료가 절대적으로 민간에 의존하면서 시장 효율성에 대한 오래된 환상이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 어디선가 한 번은 끊어줘야 한다. 공공기관이 가질 수 있는 비효율은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운영 과정에서 끊임없이 관리해나가야 한다. 그게 순서가 맞지, 비효율만 지적해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러면 임계치의 문제를 절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뿐만 아니라 찬성하는 소수의 의사들조차 늘어난 의사 인력을 필수의료·지역의료로 유입시킬 정책 설계가 부족하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진보적 의료단체가 주장해온 것처럼 의무 복무를 강제하는 지역의사제가 병행되었다면 더 효과가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000명 증원의 대부분(82%)을 지역 의대에 배정하고 지역인재전형으로 60% 이상 선발하도록 한 지금 정책도 실효성을 발휘할 거라고 본다. 지역에서 성장해 지역 의과대학을 나오고 거기서 수련을 받으면 해당 지역에 남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증명된다. 지역에 남을 의사 배출은 이 방식으로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의사들이 필수의료 영역으로 갈 것인가? 그건 보장하기 어렵다고 본다. 기존 의과대학에 학생 수를 늘려도 졸업 후에 필수의료로 유도할 방법이 없다.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야 하는데 일부는 필수의료를 지망하겠지만 적극적으로 필수의료 인력을 배출하는 방식은 아니다. 필수의료 환경과 이 분야 의사들에게 돌아가는 대우가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종합병원의 흉부외과, 신경외과 같은 필수과목 진료는 기본적으로 어렵고 위험한 영역이다.
별도의 양성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공공의대가 필요한 이유이다. 선발할 때부터 지역의료와 필수의료에 종사할 일정한 의무를 부여하되, 국가에서 의대 교육과 수련과정에 책임을 지고 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신설된 공공의대는 필수의료에 좀 더 적합하게 구성된 교육 커리큘럼 위에서 운영될 수 있다.
공적인 의사 양성기관 신설에 의료계의 반감이 상당하다. ‘성적 안 되는 애들 의사 만들려는 것’이라는 망언까지 나온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자칫하면 공공의대를 나온 의사들이 2류로 낙인찍힐 위험도 있어 보인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되묻고 싶다. 전교 1등이 의대 가야 좋은 의사가 되는 건가? 제 또래나 윗세대를 보면 반에서 1등 하는 사람이 의대에 가지 않았다. 좋은 의사는 입학 성적이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과 양질의 수련 과정으로 키워내는 것이다. 공공의대가 생기면 정말 ‘작정하고’ 최고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공공의대에서 배운 의사들은 믿을 수 있다’라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돼야 한다. 의료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진 학생들에게 적합한 분야이다. 그리고 현재 의대 입시 환경에서 상당한 경쟁을 뚫은 상위권 학생들이 현실적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서 국립중앙의료원의 역할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해 10월19일 발표된 ‘필수의료 혁신 전략’에는 국가중앙의료 네트워크의 두 축으로 서울대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암센터가 제시됐다. 공공 인프라와 응급·재난 체계를 총괄하는 권한이 국립중앙의료원에 맡겨졌다. 그러나 올해 2월 내놓은 정책 패키지에 후속 계획이 포함되지 않았다. 필수의료 문제를 풀기 위해선 보건의료 분야에 공공의료 체계가 확립돼야 한다. 이 계획이 구체화 단계를 거쳐 실현된다면 큰 정책적 효과를 거둘 것이다.
하나 더 말씀드리면 공공의대가 설립될 경우 국립중앙의료원을 비롯해 국립암센터·국립재활원·국립정신건강센터 같은 공공 의료기관이 국가 중앙수련시스템 기능을 할 수 있다. 필수의료 인력 양성에 최적화된 전공의 수련기관이 될 수 있다. 지방의료원들까지 체계에 포함된다면 지금의 대학병원과는 또 다른 풍부한 교육·수련 환경이 갖춰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정권 성격상 공공의료의 역할을 강조하고 기능을 강화하는 아이디어가 정책에 수용될 수 있을까?
(한숨) 그래서 ‘공공’을 일부러 안 넣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은 분명하다.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통해 달성하려 했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공공의료를 우회할 수는 없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 의지를 의심한다. 총선이 지나면 관심에서 밀려나리라고 보는 것이다.
한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그런데 정책에는 그 자체로 구속력이 있다. 선언한 이상 전혀 안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시범사업까지는 할 거라고 본다. 지난 정부는 이만큼도 하지 못했다. 의대 정원을 400명 늘리는 것도 막혔다. 자조 섞인 얘기지만 이번 일을 보면서 ‘국정 철학이 있다고 실현되는 게 아니구나, 정책은 이렇게 추진되기도 하는구나’ 싶다. 현 정부의 남은 임기를 고려하면 필수의료 정책들이 시범사업 이후 단계까지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책의 결실을 맺는 건 다음 정부의 몫이다. 보건의료 정책은 여지껏 이렇게 이어져왔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