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물망초’ 그들을 잊어선 안 되는 이유
가족들, 생사 확인 못한 채 애타
‘물망초 배지’ 제작 상징성 부여
정부, 반짝 관심에 그쳐선 안 돼
하얀색 장갑을 낀 손이 대리석 위에 새겨진 명단을 쭉 따라가다 한 사람의 이름 앞에 멈췄다. 성인 남자 손바닥 절반 정도 길이의 검은색 테이프를 그 이름 위에 올렸다. 하얀색 장갑을 한 또 다른 손이 다시 올라와 테이프를 마주 잡았다. 두 번, 세 번 힘주어 꾹꾹 눌러 붙였다. 테이프에 가려진 이름은 ‘중위 조창호’였다.
조 중위의 귀환은 생존 국군포로와 납북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으로 이어졌다. 말년의 조 중위는 국군포로의 생존 사실을 증언하고 그들의 귀환을 위해 노력했다. 6·25전쟁 국군포로는 8만2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중 8343명만이 포로 교환으로 귀환했다. 조 중위 탈북 후 80명에 달하는 국군포로가 탈북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2024년 3월 현재 한국에는 9명의 귀환 국군포로가 생존해 있다.
‘세 송이의 물망초 피우기’ 온라인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북한에 억류된 이들의 송환과 가족의 아픔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상징물인 물망초 배지도 새롭게 만들어져 공개됐다. 세 송이 중 한 송이는 국군포로를, 또 다른 두 송이는 억류자와 민간인 납북자를 상징한다. 온라인 캠페인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통일부 홈페이지 캠페인 코너에 들어가 보니 9일 현재 4만50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물망초 배지가 처음은 아니다.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2010년 6월 ‘6·25 납북 희생자 기억의 날’ 행사에서 물망초 배지를 처음 만들어 배포했다. 앞서 그해 3월26일 6·25전쟁 납북 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성의 가족협의회 이사장은 통화에서 “법률안 통과를 계기로 후속으로 이를 기억하는 상징물을 고민하다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꽃말의 물망초를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국회의원에게 배지 착용을 요청하면서 관심을 끌었지만 이내 시들해졌다.
납북자 생사 확인조차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전후 납북자와 국군포로는 물론이고 전시 민간인 납북자는 규모 추정조차 불가능하다. 10만명 정도로만 추산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이 정례화했을 때도 이들은 특수이산가족으로 분류돼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남북 양측에서 모두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됐다.
또 다른 문제는 그들을 기억하는 많은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고 활동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80세가 넘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1948년생 이성의 이사장이 가장 젊은 세대다. 그는 두 살 때 아버지가 납북됐다. 사진 속 모습이 기억의 전부다. “생사 확인이라도, 유해라도 돌려받고 싶다”고 했다.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70년이 훌쩍 지났다. 아직도 해결은 요원하다. 비극적인 일이다.
일본은 ‘파란 리본’을 주요 정치인이 단다. 일본인 납북 피해자 문제를 상징한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지난해 5월 방한했을 때 이 리본을 달았다. 일본 납북 피해자 지원 시민단체가 주도한 이 리본은 1998년 이후 시작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물망초 배지를 착용하고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윤 대통령은 “국군포로, 납북자, 억류자 모두가 가족 품으로 돌아오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정부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반짝 관심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매년 6월28일은 ‘6·25전쟁 납북 희생자 기억의 날’이다.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위로의 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우승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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