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킹'이 아니라 탱크처럼 밀고 나가는 키움의 '유쾌한 반란'
개막 4연패로 '역시나'…이후 7연승으로 3위까지 도약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프로스포츠에서 '탱킹'(Tanking)은 승강제가 없는 폐쇄형 리그에서만 볼 수 있는 전력 강화 방식이다.
무한정 자본을 투입할 여건이 안 되는 구단은 수년간 하위권에 머무르고, 그동안 드래프트에서 상위 순번을 얻어 유망주를 긁어모은다.
어차피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드니 눈앞의 1승에 집중하기보다, 성적 하락을 감수하고 젊은 유망주에게 기회를 주는 쪽으로 운영한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휴스턴 애스트로스,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이러한 '탱킹'으로 전력을 비축한 뒤 월드시리즈를 제패하는 데 성공했다.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가 지난해 7월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부상 직후 트레이드를 통해 최원태를 LG 트윈스로 보낼 때 '탱킹'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은 게 사실이다.
'탱킹'은 자본이 넉넉하지 않은 구단이 선택할 수 있는 생존 전략이지만, 팬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그래서 대놓고 '우리는 탱킹하는 중'이라고 말하는 구단은 없다.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키움은 2023년을 앞두고 프리에이전트(FA) 선수를 영입하는 등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영입한 선수들이 부진하고, 투타 핵심인 안우진과 이정후가 부상으로 쓰러지는 등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해 창단 최초로 10위에 그쳤다.
올 시즌을 앞두고 대다수 전문가는 꼴찌 후보로 주저하지 않고 키움을 꼽았다.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전력 보강이 없었고, 오히려 이정후가 MLB로 떠나고 안우진은 팔꿈치 수술 후 입대하는 등 전력 누수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구단 내부적으로도 향후 2년은 현실적으로 우승에 도전하기 어려우니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개막 후 맥없이 4연패에 빠질 때만 하더라도 키움을 둘러싼 이러한 전망은 정확하게 들어맞은 것처럼 보였다.
지난달 30일 고척 LG 트윈스전에서야 간신히 시즌 첫 승을 따낸 키움은 이후 거짓말 같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3시즌 KBO리그 통합 우승팀 LG를 상대로 2승 1패 위닝시리즈를 따내더니, 삼성 라이온즈와 대구 2연전도 모두 이겼다.
급기야 시즌 초반 단독 1위로 도약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화 이글스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3경기를 싹쓸이했다.
이 과정에서 류현진(한화)에게 4⅓이닝 9실점이라는 수모를 안기기도 했다.
7연승을 달린 키움은 순위표에서 3위까지 올라갔다.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해도 압도적 꼴찌 후보의 '유쾌한 반란'이다.
키움이 하위권으로 지목됐던 가장 큰 이유는 선발진이다.
확실한 선발 투수는 아리엘 후라도-엔마누엘 데 헤이수스 단 두 명뿐이고 나머지 3개의 자리에는 물음표가 붙었다.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하영민(2승 평균자책점 3.60)과 김선기(1승 1패 평균자책점 4.50)가 준수하게 선발진을 채워주고 있고, 신인 손현기는 불펜에서 호투를 펼친 덕분에 9일 인천 SSG 랜더스전에 선발 기회를 얻었다.
사실 키움 타선은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키움의 팀 OPS(출루율+장타율)는 0.785로 리그 5위에 올라 있다.
리그 중위권 정도는 되는 타선이다.
이형종(타율 0.371)과 김혜성(타율 0.367), 로니 도슨(타율 0.311)까지 3명이 해결사 노릇을 해주고 있고, 부상 때문에 뒤늦게 합류한 이주형(타율 0.524)은 '제2의 이정후'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활약을 보여준다.
젊은 선수가 주축인 키움은 쉽게 분위기를 타는 팀이다.
여전히 객관적인 전력은 상위권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시즌 초반 돌풍으로 자신감을 얻는다면 올 시즌 프로야구 판도를 뒤흔들 '다크호스'로 떠오를 수 있다.
'탱킹하는 시즌이 아닌가?'라는 외부의 시선을 탱크처럼 밀고 나가며 성적으로 입증하는 일만 남았다.
7일 고척 한화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친 키움 주장 김혜성의 "솔직히 야구라는 건 (결과를) 알 수 없는 거다. 10등이 1등을 이기는 게 야구고, 그래서 (꼴찌 후보라는) 외부 평가는 신경 쓰지 않았다"는 말에서 선수단 분위기와 각오를 읽을 수 있다.
4b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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