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정후 기량 의심했나… 부진 의혹 나오자마자 멀티히트에 호수비, 적응 순조롭다 [이정후 게임노트]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근래 들어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자신의 기량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였다. 안타가 나오지 않아 타율이 계속 깎여 1할대 추락을 걱정해야 할 처지였고, 수비에서도 실수가 나와 동료에게 미안함을 전해야 했다. 하지만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는 역시 이정후였다. 부진이 오래 가지 않았고, 멀티히트에 수비까지 좋은 모습을 선보이며 금세 반등했다. 이제 이 기세를 이어 가며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이정후는 9일(한국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워싱턴과 경기에 선발 1번 중견수로 출전, 3타수 2안타 1볼넷 1득점을 기록하며 최근 타격 부진에서 확실하게 벗어났다. 이날 세 차례 출루하며 힘을 낸 이정후의 시즌 타율은 종전 0.205에서 0.238로 꽤 많이 올랐고, 시즌 출루율도 0.267에서 0.306으로 껑충 뛰어 올랐다. 이날 2루타 하나도 추가해 시즌 장타율은 0.282에서 0.333으로 올랐다. 출루율과 장타율의 합인 OPS는 0.639다. 다만 팀이 1-8로 져 아쉬움을 남겼다.
이정후는 4월 3일 LA 다저스전까지는 타율 0.292로 나쁘지 않은 흐름을 보여줬으나 이후 경기에서 다소간 부진하며 타율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특히 4월 4일 LA 다저스전부터 4월 7일 샌디에이고전까지는 3경기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4월 8일 샌디에이고전에서 귀중한 안타 하나를 신고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리더니 이날은 4월 2일 LA 다저스전 이후 처음으로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확실하게 올라오는 감을 알렸다. 그간 빠른 타구 속도에 비해 발사각이 잘 나오지 않으며 안타를 만들지 못했는데 이날은 조금 달랐다.
샌디에이고와 홈 개막 3연전에서 2승1패, 위닝시리즈를 달성한 샌프란시스코는 이날도 주축 선수들이 나서며 그 기세를 잇고자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이날 이정후(중견수)-윌머 플로레스(1루수)-라몬테 웨이드 주니어(좌익수)-호르헤 솔레어(지명타자)-맷 채프먼(3루수)-마이크 야스트렘스키(우익수)-타이로 에스트라다(2루수)-패트릭 베일리(포수)-닉 아메드(유격수) 순으로 타순을 짰다.
선발이 관심이었다. 이날 샌프란시스코 이적 후 첫 선발 등판에 나서는 블레이크 스넬이었다. 스넬은 탬파베이 소속이었던 2018년 21승5패 평균자책점 1.89를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21년 샌디에이고로 이적한 이후 팀의 좌완 에이스로 활약했고, 지난해에는 32경기에서 180이닝을 던지며 14승9패 평균자책점 2.25, 234탈삼진을 기록하며 생애 두 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양대리그에서 모두 사이영상을 수상한 보기 드문 경력을 가진 선수였다.
그런 스넬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총액 2억 달러 이상 계약을 노렸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지갑을 닫은 상황에서 FA 시장이 더디게 흘러갔고, 결국 스넬은 대형 계약을 하지 못한 채 샌프란시스코와 2년 총액 6200만 달러에 계약했다. 2억 달러 이상의 대형 계약은 아니었지만 3100만 달러의 연 평균 금액을 보장받았고, 올 시즌 뒤 옵트아웃(잔여계약을 포기하고 FA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조항을 넣어 사실상 FA 재수를 선택했다. 일단 샌프란시스코는 확실한 에이스감을 확보한 것인데, 스넬은 계약이 늦은 탓에 몸 상태를 끌어올릴 시간이 필요했고 결국 이날 첫 등판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정후가 상대해야 할 선발 투수는 우완 트레버 윌리엄스였다. 1992년생으로 2013년 마이애미의 2라운드(전체 44순위) 지명을 받은 윌리엄스는 이후 피츠버그로 트레이드돼 2016년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2018년에는 피츠버그 소속으로 14승10패 평균자책점 3.11을 기록하며 생애 첫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해 총망받는 유망주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후 기량이 처졌고, 2022년은 뉴욕 메츠, 2023년부터 올해까지 워싱턴에서 뛰고 있었다. 지난해 30경기에서는 144⅓이닝을 던지며 6승10패 평균자책점 5.55에 그쳤다.
이정후의 감이 뜨거웠다. 첫 타석부터 안타를 때렸다. 1회 선두타자로 나선 이정후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지켜본 뒤 2·3구 모두 파울을 기록했다. 2S의 몰린 불리한 카운트였다. 하지만 이정후는 역시 이정후였다. 2S의 불리한 카운트에서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4구 체인지업 유인구를 지켜 본 이정후는 5구째 비슷한 코스에 떨어진 체인지업을 놓치지 않았다. 같은 코스에 들어온 공이라 이 궤적을 잘 알고 있었고 결국 좌전 안타로 만들어 출루했다. 두 경기 연속 안타를 일찌감치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이정후는 그 다음 상황에서 발을 뽐냈다. 라몬테 웨이드 주니어의 2루타가 좌익수 방면으로 떨어졌다. 이정후는 타구를 정확하게 판단한 뒤 작정하고 홈까지 뛰려는 듯했다. 속도를 계속 붙인 이정후는 3루 코치의 사인을 확인한 뒤 계속 뛰어 홈에 들어왔다. 여기에 워싱턴 좌익수 제시 윙커의 송구 실책까지 겹쳐 첫 득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정후가 만든 샌프란시스코의 리드는 오래 가지 않았다. 1회 무사 2루에서 추가점이 나지 않았고, 1-0으로 앞선 2회에는 스넬이 3실점했다. 1사 후 연거푸 볼넷을 내줘 위기를 자초하더니 결국 연속 적시타를 허용하며 1-3으로 뒤졌다. 상대의 더블 스틸 작전에 당하기도 하는 등 2회 분위기가 뭔가 어수선했다.
이정후는 계속 분전했다. 1-3으로 뒤진 3회 선두타자로 나서 이번에는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첫 2루타를 때렸다. 이번에도 윌리엄스를 상대한 이정후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지켜봤지만 2구 볼을 골랐고, 2B-2S 카운트로 맞섰다. 여기서 5구째 바깥쪽 포심패스트볼을 제대로 받아쳐 이번에는 좌익수 옆으로 떨어지는 2루타를 만들어냈다. 타구 속도 98마일의 하드 히트였고, 발사각도 17도로 이상적이었다. 전형적인 이정후의 타구였다. 이정후의 감이 살아나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무사 2루 상황에서 후속타가 없었다. 윌머 플로레스가 1루수 뜬공, 라몬테 웨이드 주니어가 1루 땅볼로 물러났다. 이정후는 이때 3루에 갔지만 호르헤 솔레어까지 2루 땅볼에 그쳐 결국 홈을 밟지 못했다.
경기는 워싱턴이 3-1로 앞선 5회 레인 토마스의 투런포 등을 앞세워 3점을 더 추가하면서 기울기 시작했다. 이정후는 5회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맞이한 세 번째 타석에서는 볼넷을 골랐다. 윌리엄스와 세 번째 상대한 이정후는 존에서 벗어나는 공을 차분하게 골라내며 세 번의 타석 모두에서 출루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후속타가 안 나왔다. 이정후는 윌머 플로레스의 병살타 때 아웃됐다.
이정후는 팀이 1-6으로 뒤진 7회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섰으나 이번에는 안타를 치지 못했다. 샌프란시스코는 2사 후 닉 아메드의 안타로 주자가 나갔다. 여기서 이정후는 전 샌프란시스코 투수이기도 했던 우완 데릭 로를 상대로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으나 6구째 슬라이더 타격이 2루 땅볼로 이어지며 아쉽게 안타를 치지는 못했다.
그런 이정후는 8회 수비에서 좋은 플레이로 계속해서 힘을 냈다. 워싱턴은 6-1로 앞선 8회 1사 후 바르가스가 볼넷으로 출루했다. 이어 트레이 립스콤이 중전 안타를 쳤고, 바르가스는 3루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정후의 어깨를 너무 간과한 플레이였다. 이정후는 3루를 향해 정확하게 공을 던졌고, 바르가스를 3루에서 잡아냈다. 이정후의 송구 강도와 정확도를 모두 볼 수 있었던 플레이였다. 지난 7일 샌디에이고전에서 평범한 뜬공을 놓치는 실책성 플레이로 1회 만루홈런 허용의 빌미를 제공했던 이정후가 이틀 만에 좋은 수비로 자신의 진가를 보여준 셈이 됐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공격은 끝까지 무기력했고, 결국 9회 두 점을 더 내주며 끌려간 끝에 그대로 1-8로 졌다. 샌프란시스코 선발 블레이크 스넬은 3이닝 동안 3피안타 2볼넷 5탈삼진 3실점을 기록해 시즌 첫 패전을 안았다. 투구 수는 72구로 1~2경기 더 관리 속에 던져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워싱턴 선발 윌리엄스는 5이닝 동안 3피안타 3볼넷 2탈삼진 1실점 호투로 승리를 거뒀다. 3피안타 중 두 개가 이정후에게 맞은 것이었다.
이정후는 10일 경기에도 선발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현재 나흘 연속 선발 출전했지만 아직 체력적으로 큰 문제가 있을 시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워싱턴은 우완 조사이아 그레이를 선발로 예고한 상황이다. 빠른 공을 던지는 우완으로 2021년 다저스와 트레이드 당시 워싱턴 유니폼을 입었다. 올해까지 총 74경기(선발 73경기)에 등판해 17승27패 평균자책점 4.84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데뷔 후 가장 많은 경기(30경기)에 등판해 최다 이닝(159이닝)을 소화했으나 8승13패 평균자책점 3.91로 성적 자체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올해 첫 두 경기에서도 2패 평균자책점 14.04로 저조한 성적을 남기고 있다.
이정후로서도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다.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약 93마일(150㎞) 수준으로 그렇게 빠른 선수가 아니다. 이 정도 구속은 KBO리그에서도 제법 많이 봐왔던 수준이다. 올해 포심 피안타율이 4할에 이를 정도로 좋지 않다. 이외에 커터·슬라이더·커브·스위퍼·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던지기는 하지만 구사 비율만 다양할 뿐 확실한 결정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정후가 세 경기 연속 안타 소식을 전해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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