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류현진 형이 꼭 성공할 거라고 격려해줘요”

배준용 기자 2024. 4. 1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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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복덩이 외인 타자’ 페라자 인터뷰
4월 9일 한화 이글스 타자 요나단 페라자가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배트를 어깨에 메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안냐세요. 헤~.”

홈런을 치고 크게 포효하며 ‘빠던’을 하던 그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깍듯이 목을 숙이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공손한 한국식 인사를 했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폭발적인 활약과 화끈한 세리머니로 시즌 초반 한화 이글스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베네수엘라 출신 타자 요나단 페라자(26). 그를 9일 서울 강남 한 호텔에서 만났다. 페라자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땐 머리를 숙이는 인사 방식이 충격적이면서도 재미있었다”며 “한국말 중에 ‘안녕하세요’가 제일 재밌다”고 했다.

근육으로 다진 탄탄하고 큰 체구 탓인지 실제 키(175cm)보다 훨씬 커 보였다. “몸은 타고난 거냐” 물으니 “원래는 마른 체형이었는데 미국에서 선수 생활 할 때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페라자 활약은 예사롭지 않다. 14경기를 치른 9일까지 타율(0.415), 홈런(6개), 출루율(0.508), 장타율(0.830) 전체 1위, 안타(22개)는 2위다. 한화 팬들은 ‘복덩이’ ‘특급 외인’이라 부른다. 시즌 초 한화 7연승 중심에도 페라자가 있었다. 그는 “올 시즌 한화는 분명 다르다. 가을 야구에 꼭 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금 성적? 코치, 동료 선수들에게 배운 덕분”

지난 7일 키움과 벌인 경기에서 파울 타구에 발등을 강하게 맞았는데 그 상태에서 안타를 치고 절뚝이며 1루까지 간 뒤 교체됐다. 페라자는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괜찮다. 트레이너들 덕분에 빨리 회복됐다”고 말했다. 시즌 초반 맹활약 비결을 묻자 “코치님들과 동료 선수들에게 많이 배운 덕분”이라며 “매일 새로운 하루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훈련하고 있고, 지금 루틴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해 똑같이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홈런을 칠 때 배트를 던지며 환호하는 세리머니에 대해선 “계획해서 한 건 아니고, 그 순간 아드레날린이 솟았던 것 같다”며 “에이전트가 한국에서는 ‘배트플립’이 허용된다고 하더라. 경기의 일부분이라 생각해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팀 사기를 끌어올리려는 의도도 있다고 한다.

4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7회말 무사 1루 때 안타를 쳐낸 한화 페라자가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요한 타석에 들어설 땐 잠시 눈을 감고 명상하는 모습도 화제가 됐다. 페라자는 “시카고(마이너리그) 시절 요가와 명상을 배웠다. 한번 해보니 효과가 엄청나서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경기가 빠르게 진행되니까, 중요한 순간 눈을 감고 명상하면서 ‘천천히 하자. 투수랑 나랑 일대일 대결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게임을 좀 더 천천히 흘러가게끔 만드는 거죠.”

열일곱 살 때 스카우트 눈에 띄어 2015년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와 아마추어 계약을 맺었다.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메이저리그 데뷔를 꿈꿨지만, 작년 말 마이너리그 FA(자유계약선수) 자격으로 시장에 나왔다. 일본 구단들도 관심을 보이며 접촉했지만, 페라자는 한화를 택했다. 페라자는 “일본에서도 연락이 왔었는데, 한화 이글스가 예전부터 에이전트를 통해 계속 연락을 해와서 한화를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며 “이번에 좋은 계약도 제시해주고 지인들도 한국이 좋다고 해서 한화를 택했다”고 했다. 특히 삼성에서 활약한 호세 피렐라가 “한국 리그는 정말 좋은 리그이고, 엄청 치열하고 재미있는 야구를 한다. 여기서 야구하며 경력을 쌓으면 된다”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페라자는 한국 야구에 대해 “공 스피드만 다를 뿐 선수들이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는 건 미국과 똑같다”고 했다. 하지만 유명도는 확연히 다르다. “팬들이 ‘페라자’ 하고 부르며 알아봐 주시는 게 신기하고 좋다. 미국에선 경험해 보지 못한 거라 어리둥절하다”며 웃었다. 가장 좋아하는 한식은 ‘한우 구이’. 페라자는 “한우는 매일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다”고 했다.

쉴 때는 아파트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집돌이’란다. 페라자는 “일단 잠을 엄청 많이 자고, 베네수엘라에 있는 가족들이랑 영상 통화를 많이 한다”면서 “게임기(플레이스테이션)로 야구 게임과 축구 게임도 조금 한다”고 말했다.

페라자의 등장곡은 걸그룹 르세라핌의 ‘안티프래자일(Antifragile)’. 팬들이 이 곡의 가사 ‘안티프래자일’을 ‘안타페라자’로 바꿔 부른다. 페라자는 “원래 등장곡이 따로 있었는데 팬들이 좋아해주셔서 안티프래자일로 바꿨다”며 “한국 팬들의 응원이 정말 커서 감사하고, 인기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혹시 좋아하는 K팝 가수가 있냐고 묻자 “가수랑 노래는 잘 모르지만, 베네수엘라에 있는 가족들이 K팝을 좋아해서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4월 9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한화 이글스 타자 요나단 페라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야구에 푹 빠진 ‘베네수엘라 효자’

베네수엘라 술리아주 산타마리아에서 자란 페라자는 소프트볼 선수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네 살 때 처음 야구를 접했다. “라틴아메리카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어머니와 아버지도 늘 아침 일찍 일을 하러 나가셨다. 그럼 형들, 동네 친구들이랑 정식 배트도 공도 없이 플라스틱으로 방망이를 만들고 아무거나 공을 삼아 치고 놀았다. 야구가 너무 재밌어서 계속하게 됐는데, 저도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고 했다.

페라자는 3명의 형과 여동생 1명이 있다. 전부 베네수엘라에 있다. 페라자는 “형들이 사실 저보다 야구를 훨씬 잘했다. 그런데 형들은 야구에서 열정을 느끼지 못해서 중간에 관뒀다”고 했다.

야구에 푹 빠진 페라자에게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하던 남성이 ‘아카데미로 와서 제대로 해보자’고 제안했고, 페라자를 친아들처럼 보살피며 야구를 가르쳐줬다. 페라자가 야구를 진지하게, 열심히 하게 된 것도 그 때부터였단다. 페라자는 “그분들이 저에겐 ‘키워준 부모님’이다. 정말 아들처럼 대해주시고 사랑을 주셨다. 저에겐 낳아준 부모님과 키워준 부모님 전부 소중하다”고 말했다. 한국행이 결정됐을 때에도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어서 정말 잘됐다”며 기뻐하셨단다. “제가 야구를 열심히 한 건 가족들의 영향도 커요. 부모님은 항상 저를 나쁜 길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항상 좋은 길로 가게 하셨고, 그 말씀을 잘 듣고 따르다보니 계속 좋은 결과가 왔습니다.”

가족 얘기를 하며 페라자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사실 지금 친어머니가 제가 경기하는 걸 보러 한국으로 오고 계세요. 아마 지금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경유 중이실 거에요. 그동안 너무 힘들고 바쁘게 일을 하셔서 제가 선수생활 하는 동안 제가 야구하는 걸 한 번도 직접 보신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번에 드디어 어머니가 제가 야구하는 걸 직접 보실 기회가 생겨서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말하다보니 눈물이 날 거 같네요.”

롤 모델인 선수가 있냐고 묻자 페라자는 “롤 모델인 선수는 없고 인생의 롤 모델은 아버지”라고 주저없이 말했다. 소프트볼 선수로서 아버지가 엄청 멋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도 아버지같은 사람, 아버지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단다.

4월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리베라호텔에서 한화 이글스 요나단 페라자 선수가 본지와의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장련성 기자

◇가장 친한 동료는 하주석...류현진이 “하던대로 열심히해” 격려

한화에서 가장 친한 동료로 하주석을 꼽았다. 둘이 정말 케미가 잘 맞는단다. 페라자는 “베네수엘라에선 같은 팀에 나이 많은 선수와도 친구처럼 지내는데, 하주석이 ‘한국에선 나이 많은 선배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조언해 줬다. 한국 문화에 대해 많이 알려준다”고 전했다.

올해 한화로 복귀한 류현진과도 잘 지낸단다. 페라자는 “미국에서부터 이미 좋은 선수, 엄청나게 좋은 성적을 가진 선수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고 했다. “류현진 형과 관계는 엄청나게 좋아요. 마주치면 서로 인사하면서 장난도 쳐요. 류현진 형이 ‘하던 대로 열심히 하면 꼭 성공할 것’이라며 격려해 주고 조언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민감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에릭 페디, 메릴 켈리처럼 한국에서 잘해서 메이저리그에 성공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자 페라자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지금 한국에서 야구를 할 수 있는 게 엄청 좋다.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조심스레 말했다. “라틴 아메리카 출신 선수들은 누구나, 모두 가장 큰 목표가 메이저리그에요. 저도 아직 안 뛰어봤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답은 하나님만 알고 계시고, 저는 항상 열심히 할 뿐이고 제 앞길은 하나님이 알아서 만들어주실 거라 생각해요.”

이번 시즌 개인적인 목표는 “건강을 계속 잘 유지해서 시즌을 잘 마치는 것”이라고 했다. 2017년 무릎 부상으로 거의 1년 간 야구를 하지 못했던 게 야구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고. 올해 팀 목표로는 주저없이 “가을 야구”라고 말했다. “한화 선수들 모두가 정말 열심히 하고 있으니 계속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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