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돌아온 수검표

강필희 기자 2024. 4.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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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대국 일본도 선거 투표는 아날로그에 가깝다.

우리나라에 투표용지 자동분류기가 도입된 건 2002년 6·13 지방선거 때다.

한국의 선거관리 시스템은 해외에서 벤치마킹 대상이 됐고, 실제로 일부 국가에 이식됐다.

소량이라도 투표용지가 빠지거나 잘못 분류될 경우 박빙 선거에서는 결과를 바꾸는 변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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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대국 일본도 선거 투표는 아날로그에 가깝다. 지지 후보나 정당 옆에 도장을 찍는 게 아니라 이름을 수기로 직접 쓴다. 그래서 기표소마다 연필이 구비되어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1년 총선 때 방역 규칙상 연필을 재사용할 수 없게 되자 담당 공무원들이 유권자 수에 맞춰 수만 자루 연필을 깎느라 진땀을 뺐다. 정부 부처에 디지털부를 만들어 해커를 장관으로 앉힐 정도로 앞서가는 대만도 개표만큼은 수동을 고집한다. 관리원이 투표함을 열어 용지를 한 장씩 꺼내 들면 다른 관리원이 칠판에 ‘바를 정(正)’을 쓰며 집계하는 방식이다. 중국의 선거 개입을 원천 차단하고 관리 투명성을 높인다는 믿음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투표용지 자동분류기가 도입된 건 2002년 6·13 지방선거 때다. 투입구에 용지를 넣으면 내부에서 최대 10개 기표를 센서로 읽어 후보 혹은 정당별로 분류해준다. 이를 계수기에 넣어 세기만 하면 된다. 덕분에 손으로는 7~12시간이던 개표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한국의 선거관리 시스템은 해외에서 벤치마킹 대상이 됐고, 실제로 일부 국가에 이식됐다. 일종의 ‘K- 선거관리’ 수출인 셈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개표 자동화를 반긴 건 결과를 빨리 알고 싶은 국민이다.

개표 자동화 22년 만에 일부 공정이 다시 수동으로 돌아간다. 이번 총선부터 분류와 계수 단계 사이에 사람이 용지를 하나 하나 확인하는 절차가 추가된 것이다. 용지 조작이나 분실 우려를 감안해서다. 비례대표는 지난 총선부터 이미 100% 수개표다. 21대에 이어 22대에도 비례대표만을 노린 정당이 난립함에 따라 투표용지가 길어졌고 미리 준비한 분류기로는 작업이 불가능해진 때문이다. 수검표 추가로 개표 인력이 대폭 증원된 것은 물론, 개표 시간은 평소보다 2시간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지역구 당선자 윤곽은 내일 새벽 2시께, 비례대표는 오전 중으로 예상된다.

수개표가 전부였던 40~50년 전엔 용지 바꿔치기, 불 끄고 개표하기, 개표원 매수 등이 만연했다. “기계가 거짓말 하는 거 봤느냐”는 말이 자동화 추진의 근거였다. 자동분류기 도입 당시 정확도가 100%라고 홍보했지만 실제는 오분류 사례가 적지 않았다. 누군가의 고의나 악의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기계 자체의 오류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소량이라도 투표용지가 빠지거나 잘못 분류될 경우 박빙 선거에서는 결과를 바꾸는 변수가 될 수 있다. 한 표의 소중함을 생각한다면 번거롭지만 감수해야 할 불편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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