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4·10 총선 감상문

김충제 2024. 4. 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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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2대 총선이 오늘 치러진다.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지만 아무래도 여당이 승리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승리는 천 명의 아버지를 가졌지만, 패배는 고아"라는 말을 남겼다. 승리하면 모두 공을 차지하려 하지만 패배하면 서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인간 본성을 꼬집은 말이다. 이런 인간 본성은 먹느냐 먹히느냐의 정치판에서 더 자주 발현되곤 한다. 하지만 여당의 경우 이번 4·10 총선 결과의 책임 소재는 비교적 자명해 보인다.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전국 단위의 선거는 현 정부의 업무수행 전반에 대한 중간평가, 즉 '중간선거(midterm election)' 성격이 강하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등 대통령제를 채택한 모든 민주국가의 공통적 현상이다. 따라서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이 35%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중간선거에서 여당이 선전할 가능성은 현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여당은 대중적 인기가 높은 한동훈 전 장관을 원톱으로 내세워 초반 분위기를 띄웠고, 이후 야당의 졸속 공천으로 기선을 잡은 듯했지만 결국 이번 총선의 중간평가 성격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한동훈 비대위는 몇 가지 전략적 실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4·10 총선이 현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면, 한동훈 비대위의 '야당 심판론'은 애초에 유권자들로부터 큰 공감을 살 수 없었다. 중간선거에서는 유권자 대부분이 야당이 아니라 현 정부를 평가하러 투표장에 간다. 이재명과 조국 두 야당 지도자들이 아무리 현행법을 어긴 범법자라 하더라도 그들이 국정을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지는 않다. 게다가 국민 대부분은 이·조가 법을 어겼고 도덕적 결함도 많다는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조 심판론을 강조하면 할수록 정권 심판론에 힘을 실어주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했다.

중간선거에서 야당 심판론이 먹히려면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아야 한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57% 정도로 고공행진하고 있었다. 이럴 때는 유권자들이 알아서 야당을 심판한다. 21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문재인 정부를 상당히 우호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당시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심판'당한 결과가 나왔다고 보면 된다.

둘째, 그렇다면 여당은 어쨌든 비전으로 승부를 걸어야 했다. 한국은 지금 저출산과 초고령화, 고물가와 저성장, 청년세대 삶의 불안정성, 통일과 남북관계, 신냉전의 위기 등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사실 뾰족한 답은 없지만 그래도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해 국민의 마음을 뛰게 해야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력과 그러지 못한 세력의 대결로 선거의 성격을 규정했어야 했다. 한 위원장은 한 유세에서 "대한민국이 전진하느냐, 후진하느냐, 융성하느냐, 쇠퇴하느냐, 공정해질 것인가, 범죄자들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거"라고 총선의 성격을 규정했다. 하지만 전진과 융성의 비전은 찾아볼 수 없고 "범죄자 심판"만 보였다.

여당이 '이·조 심판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소식도 들렸고, "범죄자를 심판하는 것이 민생"이니 "이·조 심판이 민생"이라는 말도 들렸다. 하지만 민생을 위해 이·조를 심판해야 한다는 주장은 많은 유권자에게 별로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종북세력은 개탄스럽지만 "종북 심판론"이나 "운동권 심판론"이 이번 총선의 시대정신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중간선거에서 여당을 박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4년 임기 미국 대통령이 임기 2년 후 치르는 중간선거에서도 야당이 약진하는 경우가 더 많다. 유권자들이 여당을 박하게 평가했더라도 유권자 대다수는 현 정부가 심기일전해 더 잘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이해하고 더 잘하지 않으면 진짜 범죄자들에게 정권을 내줄 수도 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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