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의 신간] 자아: 나를 편집한 허구

이지은 기자 2024. 4. 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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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착각」
과거, 현재, 미래
단일하지 않은
세 가지의 자아
[사진=뉴시스]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누구입니까?"란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대거나 자신이 하는 일 등을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좀 더 복잡한 의도가 숨어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당신의 존재 혹은 당신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었다면.

심리학 교수이자 신경과학자인 그레고리 번스는 저서 「'나'라는 착각」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의 존재를 '단수'로 이해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자신을 단지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겠지만, 실제 당신은 '하나'가 아니라며 "우리는 몸이라는 실체를 갖고 있지만, 그 안의 자아는 매우 불안정하며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신경과학자적 관점에서 인간을 세 버전의 '자신'으로 설명한다. 첫번째는 가장 익숙한 '현재의 당신'이다. 저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의 당신은 이미 과거의 당신이 됐듯 현재의 당신은 찰나에만 존재한다"며, "현재의 당신은 그저 망상일 뿐"이라고 규정한다.

두번째 버전은 '과거의 당신'이다. 우리는 누구인지 물어볼 때 주로 '내가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등 과거의 자아를 내세운다. 하지만 저자는 '나는 누구인가'란 자아 정체성의 해답은 더 깊은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여기서의 기억들은 다큐멘터리의 기록과는 다른 것이라고 덧붙인다. "우리의 복잡하고 모순된 과거 자아들은 하이라이트 릴(highlight reel)로 선별돼 뇌에 저장된다. 그리고 이 조각들에 의미를 부여해 현재의 자아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듯한' 서사 구조를 만든다." 저자는 누구도 있던 그대로 기억을 재생할 순 없다며, 그 기억들은 수많은 순간의 파편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서사 구조가 세번째 자아로 이끈다. '미래의 당신'이다. "우리의 몸이 현재에 머물러 있을 때도 우리의 뇌는 지난 일들을 평가해 미래를 예측한다.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당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저자는 뇌가 미래를 예측하도록 진화해 왔다며, 인간에게 예측은 기본적 생존기능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앞서 나가는 원동력이자, 문제를 해결하는 추리 능력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신경과학·심리학·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자아 정체성'이란 개념이 실은 뇌가 만들어낸 허구임을 밝힌다. 저자는 자아를 "수많은 사건 중 특정 부분을 편집하고 맥락을 이어붙인 기억의 집합"이라고 정의한다. 자아란 '나를 편집한 이야기'이며, 기억과 압축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자아는 태생적으로 허구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한 저자는 우리가 자신을 하나의 단일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하나의 '당신'은 없다고 말한다.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의 뇌가 자아를 발명했기 때문이며, "인간은 자아를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자아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는 역설적으로 자아가 허구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의미가 된다고 주장한다. 자아가 생성되는 뇌의 메커니즘을 알면 '내가 원하는 나'를 찾아갈 수 있다며, 이 책에 해답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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