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구두 아가씨’가 한밤중에 어딜 가든 무슨 상관 [이유진의 바디올로지]
‘나는 발이지요/ 고린내가 풍기는 발이지요/ 하루 종일 갑갑한 신발 속에서/ 무겁게 짓눌리며 일만 하는 발이지요/ 때로는 바보처럼/ 우리끼리 밟고 밟히는 발이지요…’
권오삼 시인이 쓴 동시 ‘발’의 한 부분이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시인은 발에 관한 여러 편의 시를 썼는데, ‘발’은 민중을 뜻한다고 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는 ‘공과 발’이라는 재미난 동시도 있다. 잘난 척하는 축구공과 못생긴 발이 서로 티키타카 하는 말을 아이들이 퍽 좋아한다. 어른도 읽으면 답답한 속이 뻥 뚫린다.
‘나는 공이야/ 공 가운데서도/ 제일 멋있게 생긴/ 축구공이란 말이야/ 그래서 늘/ 통통 튀고 싶어/(…)/ 나는 발이야/ 발 중에서도/ 제일 사납고/ 못생긴 발이야// 너만 보면 힘껏/ 걷어차 주고 싶어/ 내가 한 번 걷어차 줄까?/ 괜찮겠지?/ 그럼, 자 간다!/ 뻥!’
축구선수들은 발이 단단하고 완벽할 것만 같다. 박지성, 손흥민 선수는 평발(편평족)이다. 아치가 없는 평발은 장시간 걷거나 운동을 할 때 쉽게 피로감을 주고 족저근막에 통증을 일으킨다. 심하면 발목을 자주 삐고 족부 기능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의 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상화의 발, 발레리나 강수진의 상처 입은 발은 아름답다. 종교 의례에서 세족식이 감동적인 건 천대받는 발을 보듬는 의미 때문일 것이다.
홀대받던 발은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면서 우대받게 됐다.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아래로 내려온 혈액이 다시 심장으로 올라갈 수 있는 건 발과 종아리 근육의 움직임 덕이다. 발에 문제가 생기면 무릎, 허리, 고관절, 척추 등에 이상이 오고 보행까지 어려워진다는 것쯤 이제 상식이 됐다. 무겁게 짓눌리는 발은 돌봐주지 않으면 어느 순간 비명을 지르고 온몸을 변형시킨다. 발은 역시 ‘백성’의 은유가 될 자격이 있다.
발을 감싸는 신발은 사회적 상징이 강하다. 신발은 그 사람의 젠더, 계급, 취향을 보여주면서 정체성을 구성한다. 18세기 유럽의 중산층 여성은 주로 비단 슬리퍼를 신었다. 바닥이 얇아 집 밖 보행에 적합하지 않은 신발이었다. 계몽주의자 장 자크 루소가 ‘모성’을 여성의 의무로 강조하면서 여성의 영역을 집안에 붙박은 영향이 컸다. 역설적이게도 18세기 중산층 여자들은 그 ‘사적 영역’에서 글을 썼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시기 중산층 여성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십자군전쟁이나 장미전쟁보다 더 중대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동시대 하류계층 여성들은 집 안팎에서 두꺼운 장화를 신고 일했다. 여자들은 무슨 신을 신든 어디서든 일을 멈춘 적이 없다.
오늘날 ‘커리어 우먼’의 상징이 된 하이힐은 원래 남자들 사이에서 유행한 신발이었지만 17세기 초반에 이르러 여성의 것이 되었다. 18세기 이후 하이힐에는 성애적인 요소가 더해진다. ‘신발로 읽는 인간의 역사’를 쓴 엘리자베스 세멀핵은 남성만이 이성적 존재라고 선포한 계몽사상이 유행할 때, 여성이 남성을 유혹해서 권력을 빼앗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널리 퍼져나갔다고 말한다. 작은 발을 암시하는 하이힐은 이 때부터 유혹, 사치와 허영, 지성의 부재를 뜻했다. 여성의 구두는 성기와 동일시됐고 특히 빨간 구두는 음란한 여성을 상징했다. 19세기 안데르센 동화 ‘분홍신’에서 성욕과 허영심을 가진 여자아이는 빨간 구두를 탐냈다가 영원히 춤추라는 형벌을 받는다. 발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밤낮으로 춤을 추고 또 추다가 아이는 끝내 발목이 잘린 뒤에야 구원을 얻는다. 벌거벗은 여성이 새빨간 하이힐만을 신고 찍은 사진은 포르노 이미지의 전형이 됐다.
근대성이 유입된 1930년대 한반도에서도 굽 높은 구두는 집 밖으로 나가는 방탕한 허영녀를 상징했다. “굽 높은 좋은 구두나 사 신기 위해 직업을 가지라고 하는 일부분의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극히 아름답지 못한 일”(1931년 10월11일 ‘동아일보’)이라거나 하이힐이 보기에 좋지 않고 건강에도 나쁘다며 신지 말라는 목소리가 높았다.(1936년 5월1일 ‘조선일보’, ‘굽놉흔 구두에 가진 병이 다 생겨’) 2019년에는 하이힐과 정신병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영국 학술지에 실리기도 했다. 종아리가 긴장하면 도파민 분비가 억제되기 때문이라는데, 글쎄, 문제는 하이힐보다 그 구두를 신고 해야 하는 과중한 노동 아닐까. 하이힐을 신고 재미있는 놀이를 한다면 도파민이 폭발할 텐데.
‘하이힐 담론’은 뾰족한 뒤축만큼이나 균형감을 상실했다. 세멀핵은 하이힐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여성은 비논리적’이라는 관념을 영속화하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1871년 ‘뉴욕타임스’는 여성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주장하기 전에 편안한 신발을 챙겨 신는 분별부터 갖추라고 조롱했다. 1984년 ‘월스트리트저널’은 앞부분이 트인 토슈즈를 신는 여성은 최고경영자(CEO)감이라기보다 섹스파트너로 더 적합하다고 썼다. 뛰어난 패션감각으로 유명했던 테레사 메이 영국 전 총리는 구두가 몇 개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여성이 정치에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면 정확한 질문이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굽 높은 구두는 ‘당당한 여성’이라는 메시지를 획득했다. 기업가이자 전 메타의 최고운영책임자였던 셰릴 샌드버그는 ‘린 인’이란 책을 통해 여성에게 야망을 불어 넣었다. 페미니스트 벨 훅스는 샌드버그가 ‘신자유주의 기업 페미니스트 판타지’를 판매한다고 비판했지만 샌드버그는 그런 목소리를 질투 정도로 치부했다. 샌드버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한국에서도 ‘하이힐 리더십’ 담론이 꽤 인기를 끌었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보듯 하이힐은 신자유주의 페미니즘의 다른 이름이었다.
한국의 여성들은 오래전부터 이 구두의 당당한 이미지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2008년 ‘촛불 광장’에 참여한 2030 여성은 ‘하이힐 부대’로 일컬어졌다. “민주주의 파티장에 운동화는 맞지 않다”, “하이힐을 신으면 내가 파워풀하다고 느낀다”고 그들은 말했다. 이 광장은 신자유주의에 맞선 민중의 저항이라고 분석되었지만, 광장 안에 신자유주의적 욕망이 전혀 없다고 볼 수도 없었다. 2010년대 이후 여성성을 강조하는 복장 규정이나 성애적 의미를 띤 하이힐을 거부하는 여성주의 운동이 벌어지는 한편, 하이힐은 신자유주의적 삶을 돌파하려는 여성 개인의 무기로 채택되었다.
하이힐과 함께 여성의 비논리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신발이 바로 전족이었다. 중국의 전족 문화에 관한 연구서 ‘문화와 폭력’을 쓴 인류학자 드러시 고는 발을 동여맨 것도, 발을 푼 것도 성별 불평등이 연루돼 있다는 점을 밝혔다. 반전족 운동은 중국 여성 해방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묶인 발을 푸는 ‘방족’도 성공적이라 할 수는 없었다. 반전족 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전족 여성의 타자화, 혐오화였다. ‘작은 발 페티시즘’을 가졌던 선조들과 달리 청 말의 남성 사상가들은 전족 여성을 기생충, 팜 파탈로 여겼다. 국가적 수치에서 벗어나려는 근대 남성 민족주의자들에게 방족은 필수적인 문화 변형 과정이었다. 작은 발을 만들기 위해 안으로 접힌 발가락과 발바닥은 하루아침에 펼쳐지지 않았는데, 방족은 전족에 버금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다. 전족만큼 방족을 한 여성의 걸음도 부자연스러웠다.
1963년 남일해가 부른 ‘빨간 구두 아가씨’는 ‘똑똑똑 구두소리’를 내면서 ‘밤밤밤 밤길’에 홀로 바삐 걸음을 재촉한다. ‘어딜 가시나’라는 남자의 말을 들었는지도 모른다. 무서웠을 것이다.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맘껏 걷기 힘들다고 느꼈을 때 페미니즘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새로 쓴 신데렐라 이야기인 ‘해방자 신데렐라’ 결말에서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진열장에 넣어 둔 채 튼튼한 부츠를 신고 말에 올라타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2017년 ‘걷기의 인문학’이 한국에 출간된 것을 기념하며 솔닛은 한국 독자들에게 존경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비무장한 시민들이 부정한 정권에 맞선 모습이 경이로웠다며 그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투표를 넘어서는 하나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공적 공간에서 육체적으로 한데 모이는 경험,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걸어가는 경험”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힘의 경험”이라며 솔닛은 덧붙였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이 찬란한 봄, 말없는 발들의 움직임과 저항이 계속되길 바란다.
이유진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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