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청소’란 국가범죄의 진실[신간]
고립된 빈곤
박유리 지음·시대의창·1만8000원
우리는 열심히 빈곤을 청소했다. 달동네를 밀고 아파트를 지었다. 남루한 동네가 번듯해지면 빈곤이 사라진 듯했다. 1987년까지 또 다른 방법도 동원했다. 군사정권은 거리에서 빈곤해 보이는 이들을 붙잡아 수용시설로 보냈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1년부터 도시정화를 목적으로 부랑인 단속을 강화하자 형제복지원은 거리에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붙잡아왔다. 정부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복을 입고 아빠 심부름을 나간 소녀가, 술에 취해 거리에서 잠을 자던 아빠가, 여관비를 아끼려 역에서 밤을 지새우던 사람이 끌려와 하루아침에 수용자가 됐다. 나가게 해달라고 하면 매타작이 시작됐고, 탈출하다 붙잡히면 죽을 듯이 맞았고, 죽었다. 서로 때리고 구경하게 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이곳에 5만명 넘게 감금당했고, 그중 657명이 숨졌다. 언론인 출신의 작가는 피해자, 생존자를 10년 넘게 인터뷰해 사건의 진상을 기록했다. 작가는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본질을 국가가 주도한 ‘빈곤 청소’라고 봤다.
기업의 세계사
윌리엄 매그너슨 지음·조용빈 옮김·한빛비즈·2만2000원
기업을 번영의 원동력이라 보는 이도 있지만, 이윤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집단이라고 여기는 시선도 있다. 저자는 기업의 역사를 보면 이런 상반된 시선을 모두 갖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책은 기업의 원형이라고 할 고대 로마의 소치에타스를 먼저 소개한다. 정부를 대신해 세금 징수, 도로망 구축 일을 맡았던 소치에타스는 속주 시민을 노예로 삼는 등 탈법적 행동으로 로마의 몰락을 앞당겼다.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모았던 대항해시대 동인도회사와 현재의 스타트업까지 기업의 진화를 살핀다.
왕의 수명을 줄여라
편용우 외 지음·흐름출판사·1만8000원
조선시대의 중범죄 재판인 추국에 대한 법정 속기록인 <추안급국안>에 상상력과 통찰을 더해 재구성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경직된 계급사회에 균열을 내려 한 이들의 사연이 담겼다. 속기의 특성상 이두를 적극 사용해 현장감이 살아 있다.
시간의 물리학
존 그리빈 지음·김상훈 옮김·휴머니스트·1만6700원
천체물리학자인 저자가 SF 속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상대성이론, 블랙홀, 멀티버스 등의 연구로 시간여행의 과학적 실체를 탐구한다. 시간여행은 진지한 과학적 연구 대상이며 SF는 재밌는 이야기를 넘어 물리학적 사고실험이라고 강조한다.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신경림 외 지음·창비·7000원
창비시선이 50주년을 맞아 출간한 기념시선집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함께 출간한 특별시선집이다. 시인들이 직접 즐겨 읽는 시를 모았다. 시를 사랑하는 독자를 위한 선물이자, 시가 어렵기만 했던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마중물이 된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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