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아닌 우울한 과학이 필요한 때 [세상읽기]
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은 자신의 대표작 ‘영웅숭배론’에서 진실성과 성실성 그리고 통찰력을 갖춘 역사 속 위인들을 소개한다. 그가 꼽은 영웅에는 크롬웰, 나폴레옹 같은 군주는 물론 셰익스피어, 루소, 루터 등 문인과 성직자도 포함된다. 칼라일의 말을 빌리자면 “시대의 요구를 식별하는 지혜와 시대를 바르게 이끌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위인이 세상을 멸망에서 구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유능한 사람을 찾아 그를 최고의 자리에 모시”는 게 이상적인 나라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칼라일은 헌법 제정, 선거, 의회에서 토론보다 영웅을 “충성으로 숭배하”는 것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더 우월한 수단이라 믿었다.
이러한 칼라일의 세계에서 경제학은 “우울한 과학”이다. 칼라일이 이해하기로 고전경제학자들은 우주의 비밀을 수요와 공급에서 찾고, 통치자의 의무를 시장이 잘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으로 한정했다. 존 스튜어트 밀을 비롯한 ‘우울한 과학의 주창자’들은 유럽인과 식민지 원주민, 팔려온 노예 모두 동등한 인간이며 그들 사이 자유로운 경쟁이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한다고 봤다. 그러나 칼라일의 생각은 달랐다. 1849년 그가 쓴 ‘흑인 노예에 관한 특별 담화문’에는 노예해방으로 영국 식민지 경제가 파탄에 이를 것이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계몽된’ 백인들이 ‘게으른’ 흑인들을 농노로 삼아 성실히 일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경제학이 우울한 과학이 된 또다른 이유는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과 관련이 있다. 맬서스는 기하급수적 인구 증가로 삶의 질이 악화할 것이라 진단하며, 인구가 전쟁, 기근, 전염병을 통해 사후적으로 줄거나 출산 통제를 통해 예방적으로 줄 것이라 전망했다. 칼라일은 자신의 저서 ‘의상철학’에서 맬서스가 “인구 증가에 대한 심한 공포에 사로잡혔다”고 평가했으며, 또다른 저서 ‘차티즘’에서 맬서스의 인구 증가 억제 방식이 “음산하고, 무신경하며, 우울하다”고 혹평했다. 논리와 통계에 기반을 둔 진단과 전망이 항상 낙관적일 수는 없을 텐데, 칼라일의 관념에서 맬서스가 상상해낸 “혼란과 회의, 혼미한 상태”는 “신으로부터 직접 능력을 받아 내려오는 위인”이 능히 바꿔낼 수 있었다. 영웅의 역할을 부정하는 경제학이 그의 눈에 우울해 보인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후 역사는 칼라일보다는 경제학자들의 손을 들어준 듯하다. 칼라일의 영웅숭배론은 독재를 옹호하고 파시즘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는 오명을 쓴 반면, 경제학은 진화를 거듭하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강력한 도구로 받아들여졌다. 칼라일의 걱정과 다르게, 어떤 경제학자들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 두라고 조언하지 않고, 어떤 경제학자들은 수요-공급 뒤의 권력관계에 주목하기도 한다. 인간의 이타심과 제한된 합리성도 경제학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밀턴 프리드먼, 더글러스 노스, 대니얼 카너먼, 벤 버냉키 등 우울한 과학의 주창자들이 세상에 끼친 영향력은 칼라일의 영웅들과 견줄 만하다.
물론 숫자와 논리로 내다보는 세상은 여전히 우울하다. 선진경제권을 위주로 장기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고, 숙련편향적 기술발전은 불평등을 유례없이 확대하며, 저출생 고령화로 인한 부양 부담 증대는 의료, 연금, 노동, 교육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래 세대가 져야 하는 짐의 무게가 그리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혼미한 시대는 또다시 영웅을 부른다. 총선을 앞둔 우리나라에서 과거와 현재의 영웅이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다. “건국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초대 대통령의 전기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고, 산업화를 이끈 전임 대통령의 동상 건립 시도가 아주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유력 정당의 대표들은 모두 자신이 “운동권 청산” “정권 심판” “검찰독재 종식”을 이끌 적임자라며 지지를 호소한다. 이 중 일부는 적잖이 인기를 끌어 선거가 끝난 후 “영웅”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대의 과제가 산적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영웅이 아니라 우울한 과학이다. 그게 꼭 경제학일 필요도 없다. 자유롭고 합리적인 개인들이 엄밀한 근거를 토대로 협력하고 또 경쟁하면서,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선거의 결과가 어떠하든, 투표로 표출된 시민들 각자의 정의가 세상을 혼란과 멸망에서 구해낼 것이라 믿는다. 영웅이 되고 싶은 당선자들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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