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 빌린뒤 300만원 갚아 신뢰 쌓고, 억대 빌려 ‘먹튀’

정순구 기자 2024. 4. 1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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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반도체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최모 씨(33)는 회사 선배의 소개로 만난 A 씨에게 지난해 말 1억5000만 원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했다.

최 씨는 "법정 최고이자율(연 20%)을 초과해 이자를 받은 만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며 "동료 직원 2명도 A 씨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똑같이 당했는데 총 피해액이 5억 원에 달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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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이자” 접근해 금액 키워 줄행랑
고소득자 대상 금융사기 기승
사기 입증 어렵고, 역고소 위협도
국내 한 반도체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최모 씨(33)는 회사 선배의 소개로 만난 A 씨에게 지난해 말 1억5000만 원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했다. 시작은 200만 원부터였다. 정육 사업을 크게 한다던 A 씨는 단기적으로 현금 흐름이 막혔다며 최 씨로부터 돈을 빌렸고 한 달 만에 300만 원으로 갚았다. 이후 수차례에 걸쳐 적게는 100만 원부터 많게는 5000만 원까지 돈을 빌린 A 씨는 매번 3개월 내에 원금의 1.5배에서 2배를 돌려주며 신뢰를 쌓았다.

문제가 터진 것은 올해 초였다. 1억5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빌린 A 씨가 돈을 갚지 못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최 씨에게 A 씨는 오히려 ‘이자제한법’ 위반으로 고소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최 씨는 “법정 최고이자율(연 20%)을 초과해 이자를 받은 만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며 “동료 직원 2명도 A 씨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똑같이 당했는데 총 피해액이 5억 원에 달한다”고 토로했다.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단기간 높은 이자를 주겠다며 접근해 수차례에 걸쳐 실제 수익금을 지급한 뒤 금액이 커지면 ‘나 몰라라’ 하며 피해자를 양산하는 형태다. 법적으로 금융사기를 인정받기 까다로운 데다 이자제한법을 어겼다며 적반하장 식으로 역고소를 당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국내 한 대형 보험사에서 근무하는 장모 씨(40)도 비슷한 형태의 금융사기를 당했다. 피해 금액은 1억6000만 원.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사업가 B 씨에게 투자 명목으로 수차례 돈을 지급하고 총 5000만 원의 수익을 올렸는데, 지난해 말 1억6000만 원의 투자금을 받은 B 씨가 잠적해 버렸다.

장 씨는 B 씨를 서울 용산경찰서에 고소했고 이 과정에서 본인과 같은 피해자가 20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B 씨의 사기 금액이 총 40억 원에 이른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닭고기 정육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전문 사기꾼이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형태의 사기가 점점 잦아지고 그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안민석 법률사무소 강물 대표 변호사는 “올해 초부터 일주일에 3∼4통씩 비슷한 방식으로 피해를 봤다는 상담 전화가 계속되고 있다”며 “사기범은 여러 번 수익금을 지급하며 신뢰를 쌓고 주변인들로 금융사기 범위를 넓혀가기 때문에 같은 그룹 내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피해를 본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은 이런 형태의 금융사기는 관련 통계 집계부터 피해자 지원까지 어려움이 크다고 설명한다. 피해자 대부분이 고소득자라 개인적으로 민형사상 고소에 나서는 경우가 많고, 법률 지원을 진행하려 해도 수차례에 걸쳐 실제 수익금을 지급했다는 점에서 ‘고의적 기망’ 행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금융사기가 잦은데 피의자 대부분 금융당국에 정식으로 인허가를 받고 금융업을 영위하는 자들이 아닌 만큼 주기적인 소비자 경보 발령 이상의 대응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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