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첫 해외 LP 낸 이유? 한국어가 주는 독특한 울림에 충격
“도대체 이 음악은 어디서 온 것이죠(Where the hell does this music come from)?”
지난달 15일 유럽에서 발매된 그룹 산울림(김창완, 김창훈, 故 김창익)의 컴필레이션(편집) LP 음반 ‘이브닝 브리즈(Evening Breeze)’ 해설지에는 이런 문장이 찍혀있다. 이 LP를 낸 스페인 음반사 ‘구에르센’의 안토니 고르주스(Antoni Gorgues·53) 대표가 직접 골라 넣었다. 그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산울림 형제들과는 일면식도 없다. 15년 전 스페인 공연 초청을 하려고 연락을 시도해 봤지만 안타깝게 닿지 않았다”며 “대신 그들에게 하고 싶던 말을 해설지에 빼곡히 담았다”고 했다.
구에르센은 1960~1980년대 세계의 명반을 집중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이번에 산울림의 음반 4장을 냈다. 산울림 1~3집 LP, 그리고 4~9집 중 23곡을 고르주스 대표가 직접 선곡해 자체 편집한 LP를 선보였다. 산울림 LP가 정식 유통 경로로 해외에 발매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무 연고가 없는 스페인 음반사가 산울림 LP를 낸 배경에는 고르주스 대표의 ‘팬심’이 있었다. 2022년 김창완이 데뷔 45주년을 맞아 그동안 낸 앨범을 다시 LP로 낸다는 소식을 듣고 고르주스 대표가 이 작업을 맡은 국내 음반 기획사 뮤직버스를 수소문해 직접 연락했다. 음반 이름은 1979년 산울림의 동요 발표작 ‘저녁 바람’에서 따왔다.
고르주스 대표는 “1997년 즈음 한국인 음반 컬렉터 도움으로 산울림 1집을 처음 들었다”며 “다소 특이한 사운드에 놀랐고, 어떤 수식어를 붙일지 몰라 혼란스러웠다”고 회상했다. ”거친 보컬의 광기가 기괴했지만 많이 끌렸고, 갑작스레 분위기를 바꾸는 곡의 전개가 신선하고 독보적이었어요.”
이번 산울림의 첫 해외 편집 음반 LP에는 ‘특급열차(속에서)’ ‘내일 또 내일’ ‘무녀도’ 등 한국에선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들이 주로 담겼다. 사이키델릭(몽환적 느낌을 주는 록 장르)풍이 두드러지는 노래 23곡이다. 김창완은 “우리나라와 다른 시선의 선곡 구성이 인상적”이라고 평했다. 영국 음악 월간지 ‘신딕(Shindig)’은 지난 2월 특집 기사로 이 앨범 소식을 집중 조명했다. 제목을 ‘사이키델릭 서울’로 달고, 산울림의 음악을 “경계를 깬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 (세계의) 록 음악 전성기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했음에도 이를 충분히 만회할 K팝의 독창적 스타일을 확립했고, 정치적 혼란과 정부의 규제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소개했다.
LP 두께만큼 두꺼운 영어 해설지가 함께 삽입된 것도 주목할 부분. 고르주스 대표는 “한국어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어 가사집을 싣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했지만 산울림은 ‘산의 메아리’란 뜻이고 ‘산울림이 결성된 1977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 의사를 발표했다’ 등 당시의 국내 정치적 배경까지 소개했다. 고르주스 대표는 “산울림의 음악 덕분에 신중현, 한대수, 밴드 마그마 등 다양한 한국 록 음악을 찾게 됐다”면서 “서양 록 애호가들에게 한국어가 주는 울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충격적인 경험”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다양한 한국 음악을 발굴하고 싶다”면서 “1973년 앨범 ‘now’를 낸 한국 여가수 김정미의 음반을 재발매하고 싶은데, 라이선스를 얻을 수 없어 끙끙 대고 있다”고 했다.
☞구에르센 레코드
1996년 스페인 카탈루냐 례이다주에 설립된 음반 기획사. 사이키델릭 록, 프로그레시브 록, 포크, 개러지 록, 팝 등 장르는 가리지 않지만 시기적으로는 1960~1980년대 발매된 전 세계 명반을 집중적으로 발굴해 유럽을 중심으로 유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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