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 연이은 재판…'D-1'에도 출석 [이재명 재판 취재파일(10)]
● '총선 전야' 줄이은 대장동 재판
- '재판부 경고' 뒤 출석하며 "정치 검찰 노린 결과"
- 이재명 "나 없더라도 재판 지장 없어"
- 이재명 측 "총선 이후로"…재판부 "어렵다"
- "천금 같은 시간에"…휴정 시간 원격 유세도
- "안 갈까 생각 중"…고심 끝 '총선 D-1'에도 출석
"그럼 4월 2일, 4월 9일 다음 두 기일은 이렇게 하고요." (재판장)
"…….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이재명 대표)
"어려울 것 같고, 나오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재판장)
"13일의 선거운동 기간 중에 ……." (이재명 대표)
"저희 입장은 일단 그렇습니다." (재판장)
4·10 총선을 앞두고 13일간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튿날인 지난달 29일 오후 4시쯤,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대장동·백현동·성남FC 의혹' 재판의 다음 날짜를 정하는 재판장을 향해 침묵을 지켜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입을 열었습니다. 법정에 마이크가 설치돼 있었지만, 이 대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양해를 구하는 통에 방청석에 앉은 취재진에게는 내용이 분명히 전해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4월 2일뿐 아니라 총선 전날인 9일에도 선거운동에 임하지 못하고 피고인으로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 부담을 호소하며 선거 이후로 재판 날짜를 조정해 달라는 취지였습니다.
재판장은 단호했습니다. 이 대표의 변호인이 거듭 날짜 조정을 요청했지만 "바꾸기는 어려울 거 같다"고 못 박았습니다. 재판부는 지난해 여름 공판 준비기일부터 "사안이 특수한 만큼 주 2회 진행은 생각해야 한다"며 속도감 있는 진행을 예고했고, 본격적으로 공판이 시작된 뒤론 여러 차례 "원칙대로 진행하겠다", "정치 일정까지 고려해 줄 순 없다"는 입장을 밝혀온 바 있습니다.
'재판부 경고' 뒤 출석하며 "정치 검찰 노린 결과"
법정에 출석한 이 대표는 취재진과 만나 짧게 심경을 말했습니다. 상대는 재판부가 아닌 자신을 기소한 검찰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선거 하루 전날까지 기일이 잡혀 있는데 입장은 뭔지' 묻는 취재진에 "아쉽기는 하지만 법원의 결정을 존중해서 13일의 선거 기간 중 정말 귀한 시간이지만 법원에 출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총선 직전까지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이것 자체가 독재 국가의 정치 검찰이 노린 결과가 아닌가 한다"라고도 했습니다.
이 대표 측은 이날 재판 하루 전에도 재판부에 재판 날짜를 바꿔달라며 공판기일 변경신청서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재판 시작에 앞서 김동현 재판장은 "이재명 피고인 측에서 기일변경을 신청했는데, 제가 불허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재명 "저 없더라도 재판 지장 없어"
재판 시작 전 법정에 들어선 재판장은 자리에 앉기 전 시선을 잠깐 피고인석에 앉은 이 대표에게 두었습니다. 경고한 대로 법정에 나왔는지 확인하는 차원으로 보였습니다.
이 대표는 이날 아침 법정으로 향하기 전 장외에서 검찰을 향해 날을 세웠습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출근길 총선 지원 유세 도중 "정치 검찰이 이재명 야당 대표의 손발을 묶고 싶어 한다"며 "검찰 독재국가의 실상"이라고 발언한 겁니다. 이 대표는 "재판 문제는 법원이 아니라 검찰의 문제"라며 "유동규에 대한 (저의) 반대 심문은 끝났고, 정진상 피고인의 반대 심문을 하는 시기라 저는 하루종일 남 재판을 구경하는 입장인데, 검찰이 굳이 이재명이 (재판에) 있어야 한다고 우겨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고도 했습니다.
법원에 도착해선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입정한 이 대표는, 재판이 시작된 직후 법정에서 "검찰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사실 제 반대신문은 끝났고 정진상 측 반대신문만 있어서 제가 없더라도 재판 진행은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직전 재판에서 검찰이 불출석한 이 대표와 관련해 "예외가 원칙인 것처럼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며 재판부에 강경한 조치를 촉구한 것을 지적한 겁니다. 검찰을 먼저 언급했지만, 사실상 재판부를 향해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도 비쳤습니다. 이 대표 측 변호인도 재판부에 "선거운동 기간 사정을 고려해 변론 분리가 불가능한 건지 재고해 달라"며 재판부에 변론을 분리해줄 것을 거듭 요청했습니다.
이재명 측 "총선 이후로"…재판부 "어렵다"
이 대표 측은 "총선 이후로 기일을 잡아 달라"며 사정했습니다. 재판부는 "선거 이후로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변호인은 "다른 것도 아닌 총선이고, 피고인에게 개인적으로 불리할 뿐 아니라 피고인이 속한 제1야당의 역할 등을 생각해볼 때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한다"고 반발했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까지 드리지 않으려 했는데 여당의 나경원 전 의원의 경우 재판이 몇 년간 사실상 공전 중"이라며, 통상적으로도 "선거 기간을 빼고 (기일을) 지정하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이재명 피고인 본인의 후보자 지위뿐 아니라 당 대표의 지위 활동이 있는데, 선거 직전까지 기일을 잡는 건 너무나 가혹하고, 모양새도 좋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강경했습니다. 이 대표 측 변호인이 '선거의 중요성', '과잉 금지원칙' 등을 거론하며 항의하자 재판부는 "변호인들과 토론하고 싶지 않다"며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어 "피고인 측 의견을 잘 안다"면서도 "재판부에서 피고인 측의 정치 일정을 고려해 재판 기일을 조정해주는 건 특혜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또 "저희 입장은 지정된 대로 한다는 것"이라며 "맞출지 안 맞출지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불출석하면 구인장 발부까지는 하겠다는 입장"이라며 방침을 확고히 했습니다.
"천금 같은 시간에"…휴정 시간 원격 유세도
법원에 도착한 직후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에게 이 대표는 "천금 같이 귀한 시간에 선거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공식 선거운동 기간 13일 중 3일간 법정에 출석하게 됐다"며 "정말 천금 같이 귀한 시간이고 국가의 운명이 달린 선거에 제1야당의 대표로서 선거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참으로 억울하고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나 이 역시도 검찰 독재 정권의 정치, 검찰이 수사·기소권을 남용해 가면서 원했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고도 했습니다. "참으로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 하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재판에선 이날도 정진상 피고인 측의 유동규 전 본부장을 상대로 한 증인신문이 이어졌습니다. 유 전 본부장이 변호인의 질문에 답하며 "이재명하고는 약속하지 않고 언제든 찾아가 만날 수 있었다"고 증언하자 이 대표가 실소하듯 웃었고, 유 씨가 "나 안 만났느냐, 왜 웃느냐"라고 거세게 항의하며 잠깐 소란이 있기도 했습니다.
오전 재판 도중에는 방청객 한 명이 변호인 측 질문에 답변하는 유 전 본부장을 향해 "목소리 낮춰"라고 외쳤다가 재판장으로부터 퇴정 조치를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입장을 바꿔 이 대표에게 불리한 진술과 증언을 이어온 유 전 본부장은 "(이 대표의 지지자들이 자신을 향해) 온갖 욕설을 하고, 모멸감을 느낄 상황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저는 여기서 사실을 이야기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라며 "이 상황에서 증언하는 것이 쉽지 않고, 이 대표에게 불리하거나 사실대로 말하는 것은 목숨 걸고 하는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심정"이라고도 했습니다.
'총선 D-1' 재판 앞두고 "안 갈까 생각 중"
9일 민주당 대표실의 한 핵심 관계자는 "너무 중요한 선거라 고심 중"이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선거를 목전에 둔 야당 대표로서의 정치적인 유·불리와, 재판 받는 피고인으로서의 사법적 의무 모두 고려해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단 겁니다.
고심 끝 출석…유세장 방불케 한 법정 밖 11분
이 대표는 "오늘 저는 2년째 겪고 있는 억울함과 부당함, 저 하나로도 부족해서 제 아내까지 끌어들인 정치검찰의 무도함에 대해선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입을 뗐습니다. 3년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당 관련 인사에게 경기도청 법인카드를 유용해 식사를 제공한 혐의를 받는 아내 김혜경 씨가 전날 수원지법 2차 공판기일에 출석한 것을 언급한 겁니다.
이어 투표 참여를 독려하며 정권 심판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 선거 전날인 오늘, 초접전지들을 들러서 한 표를 꼭 호소하고 싶었다"며 7곳 접전지의 후보들을 일일이 호명하기도 했습니다. 또 "재판에 출석하지 말고 지역을 돌아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고, 일분일초를 천금처럼 쓰고 싶었다"면서 "저의 손발을 묶는 게 정치 검찰의 의도인 것을 알지만 국민으로서 재판 출석 의무를 지키기로 했다"고도 했습니다.
발언 후반에는 감정이 격해진 듯 10여 초 간 말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제가 다 하지 못하는 제1야당 대표의 역할을 국민 여러분이 대신해달라"고 말한 뒤 법정으로 향했습니다.
재판에서는 유동규 전 본부장에 대한 정진상 피고인 측의 증인신문이 계속 됐습니다. 이 대표는 오전 재판 뒤에는 차량 안에서 '휴정 중 긴급 라이브'란 제목으로 원격 유세를 이어갔습니다. 이 대표는 "1분 1초가 중요한 시간이라 부탁 말씀 좀 드릴 겸 방송을 하려고 한다"며 "출석을 안 할 수도 있지만, 원리 원칙에 따라 답답하고 억울하긴 해도 출석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는 이날 출석으로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총선 공식 선거운동 기간 13일 중 총 사흘을 대장동 재판 출석을 위해 법정에 나왔습니다.
총선이 지나도 서초동을 오가야 하는 이 대표의 재판 부담은 여전합니다. 대장동 재판뿐 아니라 지난 대선 국면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를 받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위증교사 의혹 사건 재판도 같은 법원에서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오는 12일에는 공직선거법 재판이, 16일과 23일, 26일에는 대장동 재판이 예정돼 있습니다. 그 사이 22일에는 위증교사 재판이 잡혀있습니다.
한성희 기자 chef@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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