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세월호 10년] ‘미완’을 딛고 한 걸음 앞으로

류석우 기자 2024. 4. 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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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10년간 진상규명 과정을 통해 밝혀진 것들, 그리고 다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누운 상태로 육지로 인양된 세월호가 2018년 5월10일 바로 세워졌다. 류우종기자 wjryu.@hani.co.kr

왜 이 책을 썼냐고 물었을 때, 그가 말했다. “별로 밝혀진 게 없지 않냐, 세금 낭비라는 쪽으로 얘기하더라고요. 그건 아무것도 모르면서 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거든요. 이미 많은 것이 밝혀졌는데…, 지금도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고 하는데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많이 불분명해진 것 같아요.” 2024년 3월30일, 경기 고양시 4.16안전사회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준형 엄마 오현주씨가 한 말이다.

사참위 활동이 끝나자 쏟아진 비난

2022년 9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활동이 3년6개월 만에 끝났다. 사참위는 여러 가지를 조사했지만 결정적으로 ‘침몰 원인’에 대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사참위는 종합보고서를 통해 이른바 ‘내인설’(배의 복원성과 조타장치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등 기관 고장에 의한 침몰)은 적극 부정하면서 ‘외력설’(잠수함 충돌)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비판이 줄을 이었다. ‘침몰 원인 규명 못해’ ‘결론 얼버무렸다’ 등의 기사가 쏟아졌다. 심지어는 ‘세월호 9번이나 우려먹은 사참위를 조사하라’거나 ‘4년간 ○○○억원 세금 쓰고도 결론 못 내고 해체’라는 제목도 있었다.

이런 인식은 우리 사회에서 재생산됐고, 확대됐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2023년 6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반대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특별법은 결코 옳은 방법이 될 수 없다. (세월호 참사는) 8년 동안 수백억원을 들여 9차례나 진상 조사와 수사를 반복했지만 세금 낭비와 소모적 정쟁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는 프레임이 이어진 까닭이다.

그러나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나는 동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수많은 잘못과 구조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세월호는 더 많은 화물과 승객을 싣기 위해 증개축되면서 무게중심이 높아진 배였다. 이를 확인하는 검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배였다. 늘 한계 이상의 짐을 실었던 배였다. 화물을 제대로 묶어놓지도 않은 배였다. 침몰을 더디게 해줄 수밀문은 다 열려 있는 배였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선장이 있던 배였다. 구조할 훈련도 능력도 돼 있지 않은 해경이 있는 바다에서 넘어진 배였다. 구조보다는 보고가 우선시되는 정부가 있는 곳에서 침몰한 배였다. 모두 참사 이후 드러난 사실들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한겨레21>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진상규명 과정에 참여했던 조사관, 유가족, 교수, 변호사 등 8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이들이 남긴 기록을 들여다봤다. 지금까지 진행된 수사와 재판, 조사에 담기지 못한 맥락을 정리하고 사회적 합의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다.

2022년 6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가습기살균제와 세월호 조사 결과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활동 종료 이후에도 계속된 연구

정준모 인하대 교수(조선해양공학)를 만난 건 2024년 3월28일 인하대의 사무실에서였다. 그는 대한조선학회가 2022년 사참위에 세월호 침몰 원인과 관련한 의견서를 냈을 당시 학회 해양안전위원장이었다. 사참위는 활동을 마쳤지만, 정 교수의 연구는 더 깊어졌다. 그가 사참위 종료 이후 인하대 학생들과 진행한 실험은 세월호의 외부 손상 재현과 관련한 것이다. 앞서 대한조선학회는 2022년 사참위에 “외력설의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으므로 (세월호 좌현에 존재하는) 손상의 원인으로 간주하기 어렵다”며 이 손상이 인양과 직립 등 과정에서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사참위에서 이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사참위 활동은 끝났지만, 정 교수는 여전히 그 의견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직접 진행하고 있다.

“여기 보십시오. 주요 손상부가 여기입니다. 착지 당시에 평평한데도 불구하고 벌써 높은 손상도가 나타나죠. 이 부분이 굉장히 취약하다는 거예요.” 정 교수가 피피티(PPT) 화면을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인양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보면 실제와 유사하게 리프팅 빔 자국이 남고 실제와 유사하게 다발적인 손상도 나오거든요. 인양 과정에서 다발적 손상이 날 수 있다는 거예요. 심지어 이건 정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심한 손상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는 2023년 11월 대한조선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서도 이 내용을 발표한 바 있고, 2024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서도 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 교수가 이렇게 여전히 세월호 참사 원인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진상규명 과정에서 나온 외력설을 추가로 검증하기 위해서다. 그는 “(세월호) 손상이 잠수함 충돌 때문이라고 자꾸 말하니까 저는 ‘그건 아니다’라는 걸 얘기하려 한 것”이라며 “(인양과 직립 등 과정에서도) 손상이 날 수 있음을 이번에 처음으로 규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참위에 참여한 이들 중에선 여전히 정 교수와 대한조선학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가 많다. 3월30일 만난 박병우 전 사참위 진상규명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한조선학회는 사참위의 조사 결과를 검증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에요. 의무 사항 자체가 아니죠. 저희가 내놓은 주요한 결과와 관련해서 그쪽에 의견을 구하는 방식이었고 어느 한 주제만을 가지고 이렇게 던지는(의견을 구하는)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쪽에서 몇 가지 주제를 선택해서 의견이 왔는데 솔레노이드 밸브 관련해선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어요.”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은 세월호의 침몰 원인이 배 내부에 있다는 ‘내인설’과 연관돼 있다. 복원성(배가 기울었을 때 원상태로 돌아오려는 성질)이 취약한 세월호가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을 계기로 급히 우선회하며 좌현으로 기울었다는 것은 사참위 이전의 두 번째 국가 조사기구였던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의 내인설 보고서가 채택한 핵심 침몰 원인이었다. 하지만 사참위는 이를 기각했다. 정 교수는 박 전 국장의 말과 달리 당시 사참위에서 이미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얘기하지 않았을 뿐,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을 계기로 세월호가 침몰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정준모 인하대 교수가 2024년 3월28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사참위 이후 검증을 진행한 세월호 인양 시뮬레이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류석우 기자

신뢰할 만한 수치를 둘러싼 두 가지 입장

여전한 이런 견해차는 재난 진상조사에 대한 두 개의 관점에 따른 것이다. 박병우 전 국장은 증명할 수 없는 수치를 근거로 설명하는 것은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게 복원성이다. 그는 복원성 불량이 내인설의 핵심이라면 복원성이 정확히 수치가 몇인지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네덜란드의 해양연구소 마린(MARIN)도, 대한조선학회도 증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복원성이 너무 낮다고만 하면 저희는 당연히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어봐야죠. 저희가 납득하려면 이러이러한 계산을 해보니 (복원성이) 이렇다는 답변을 해줘야 하는데 그냥 추상적으로 복원성이 너무 낮았다고만 하는 거죠. 토론의 여지가 없어요.”

사참위는 이런 차원에서 앞선 선조위 조사에서 조작이 없었다고 합의했던 선박자동식별장치(AIS) 항적 조작 의혹이나 폐회로텔레비전(CCTV) 의혹 등에 관해서도 조사를 벌였다. 다만 이 부분은 전원위원회에서 ‘불채택’되어 종합보고서에 실리지 않았다. 박 전 국장은 “세월호 침몰의 정확한 원인은 지금도 모르지만, 모르고 넘어갈 것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할 것 같다”며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계속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앞으로 어떻게 더 진상규명을 할 것인지에 관해서도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조위와 2024년 4월 발간된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재단법인 ‘진실의 힘’) 등에서는 복원성 수치와 같은 부분은 정확한 검증이 어렵다고 본다. 세월호는 복원성과 무게중심을 측정하는 경사 시험부터 미탑재물 중량을 예외적으로 많은 상태에서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에 선조위는 내인설과 ‘열린안’(사실상 외력설) 보고서를 각각 다른 복원성값을 토대로 결론을 냈다.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도 이런 점을 지적한다. “세월호의 복원성값을 오차 없이 정확하게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복원성값 계산에 들어가는 각종 정보의 근본적 한계로 인해 사고 당시 세월호의 실제 GoM(악화된 복원력값을 GM에 반영한 수치)값을 완벽하게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복원성값을 정확히 구하지 못한다고 해서 배가 쓰러진 원인까지 미궁에 빠지는 건 아니다. 마린은 선조위와 사참위의 의뢰로 세월호를 25분의 1로 축소한 모형을 제작해 여러 조건을 바꿔가며 선회와 횡경사 움직임을 시험한 바 있다. 내인설과 열린 안 각각의 복원성값을 토대로 실험을 진행한 마린은 “낮은 GM(배의 무게중심과 메타센터 간의 거리. 무게중심이 낮을수록 GM은 커지고 선박은 안전해진다)과 방향타 사용, 화물 이동이 모형 세월호의 빠른 선회와 극도의 횡경사를 만든 주요 요인”이라며 “외력의 작용을 도입할 필요 없이 내적 요인에 의해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의견을 냈다.

이렇게 침몰 원인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시선의 간극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황정하와 홍성욱은 2021년 발표한 ‘세월호 복원성 논쟁과 재난 프레임’ 논문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간극은 데이터나 정보의 차이보다도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했다고 설명한다. “외력의 가능성을 제시한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가 비정상적이고 지극히 예외적인 사고이기 때문에 모든 의혹에 대한 보다 철저한 조사와 검증이 필요하다는 프레임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바라봤다. 이런 ‘예외’ 프레임은 세월호 사고 직후부터 오랜 시간 동안에 축적됐던 의혹과 불신의 지반에서 만들어지고 공고해졌다. 반면 세월호의 불량한 복원성을 강조한 사람들은 세월호 사고 역시 다른 사고와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적으로 규명 가능한 침몰 원인 요소들을 사용해서 규명할 수 있다는 프레임을 통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이해하려고 했다. 다른 두 개의 재난 프레임은 공통분모가 거의 없었다.”

다만 ‘재난 조사’라면 다른 관점을 인정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관을 거쳐 선조위와 사참위에서 보고서 집필에 참여한 박상은 전 조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100% 재현이라는 건 사실 과학에 없어요. 끝까지 복원해야 진상규명이 끝난다는 건 세계관이 다른 거죠. 논쟁해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다만 재난 조사는 100%를 복원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하는 게 필요한지를 계속 사회적으로 설득해야 하죠. 세세한 궁금증이나 원인을 파악하는 데 핵심 질문이 아닐 수도 있는 의혹을 100개, 200개씩 나열해 밝히는 게 재난 조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과정의 경우) 의혹을 조사하고 이걸 끝까지 밝히려 했던 게 재난 조사의 상을 우리 사회에 잘못 자리잡게 만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8년 6월 전남 목포신항에 있는 세월호 선체 내부를 현장 관계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구별해야 할 두 가지, ‘사고’와 ‘참사’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되레 새로운 관점이 제시됐다. “저는 세월호 ‘사고’와 ‘참사’를 나눠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3월30일, 오현주씨와 함께 만난 장훈 4.16안전사회연구소장이 말했다. 그는 이제 ‘침몰 원인’보다 그 이후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선조위가 끝나고 저도 마음이 되게 복잡했어요. 여러 교수님도 찾아가고 나름 공부도 하면서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사고’와 ‘참사’를 나눠서 생각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가 넘어졌을 때는 아무도 죽지 않았거든요. 근데 그 사고가 참사로 번지게 만든 건 국가였어요. 제대로 구조하지 않았고 선원들은 다 도망갔거든요. 침몰 원인을 포기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남겨놓고 나머지 부분에 좀더 집중해야겠다는 거죠.”

애초 국가의 구조 실패(방기)에 관한 조사는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초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조사기구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선조위 사무처장을 지낸 이정일 변호사는 “만약 수사기관에서 (처벌에 초점을 맞춘) 진상규명을 다했다면 조사기구는 원래의 목적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런데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처벌의 관점에서만 계속 요구를 받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2024년 3월30일 장훈 4.16안전사회연구소장이 <책임을 묻다> 책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장 소장 오른쪽에 세월호 모형 선박이 보인다. 류석우 기자

수사기관에서 하지 못했던 책임자 처벌에 초점을 맞춰 조사하다보니 내부에선 중요한 팩트를 담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도 있었다. 사참위에서 침몰 이후 구조 실패 부분을 조사했던 이준태 전 조사관은 “위치별로 언제까지 퇴선 지시를 들으면 나올 수 있었는지를 계산해봤는데 가장 늦게는 10시17분까지도 나올 수 있었다”며 “그런데 이렇게 쓰면 재판에서 이 시간을 근거로 해경 지휘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구조적인 부분을 짚거나 설명하지 못한 문제도 발생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왜 그런 일들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시도는 제대로 되지 못했다. 사참위의 보고서는 당일 대응과 관련한 많은 양의 개별적인 사실과 배경에 대해 어떤 인과관계도 설정하지 않고 단순히 나열만 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이 전 조사관의 2022년 9월 국회 토론회 발제문)

장 소장은 구조적 문제를 짚지 못한 대표 사례로 참사 당일 청와대의 영상 종용 문제를 지적했다. “위기관리센터에서 처음 영상 요구를 하고 나서부터 해경 대응이 달라지거든요. 여기서부터 틀어진 거예요. 물론 요구할 수 있지만 지나쳤어요. 해경 상황실 입장에선 최고 인사권자인 청와대에서 오더(명령)가 떨어진 거거든요. 그럼 기존에 했던 일을 그대로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런 걸 보고서에 어떻게 담아낼지에 대한 고민이 있는 거죠.”

사참위 보고서엔 청와대와 해경 지휘부에서 영상과 보고를 종용했다는 부분이 담겼지만, 이런 요구가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진 서술하지 않았다. 장 소장도 집필에 참여한 <책임을 묻다>(굿플러스북 펴냄)에선 이 부분을 ‘청와대와 해경지휘부의 구조 방해’라고 규정하고 이렇게 설명한다. “청와대는 승객 구조 여부와 해경이 어떻게 구조를 하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세부 정보만 집요하게 물었다. 오직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현장 영상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이 요구는 서해지방해경청과 목포해경청 상황실을 거쳐 123정에 반복적으로 전달됐다. 모든 구조 세력의 관심이 청와대 보고서를 채우기 위한 현장 영상 확보와 세부 사실 파악으로 바뀌었다.”

장 소장은 처음부터 구조와 관련해 드러난 사실관계의 인과관계를 엮어 설명을 제대로 했다면 해경 지휘부가 무죄를 받지 못했을 거라고 봤다. 그러나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을 비롯한 해경 지휘부는 2023년 11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정일 변호사(오른쪽 둘째) 등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 관계자들이 2017년 3월17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이뤄진 ‘국정농단\'과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밝힐 증거자료의 불법유출과 무단 폐기 등을 막을 계획과 조치가 있는지 밝혀줄 것을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고의범’은 아니지만 ‘의무범’

“이렇게 되면 앞으로 해경이 구조하러 가도 사람이 죽으면 결국 간 사람만 처벌받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해경 쪽에서도 그동안 저한테 계속 요청했어요. 제발 (해경 지휘부 중) 한 사람이라도 처벌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요. 일선에서 앞으로 누가 출동하겠어요. 해경에서도 사고 나면 빨리 현장으로 가라는 무전만 때리게 될 거예요. 이런 부분을 국가에서 책임질까요?”

이 변호사는 재판에서 법리 적용을 다르게 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률가의 관점에서 보면 이 현안을 고의범으로 볼 수가 없어요. 직무 유기의 개념이 있지만, 그 결과가 사망이라는 결과에 연결돼야 하거든요. 연결되려면 직무 유기가 되는 것을 알고도 (참사 현장에) 갔어야 한다는 인과관계를 (재판에서) 요구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독일에는 ‘의무범’이라고 있어요. 행위 결과에 대한 엄격한 인과관계를 요구하지 않고 마땅히 자기가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으면 그 책임을 지도록 하거든요. 독일엔 이런 판례들이 형성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게 없는 상황입니다.”

사참위가 거둔 중요한 성과도 있다. 사참위는 종합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판단했다. “청와대는 네티즌 여론을 관리하고, 언론사를 통제했으며 유병언 수사를 통해 여론을 바꾸려고 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 애썼으며, 정부에 비판적인 피해자 가족을 종북 세력으로 몰아갔고,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지 못하도록 저지했으며 특조위 조사를 방해했다. 국정원과 기무사 등 정보기관과 해수부, 기재부, 행안부 등 정부 부처는 청와대의 필요에 부응하고자 각자의 의무와 권한을 벗어나 민간인을 사찰하고 유병언 수사에 협조했으며(…).”

3월29일 경기도 안산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정성욱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참위 조사를 통해 정부가) 1기 특조위를 방해한 부분이나 국정원 기무사가 깊숙이 관련돼 있다는 게 확인된 부분은 인정해요. 국정원이나 기무사 관련해서 그동안 얘기는 있었지만 명확한 팩트가 없었거든요. 그런 부분을 사참위가 정확한 팩트로 밝혀낸 거죠.” 그러나 이 성과마저 빛이 바랬다. 세월호 유가족 사찰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거나 재판이 진행되던 기무사 인사들은 윤석열 정부에서 사면되고 복권됐다.

3월29일 경기 안산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정성욱 진상규명부서장이 기록을 쳐다보고 있다. 가족협의회가 수집한 세월호 관련 지난 10년간의 기록만 약 10만 권 분량이다. 류석우 기자

선조위와 사참위 조사보고서 집필에 참여한 과학기술학자 전치형 카이스트 교수는 2022년 11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재난 대응 또는 진상규명은 거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동안 있었던 수사와 재판, 조사기구의 조사는 진상규명이기도 했지만,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합의는 유가족과 조사기구를 넘어 ‘사회’라는 외부까지 나오지 못했다. 아니, 내부에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진상을 알고 싶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유가족들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같은 후유증이 장기화했다. 조사 진행 과정과 결과에 대한 설명도 이들에게는 늘 부족했다.

그간 언론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제대로 정리해 보도하지 못했다. 수사와 재판,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단편적으로 보도하는 기사가 많았고 복잡한 쟁점에 관해 끈질기게 취재해 정리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이 전 조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간 언론도 진상규명이 정확히 어디에 와 있는지 못 썼잖아요. 그런 작업이 없다보니 어느 시점부터는 사회적 동력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기억하자고 하는데 뭘 기억해야 하는지 모르고, 어디까지 진상규명이 왔는지도 모르는 거예요. 이런 게 해소돼야 사회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힘이 생기거든요. 저는 그걸 ‘사회적 진상규명’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그런 차원에서 이제는 시민사회와 언론도 욕을 먹더라도 (취재를 통해) 입장을 보여주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앞에 놓인 합의로 가는 계단

지금부터라도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에 관해 합의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관한 문제와 연결돼 있어서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우리가 무엇을 핵심적으로 기억할지가 정해지거든요. 서로 다르게 기억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바꿔나갈지, 재발 방지 대책은 어떻게 세울지 다 달라지는 거예요. 공통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거죠. 일반 시민들이 모든 논쟁을 하나하나 다 짚을 수 없으니까 정리된 작업이 이제 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일환으로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을 정리한 거기도 하고요. (일반 시민들도) 정리된 기록을 찾아서 읽어보고 이런 게 앞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박상은 전 조사관이 말했다.

작업은 이미 시작했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을 비롯한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오현주씨가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쓴 <책임을 묻다>도 비슷한 취지다. 그는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저희가 직접 정리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규명의 연속이었던 10년을 지나, 합의로 가는 계단이 놓였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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