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빈자이고, 누가 부자인가
큰 꿈을 가져라! 뭔가 이 말은 잘못된 것 같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아이와 시골 선생님이 되겠다는 아이가 있다. 누가 더 큰 꿈을 지닌 건가. 나는 시골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아이가 더 큰 꿈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내 얘기도 틀렸다. 꿈에 무슨 크고 작음이 있는가. 땅 한 마지기가 큰가, 백 마지기가 큰가. 당연히 백 마지기가 크지. 그것도 말이라고 하나. 하지만 아무리 큰 땅이라도 가꾸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콩도 심고 팥도 심고, 꿈도 심고 사랑도 심고 살아가면서 필요한 걸 정성 들여 가꿀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나의 소중한 땅 아닌가. 허영은 사람의 마음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풍선처럼 터지면 다행이지만 그리되지 않으니 문제로다. 큰 기와집에서 산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작은 초가집에 산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잘 가꾸고 살면 행복이고 아무리 큰 집이라도 비 새고 바람 들어오면 재미없는 것이다. 누가 술 잘 마시는 사람이고 누가 술 못 마시는 사람인가. 1병 마시는 사람보다 10병 마시는 사람이 잘 마시는 사람이지. 틀렸다. 10병 마시고 주정하는 사람이 못 마시는 사람이고 1병 마시고 즐겁게 노는 사람이 잘 마시는 사람이다. 주정하는 사람보다 더 재미없는 사람은 본인은 띄엄띄엄 마시고 상대방한테 술을 자꾸 마시게 하여 취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옛날에 어느 시골 마을에 땅 부자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노인이 병이 들어 앓아누웠다. 그에게는 아들이 두 명 있었는데 큰아들은 아버지의 땅을 잘 지키겠다고 하였고 둘째 아들은 땅 한 뙈기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큰아들은 땅을 야금야금 팔아 도시로 나갔고 작은아들은 땅 한 뙈기를 잘 가꾸어 행복하게 살았다. 노인은 뒤늦게 후회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가난하다고 고개 숙일 일도 아니고 부자라고 어깨 힘 줄 일도 아니다. 도대체 누가 가난한 사람이고 누가 부유한 사람인가. 일등 한 학생에게만 상을 주는 건 옳지 않다. 일등 하는 것보다 꼴찌 하는 게 더 힘든데 왜 꼴찌에겐 상을 주지 않는가. 상을 주려거든 일등 한 학생에게는 노트 1권, 꼴찌 한 학생에게는 10권, 학업을 포기한 학생에게는 50권을 주어라. 누군가는 1등을 하고 누군가는 꼴찌를 해야 하는데 죄다 1등만 하려고 하면 꼴찌는 누가 하나. 균형을 위해서라도 자기 등수에 고마워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꼴찌에 고마워할 줄 알면 1등은 큰 의미가 없다. 콩 1,000알을 생산하든 100알을 생산하든 10알을 생산하든 자기가 생산한 것에 고마워할 줄 알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을 맛볼 수 있다. 숫자놀음은 행복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돈이라는 건 아무리 많이 벌어도 내 돈이 아니다. 돈마다 ‘한국은행 총재’라고 적혀 있으니 한국은행 돈 아닌가.
큰 꿈을 가지라는 말에 속아 내 꿈을 버리고 남의 꿈을 따라가는 아이들, 그 때문에 길을 잃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이가 충분히 제 갈 길을 갈 수 있는데도 억지로 남의 길을 따라가게 만든 부모들이 죄인이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 게 아니라 자식이 부모의 꿈을 이뤄 주길 바란 거지. 그런 부모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커다란 꿈이나 작은 꿈이나 저울에 올려놓으면 무게가 같다는 사실이다. 농구공이 탁구공보다 크다고 해서 농구 선수가 탁구 선수보다 훌륭한 건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당연한 일에 상을 준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잘 모셨다고 효부상을 주고 경찰이 큰 도둑을 잡았다고 상을 주고 가수가 노래를 잘했다고 상을 주고 배우가 연기를 잘했다고 상을 준다. 좋은 걸 많이 먹는 것보다는 나쁜 걸 멀리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음식보다 나쁜 음식에 많이 길들어져 있다. 어쩌면 나쁜 걸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음식을 잘못 받아들여 영양 결핍증에 걸리고 사랑을 잘못 해석하여 집착증에 걸리고 술을 잘못 배워 중독에 걸린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이 땅을 받으려고 기다라니 줄을 서 있다. 어떤 땅은 기름진 땅이고 어떤 땅은 자갈밭이고 어떤 땅은 메마른 땅이다. 줄 잘 서면 좋은 땅 받고 줄 잘못 서면 나쁜 땅 받는다. 나는 줄 잘못 서서 자갈밭을 받았다. 그렇지만 땅이 없는 사람보다는 나은 것이었다.
나는 땅을 가꾸는 법도 모르면서 땅을 일구었다. 노동에 비해서 결과가 좋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도왔다. 나는 지금도 그게 누구인지 모른다. 하느님일 수도 있고 내 그림자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 누군가가 없었으면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일굴 수 없는 땅이었다. 나는 그 땅에다 노래를 심었다. 땅은 정직하다. 가꾸는 대로 거둘 수 있게 한다. 나는 운이 좋았다. 비도 적당히 내렸고 바람도 적당히 불었다. 덕분에 땅을 고생시키지 않아도 되었다. 한 가지 잘못한 건 수확한 것을 제대로 나누어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사회성이 없어서 그랬다고는 하나 그건 핑계일 뿐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가꾸기만 했을 뿐, 농사는 하늘이 지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지은 줄 안다. 그것이 괴로웠다. 유명과 무명의 경계에서 첫 마음으로 돌아가니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오늘도 나는 나의 소중한 땅을 어루만지며 그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고맙습니다!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울 어머니 살아생전에 작은 땅이라도 있었으면
콩도 심고 팥도 심고 고구마도 심으련만
소중하고 귀중한 어디에 우리 땅은 어디에
서울 가신 울 아버지는 왜 아직 안 오실까
나의 꿈이 하나 있다면 자갈밭이라도 좋겠네
오늘도 저 멀리 기차 소리 들리건만
깔담살이 내 꿈은 구름 타고 떠가네
노래 ‘땅’(1980/1989)
글 한돌(음악가,작곡가,가수,수필가)
***이 시리즈는 순천 사랑어린배움터 바루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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