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팬’과 ‘플라스틱 팬’[폴 카버 한국 블로그]
그런데 그 말이 씨가 될 줄이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 스타 선수 제시 린가드의 영입으로 올해 FC서울 홈 개막전 관중은 5만1670명을 기록했다. 축구팬으로서 그렇게 많은 분이 축구장을 찾아가는 건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불편해졌다. 들어가는 줄이 길었고 내가 선호하는 자리엔 누가 벌써 앉아 있었다. 나만 알고 자주 가는 동네 단골이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가 된 기분이었다. 다행히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워낙 큰 경기장이어서 예매를 안 해도 들어가는 데엔 문제가 없지만, 방문경기는 다르다. 요새 원정 티켓 사는 일이 아이돌 콘서트 표를 얻는 것만큼 어렵다.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접속해도, 클릭 속도가 빠르지 않으면 몇 초 만에 매진돼 표를 못 구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대표팀 경기도 마찬가지다. 몇 주 전에 한국과 태국의 월드컵 예선전이 있었다. 이 경기도 몇 분 만에 매진되었다. 10여 년 전에는 텅텅 빈 경기장에서 다른 월드컵 예선전을 봤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스타 선수 파워 때문에 표를 구하는 일이 전쟁이 되어버렸다. 세 선수 중 한 명이 장내 대형 화면에 뜰 때마다 장내는 아이돌이라도 등장한 듯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오랜 ‘꼰대 축구 팬’인 내게는 이런 모습이 어색했다.
최근에 영국에서도 한국 축구팬 관련 논란이 있었다. 이번 시즌 손흥민 선수가 토트넘의 주장이고, 경기장에서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토트넘 경기를 보는 것은 버킹엄 궁전이나 빅벤을 방문하는 것만큼 중요해졌다. 기존 축구팬들은 자기 팀을 관광 명소보다는 공동체로 생각하기에 토트넘을 응원하기보단 손흥민 선수를 보러 온 소위 ‘플라스틱 팬(가짜 팬)’들을 그리 환영하지 않는다. 최근 토트넘 감독 앙게 포스테코글루는 이런 팬들은 자주 못 오더라도, 한 번 오는 것도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옹호했다.
FC서울 경기를 보러 가면 린가드나 기성용 선수의 FC서울 유니폼 외에도 토트넘, 바이에른 뮌헨, 파리 생제르맹(PSG) 유니폼을 입고 있는 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이들을 각 구단의 팬으로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몇 년 전만 해도 기성용 선수 이름이 마킹된 스완지 유니폼이나 이청용 선수 이름이 마킹된 볼턴 유니폼을 입고 있는 팬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둘이 팀을 떠나고 몇 년 지나다 보니 팀에 대한 관심은 싹 빠진 것 같다. 손흥민 선수가 토트넘을 떠나게 되면 토트넘이 한국 팬층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것을 ‘플라스틱 팬’이라고 경멸하고 싶진 않다. 그 대신, 팬 문화의 차이로 설명하고 싶다. 한국의 팬 문화는 영국과 매우 다른데, 개인적으로 좋은 점도 있고 이해가 안 가는 점도 있다. 한국의 팬 문화는 제일 열정적 팬층인 시즌권 소지자들로부터 시작된다. 소속감이 있는 분들이니까 최대한 노력을 한다.
그래서 말이다. FC서울이 몇백 장의 시즌권만 제한적으로 판매하며 나를 포함해 FC서울을 오래전부터 사랑한 수많은 팬에게 소외감을 느끼게 한 결정은 매우 놀라웠다. 영국에서 시즌권 판매는 구단과 팬 모두에게 윈윈이다. 구단은 시즌권의 보장된 수익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예산을 계획할 수 있고, 팬들은 보장된 좌석을 친구들과 함께 이용하면서 소속감을 얻을 수 있다. 표가 제한된 방문경기와 컵 결승전 등에선 우선권을 받을 수도 있다. FC서울의 경우 린가드의 계약으로 단기적으로는 수천 명의 새로운 팬이 유입되었는데 제한된 시즌권 등으로 이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K리그엔 ‘관광하는 플라스틱 팬’들도 없다.
동네 팬들이 경기장을 더 자주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방문경기 티켓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진 덕에 지갑도 빵빵해지고 시간도 여유로워졌지만 종종 포항, 울산, 광양까지 원정 버스를 타고 만났던 친구들과 쌓은 추억이 그립다. 방문경기에 다녀온 서울 팬들이 좋은 추억을 만들고 평생 팬이 되길 기원한다. 내가 조금 불편해진다고 해도.
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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