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휴전 요구’, 뒤에선 ‘무기 장사’···가자 전쟁에 웃는 미국·독일?[뉴스분석]

선명수 기자 2024. 4. 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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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주택가 도로에 미사일이 떨어져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5일(현지시간) 유엔 인권이사회는 세계 각국에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지난해 10월 전쟁이 시작된 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3만3000여명 넘게 숨지는 등 민간인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살상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요구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총 47개 회원국 가운데 찬성 28표, 반대 6표, 기권 13표로 결의안은 통과됐지만, 인권이사회 결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금수 조치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 반대표를 던진 6개국 가운데는 이스라엘의 최대 무기 지원국인 미국과 독일이 포함됐다.

이들 국가는 민간인 피해를 우려하며 공식적으로는 휴전을 촉구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선 이스라엘에 막대한 양의 무기 판매를 계속하고 있어 ‘이중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휴전’ 압박하던 미국, 뒤에선 이스라엘에 100차례 무기 판매

이스라엘은 세계 9위 무기 수출국이자 첨단 무기의 주요 생산국이지만, 동시에 전투기와 미사일 등을 서방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IRI)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해외에서 들여온 무기의 99%는 미국과 독일로부터 수입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2019~2023년 전체 수입 무기의 69%를 미국에서, 30%를 독일에서 사들였다. 미국과 독일에 이어 이탈리아가 이스라엘에 세 번째로 많은 무기를 수출했지만 그 비중은 0.9%에 불과했다.

미국과 독일의 무기 수출은 이들 국가의 무기 생산 능력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정부 정책의 결과다. 다만 지원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미국의 군사 원조는 주로 미국산 무기에 대한 보조금 지원 방식으로 매년 이뤄진다. 독일의 경우 자국산 무기의 이스라엘 수출을 적극적으로 승인하며 이스라엘의 군사적 지원자 역할을 해 왔다.

미국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인 1999년부터 10년 단위로 이스라엘에 군사 원조를 해 왔다. 2016년 맺은 양국 간 협약에 따라 2018년부터 10년간 연간 38억달러씩 총 380억달러 군사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 원조는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국가들에 대해 ‘질적 군사적 우위(QME)’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양측이 맺은 양해각서에 따라 미국은 무기 구입에 330억달러,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50억달러를 지원한다.

이스라엘은 이 돈을 주로 미 록히드마틴사가 생산하는 스텔스 다목적 전투기인 F-35를 구입하는 데 사용해 왔다. 지금까지 75대를 주문했고, 지난해 기준 36대를 인도받아 미국의 지원으로 그 비용을 지불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을 제외하고 F-35를 처음으로 도입한 국가이자, 중동지역에서 유일하게 F-35를 보유한 국가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이 전투기를 실제 전쟁에 이용한 최초의 국가다. 최근 이스라엘군은 이란 영토인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미사일 6기로 폭격할 때도 F-35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 남부 공군기지에서 F-35 전투기가 비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울러 미국은 2006년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전쟁 후 저고도 방공 시스템인 ‘아이언 돔’을 지원하는 한편 100~200㎞ 거리에서 발사된 로켓을 격추하도록 설계된 ‘데이비드 슬링’ 등 이스라엘의 방공 시스템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왔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도 미국의 지원은 전폭적이면서도 신속했다. 미국은 핵 추진 항공모함 전단 2개를 지중해로 급파했고, 미국산 고성능 탄약이 실린 비행기를 포함해 주력 전투기를 즉각 이 일대에 배치했다.

이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140억달러 규모 추가 군사 원조를 포함해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지원 예산을 하나로 묶은 안보 패키지 예산을 의회에 넘겼으나,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로 현재 하원에서 보류 중이다.

그러나 의회의 예산 승인 없이도 바이든 정부는 전쟁 발발 후 100차례 넘게 이스라엘에 무기를 비공개로 지원해 왔다. 미국이 보낸 무기에는 파괴력이 매우 강한 2000파운드급 MK84 폭탄 수천개와 정밀 유도 탄약, 소구경 폭탄 등이 포함돼 있다.

바이든 정부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최후의 피란처’로 불리는 최남단 도시 라파 공격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이스라엘 정부와 갈등을 빚은 이후에도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이스라엘이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중동지역 확전 위기감이 최고조로 치솟은 상황에서도 미국 정부는 개전 이후 최대 규모 무기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에 F-15 전투기 50대 등 180억달러 상당의 무기를 판매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의회에 승인을 요청했다.

‘홀로코스트 역사’ 때문이라지만···또 ‘학살 조장’ 혐의받게 된 독일

미국에 이어 이스라엘에 두 번째로 많은 무기를 보내고 있는 독일은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에 무기 판매를 크게 늘렸다. 지난해 11월 기준 독일의 대이스라엘 무기 수출액은 전년에 비해 10배 급증, 3억5400만달러를 기록했다. 독일 dpa통신에 따르면 수출한 무기의 대부분이 방공 시스템 및 통신장비용 부품이지만, 대전차 무기와 기관총, 탄약 등 2200만달러 상당의 공격용 무기도 포함됐다. 무기 수출은 대부분 지난해 10월7일 전쟁이 시작된 후 승인됐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전쟁이 시작되자 “독일엔 이스라엘 편에 서는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으며 이스라엘의 안보는 독일의 ‘국가 이성(reason of state)’”이라고 강조했다. ‘국가 이성’이란 말은 2008년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맞아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이스라엘 의회에서 연설하며 처음 언급한 것으로, 이는 과거 유대인 홀로코스트 가해국인 독일이 이스라엘을 지지해야 하는 ‘역사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따라 독일에선 이스라엘의 민간인 살상을 거론하는 것만으로 ‘반유대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정부가 이스라엘 비판 목소리를 차단하는 등 논란이 계속돼 왔다. <독일과 이스라엘>의 저자 다니엘 마르베키는 최근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2008년 선언 이후 독일은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렸고 자발적으로 선택권을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8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사법재판소 앞에서 시민들이 독일의 이스라엘 무기 판매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문제는 미국과 달리 독일은 민간인 공격에 사용될 수 있는 무기의 판매를 금지한 유엔 무기거래조약(ATT)의 당사국이란 점이다. 니카라과가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자지구 학살 조장’ 혐의로 독일을 제소한 것 역시 이에 근거한 것이다.

최근 독일 정부는 가자지구 민간인 사상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할 수는 없다”며 기류 변화를 보였지만, 무기 판매에 있어선 변화가 없었다고 영국 BBC는 지적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가 이스라엘에 무기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은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말 이후 160개 인권단체와 국제기구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금수 요청에 서명했다. 특히 최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국제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 소속 외국인 구호 활동가 7명이 사망하자 무기 수출에 대한 비판 여론은 더 커지고 있다.

커지는 ‘무기 장사’ 비판 여론…국제사회 금수조치 성공할까

일부 서방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무기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잇따라 발표했다. 벨기에, 캐나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은 국제인도법 위반에 대한 우려로 가자지구에서 쓰일 수 있는 무기 판매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덴마크에선 지난달 인권단체들이 이스라엘에 무기 판매를 중단하라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최근 프랑스 의회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비슷한 조치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자국민 구호 활동가 3명이 사망한 영국에서도 800명이 넘는 법률가들이 정부에 서한을 보내 “국제법 위반에 연루되지 말라”며 무기 수출 중단을 촉구했다. 이밖에 일본 종합상사인 이토추는 지난 2월 ICJ 판결에 따라 이스라엘 주요 방산업체와 파트너십을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대이스라엘 무기 수출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됐으나, 이 결의는 구속력이 없어 실제 무기 판매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다고 BBC는 내다봤다. 여기에 최대 무기 수출국인 미국과 독일 정부는 반대표를 행사했다.

결의가 법적 구속력을 갖기 위해선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1948~1995년 극단적 인종분리 정책) 시절 시행했던 것처럼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투표로 금수 조치를 강제하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제니퍼 에릭슨 미 보스턴대학 교수는 “결과적으로 UN이 이스라엘에 무기 판매 중단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유럽연합(EU) 차원에서 회원국들에 금수 조치를 강제할 수 있으나, 이는 전체 회원국의 합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독일이 동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구급차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심하게 파손돼 있다. 팔레스타인적신월사 제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은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를 저지른 해외 군사조직 등에 대한 군사 지원을 금지하는 ‘리히법’을 시행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이 이 법에 따라 제재를 받은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다만 미국에서도 무기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시간주와 위스콘신주를 중심으로 일부 민주당 유권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계속 이스라엘 편에 선다면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밖에 국무부 관리들이 정부의 무기 지원을 비판하며 잇따라 사임하는 등 정부와 민주당 안에서도 반발 기류가 커지는 분위기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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