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그 시절 투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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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얘기다.
1985년 12대 총선 당시 필자는 군 복무 중이어서 부재자투표를 했다.
1985년 부재자투표 당시에 대한 회고다.
그날 투표를 마친 병사들은 내무반에 돌아와 이렇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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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얘기다. 1985년 12대 총선 당시 필자는 군 복무 중이어서 부재자투표를 했다. 부재자투표는 어떤 사유로 거주지에서 투표가 불가능할 경우 사전에 신고해서 선거일 전에 투표할 수 있는 제도다. 부재자투표는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폐지되고 사전투표제가 도입됐다. 지금은 해외 거주자의 재외선거와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우편을 이용해서 투표하는 거소투표제가 있을 뿐이다.
1985년 부재자투표 당시에 대한 회고다. 부대장은 장병들을 소집해 특별교육을 했다. 선진국을 향해서는 정국이 안정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여당이 다수당이 돼야 한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노골적으로 여당을 지지하라는 얘기였다. 상명하복의 군대에서 상관의 강요에 반기를 들 병사는 없었다. 여당 지지 강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대장은 “투표에서도 군인은 완벽해야 하므로 무효표가 나와서는 안 된다. 자유롭게 투표하되, 무효표인지를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라는 기발한 명령을 했다. 이에 병사들은 무효표 없는 완벽한 투표를 위해 기표한 투표용지를 부대장에게 보여주고 반송봉투에 넣어야 했다. 그날 투표를 마친 병사들은 내무반에 돌아와 이렇게 외쳤다. “나는 오늘 진짜 공명선거 했다.”
그러나 12대 총선은 민주화를 향한 첫걸음이 됐다. 투표율은 84.6%에 달했다. 이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개표 결과 총선 보름 전에 창당한 신민당은 67석을 얻어 제1야당으로 부상했다. 무늬만 야당인 민한당은 몰락했다. 특히 신민당은 서울에서 43.9%의 지지를 받아 27.3%의 지지를 받은 데 그친 민정당을 압도했다. 전두환의 5공화국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2년 후, 6월 민주항쟁의 불꽃이 타올랐다.
부정선거가 횡행하는 가운데서도 국민의 민주 역량이 빛났던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노골적인 부정선거는 상상할 수도 없는 세상이 됐다. 병사들이 외쳤던 ‘그 시절의 공명선거’는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국민은 오늘도 주권자로서 엄중한 선택을 한다.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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