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후한’ 반도체 보조금 실상은…한국보다 20% 비싼데 결국 ‘독한’ 계산서? [김민지의 칩만사!]

2024. 4. 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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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 생산 보조금 가시화
TSMC, 예상보다 30% 높은 보조금 지원
문제는 미국 공장 생산성…높은 인건비·운영비 관건
파운드리 고객사 확보 등 이점 최대한 활용해야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을 이끌고 있는 지나 러몬도(왼쪽) 상무부 장관. [AFP]
‘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미국 정부가 파운드리 업계 1위인 대만 TSMC에 9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예상보다 높은 ‘후한’ 보조금 규모인데, 그 대가도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20년 넘게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칩 제조를 맡았던 동아시아와 비교해 미국은 높은 인건비와 생산 인력 수급 문제 등의 단점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데다, 미중 통상 갈등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삼성전자와 TSMC로서는 수조원대의 보조금 및 혜택 뿐 아니라, 다양한 고객사와의 접점 등 미국 생산 거점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TSMC, ‘88조원’ 미국 사상 최대 외투로 화답

미국 상무부는 8일(현지시간) TSMC에 반도체 생산 보조금 66억달러(약 8조9000억원)를 지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최대 50억달러(약 6조8000억원)의 저리 대출 지원을 포함해 총 116억달러(15조7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합니다.

당초 업계에서는 TSMC가 약 50억달러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보다 30% 높은 보조금을 손에 쥐게 됐습니다. TSMC의 추가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 [AP]

TSMC는 이날 미국 내 투자 규모를 기존 400억달러에서 250억달러(33조9000억원) 늘인 650억달러(88조1000억원)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미국 사상 최대의 외국의 직접 투자 규모입니다. 현재 애리조나주에 건설 중인 2개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외에 2030년까지 2나노 공정이 활용될 팹(fab)을 추가로 건설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애리조나주에만 총 3개의 공장을 짓는 건데, 여기서 창출될 일자리만 6000여개에 달할 전망입니다.

원조 칩 제조 전문 동북아보다 낮은 생산성… 미국의 ‘후한’ 보조금 이유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에도 예상보다 많은 보조금을 지급할 전망입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60억~70억달러의 반도체 생산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정부가 인텔, TSMC, 삼성전자에 지급하는 직접 보조금만 약 220억달러입니다. 반도체 생산 보조금 예산으로 마련된 390억달러(약 52조8000억원) 중 56% 이상을 파운드리 빅3가 받게 되는 셈입니다.

미국 정부의 ‘후한’ 보조금 지급 이면에는 글로벌 공급망 속 반도체 제조 거점을 동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옮기겠다는 야심이 있습니다. 중국을 향한 견제 강도를 높이면서 전 세계 반도체 주도권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문제는 미국 내 반도체 제조 공장 건설의 수익성이 동북아시아에 비해 낮다는 겁니다. 공장 건설 단계부터 운영까지 높은 인건비가 발목을 잡습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비용은 한국보다 20%가량 비쌉니다.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반도체 공장 특성에 적합하지 않은 업무 문화도 걸림돌입니다. 반면, 20여년 넘게 전세계 반도체 제조를 책임져온 한국, 대만 등 동북아 지역의 인력은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고, 탄탄한 업무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반도체 공장을 짓고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동북아 지역 공장보다 훨씬 높다”며 “미국 정부로부터 수조원대 보조금 뿐 아니라 저리 대출, 세제혜택 등을 전부 다 받아야 겨우 동북아 생산거점의 공장 생산성과 겨우 비슷한 수준을 맞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삼성전자 제공]

TSMC 창업자인 모리스 창 전(前) 회장도 미국 공장 운영 비용에 대해 꾸준히 비판적으로 언급해왔습니다. 앞서 그는 “반도체 장비는 너무 비싸 24시간, 연중무휴로 가동하는데 만약 새벽 1시에 고장이 났다면 미국에서는 아침 8시에 사람들이 출근해서 수리를 시작할테지만 대만에서는 엔지니어 기술자들이 달려가서 새벽 2시면 수리를 마친다”며 “대만, 일본, 한국 제조업 경쟁력은 직장의 작업 문화가 만들어낸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보조금을 받는 데 요구되는 조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미국 정부는 보조금 지급에 대한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으로 중국 내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10년간 중국 등 우려 대상국에서 웨이퍼 투입 기준으로 5% 이하로만 생산능력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공장과 패키징 공장을 두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 라인 직원 모습 [삼성전자 제공]

때문에 외국 기업인 TSMC나 삼성전자로서는 미국 생산 거점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미국에는 엔비디아, 퀄컴, 구글 등을 포함한 다양한 파운드리 고객사가 있고, 패키징 분야에서 풍부한 인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고객사와 근거리에서 활발하게 협업하고, 패키징까지 더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하기에 용이합니다. 특히,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를 따라잡고 인텔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삼성에게는 ‘기회의 땅’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61.2%, 삼성전자가 11.3%를 차지했습니다.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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