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6반 권순범 학생 누나 김소리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95]

2학년 6반 권순범 학생의 누나 김소리씨(34)는 표정을 숨기며 살아왔다. 엄마들에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괴로울 때면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울었다. 참사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남 일 듣는 것처럼 모른 척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다.
“4월이 되면, 집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어요. 이맘때쯤이면 노란 현수막이 거리에 많이 걸리죠. 동시에 확성기를 단 차량이 안산 일대를 돌면서 혐오 발언을 크게 틀어놓고 다녀요. 매년 반복이에요. 종종 안산을 떠나고 싶어지죠. 차라리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편할 것 같아요. 근데 이런 생각을 하면 동생한테 너무 미안한 거예요. 잊지 않겠다 해놓고, 제가 너무 힘들고, 살고 싶어서 잊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죄책감이 들어요. 그럴 때마다 동생한테 찾아가서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죠.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혹시 동생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페이스북에 제 연락처를 남겼어요. 끊임없이 장난 전화가 왔어요. 악의적인 말들과 혐오 발언들을 1년 내내 들었어요. 언젠가 광장에서 친구를 만난 적 있는데, 어떤 분이 저를 찍은 사진을 보내고는 ‘동생 죽어서 슬프다면서 왜 웃고 있냐’라는 메시지도 보냈어요. 무서웠어요. 동시에 ‘나는 웃으면 안 되는구나, 계속 이렇게 숨어서 살아야 하나 보다. 유가족은 힘들어야 하고, 아파야 하고, 불쌍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죠.
32㎏까지 살이 빠졌었어요. 대인기피증 때문에 대부분 집에만 있었어요.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엄마가 다그쳤어요. 왜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냐고, 너는 아무렇지도 않냐고요. 그때 너무 화가 나서 제 티셔츠를 들춰 보였어요. 나 보이냐고, 밥을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했어요. 아마 그때 엄마 눈에는 제가 안 보였을 거예요. 이제는 이해가 가요. 엄마도 유가족 활동에 몰입해야 했던 거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을 테니까요.
저는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남편한테 처음으로 ‘너 괜찮아?’라는 말을 들어봤거든요. 세월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제 생각과 안부를 먼저 물어봐준 유일한 사람이에요. 동정하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너가 많이 힘들었겠다’고 했죠. 엄청난 위로였죠. 그래서 제가 프러포즈했어요. ‘마음고생 안 시키겠다, 열심히 살겠다, 그러니까 함께해줬으면 좋겠다’고요. 그러니까 남편이 ‘같이 행복해지자’고 했어요.
행복하게 ‘살자’가 되니까 동생한테 조금씩 떳떳해지고 있어요. 동생은 살고자 했지만 살 수 없었고, 저는 살 수 있는데 죽으려 했잖아요. 하지만 이제 열심히 살고 있으니 그 미안함은 없어졌어요. 미안한 게 너무 많지만 그래도 한 가지 미안함은 사라졌죠. 동생도 마음이 조금 놓일 것 같아요. 이젠 너무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도움을 요청할 줄도 알아요. 울고 싶을 땐 참지 말고 울어야 하더라고요. 이젠 ‘다 지나갈 거야, 괜찮아질 거야’라는 생각을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됐어요.”

박미소 기자 psalms27@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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