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툰베리가 재생에너지 풍력발전을 반대한다고요?

한겨레21 2024. 4. 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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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행성조사반]노르웨이 순록 서식지에 우후죽순으로 생긴 풍력발전, 재생에너지 확대가 ‘녹색 식민주의’ 되지 않으려면
순록의 아종 가운데 가장 몸집이 작은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의 스발바르순록. 순록은 오락가락하는 겨울과 봄 날씨로 먹이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종영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어요. 스웨덴의 환경 영웅 그레타 툰베리가 풍력발전소 설치를 반대한다는 거였어요. “툰베리가 다국적 정유업체에서 로비를 받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노르웨이에 풍력발전 단지가 있는데, 거기서 풍력발전에 반대하는 순록 목축업자 편을 든다는군요. 그레타 툰베리가 배신하다니!”

상처 가득한 순록의 입

“이거 빅뉴스인걸요? 아니. 게다가 툰베리는 채식하는 친구 아닙니까? 그런데 순록 잡는 사람들 편을 들다니!”

전자우편을 읽은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의 왓슨 요원이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홈스 반장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세계적인 셀러브리티가 우릴 만나줄 리도 없고. 그럼, 일단 노르웨이의 순록부터 보러 갑시다.”

순록은 북극권과 아북극권(북극권과 북회귀선 사이의 지역)에 살아요. 다양한 아종이 있고, 야생 순록이나 가축화한 순록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란지퍼 타란두스’(Rangifer tarandus)라는 한 종입니다. 순록은 이동에 능해요. 귀신고래가 바다 최고의 장거리 이동 선수라면, 육상에서는 최대 4800㎞를 오가는 순록이 있습니다. 봄에는 북쪽으로 이동해 해빙된 목초지에서 지의류(이끼류)를 뜯어먹어요. 모기를 피하는 데도 적합하죠. 가을이 되면 남쪽으로 내려와 겨울을 나고요.

순록은 초승달 모양의 넓은 발굽이 있어서 눈이 녹은 부드러운 땅, 늪지대를 지날 때도 체중을 분산할 수 있어요. 툰드라 지형에 최적화된 거죠.

순록은 썰매개에 견줘도 훌륭한 이동수단입니다. 개는 5~7마리가 한 팀이 돼 짐을 실은 썰매를 끌고 하루 70~80㎞를 달릴 수 있어요. 반면, 순록은 20마리로 한 팀을 이뤄 썰매를 끌고 하루 20~25㎞를 가요. 그런데도 원주민은 이동수단으로 순록을 선호해요. 왜냐면 개는 하루에 2㎏의 신선한 고기를 줘야 하거든요. 순록은 그럴 필요가 없지요. 그래서 산타클로스는 선물을 운반하는 교통수단으로 순록을 뽑은 거예요. 북극 원주민은 순록을 따라 목축하며 우유와 고기 그리고 가죽을 얻었지요. 이동 수단으로도 이용했고요.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은 야생 순록은 물론 가축화한 순록의 최대 서식지 중 하나인 노르웨이의 최북단 핀마르크고원으로 갔어요. 그곳에는 약 3천 명의 순록치기가 24만 마리 순록을 목축한다고 하더군요. 고원에 오르자 평탄한 구릉이 펼쳐지고 수천 마리 순록이 지의류를 뜯고 있었어요. 북극 원주민인 사미족의 젊은 목동이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세우더니, 순록들에게 소금을 먹이기 시작했죠. 추운 날씨에 사는 초식동물은 염분이 부족해요. 소금을 먹던 순록이 말했어요.

“눈이 온 날에도 우리가 주둥이로 눈을 치우면 싱싱한 지의류 식물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찾기가 힘들어졌어요.”

목동이 거들었죠.

“따뜻한 겨울이 문제예요. 날씨가 따뜻해졌다가 하루 이틀 혹한이 닥치면, 녹은 눈이 다시 얼면서 빙판이 돼버리거든요. 얼음이 지의류를 가둬버리는 거죠.”

“그래서 내 입이 이렇게 상처투성이라니까요!”

재생에너지 확대의 이면, 진퇴양난

순록과 순록치기는 얼음에 관해 잘 알아야 해요. 얼음에 관한 단어도 여러 개죠. 한겨울 추운 날에 생기는 굵은 눈 결정을 사미족 말로 ‘세아나시’라고 불러요. 세아나시가 쌓이면 균질한 밀도의 설괴(눈의 덩어리)인 ‘구오흐툰’을 만들고요. 마치 모래알 같은 눈 알갱이로 양탄자를 깐 것과 같아서, 순록은 쉽게 구오흐툰을 주둥이로 헤치며 지의류를 먹을 수 있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겨울에 따뜻한 날이 이어진다거나 봄이 너무 일찍 왔다거나 해서 세아나시가 녹으면 어떻게 될까요? 먹이를 찾자고 순록이 눈 위를 걸어다니면 눈 아래 지의류가 짓뭉개질 거예요. 기후위기 시대, 순록이 굶주리는 이유예요. 목동이 말했어요.

순록은 지의류를 주로 먹는다. 눈이 덮힌 땅에서도 자외선을 인식하여 잘 찾아낼 수 있다. 남종영

“순록이 없는 사미족의 삶은 의미가 없다고 할아버지가 자주 말씀하셨어요. 우리 조상은 순록 우유를 먹고, 순록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순록 뿔로 썰매를 만들고, 순록을 잡아 고기를 먹었어요. 많은 사미족 사람이 남쪽의 대도시로 떠났지만 우리 가족처럼 전통을 지키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핀마르크고원도 너무 따뜻해졌죠.”

그런데 인간과 순록이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고,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많이 세워야 하는 건 상식이죠. 그런데 지금 야생 순록과 가축화한 순록이 사는 북극권과 스칸디나비아 고원 지대에 풍력발전소 건설 붐이 일고 있어요. 사람은 적고 바람이 센 곳이니 다국적 업체들이 눈독을 들입니다. 순록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기후위기에 기여하기라도 했나요? 석탄을 땠나요? 자동차를 몰았나요?”

“맞아요. 당신들은 무탄소 썰매를 끌었죠. 죄가 없어요.”

“며칠 전 전세계 순록의 지도자 ‘루돌프’가 현장 조사차 핀마르크고원에 왔다 갔어요. 매년 겨울 죽어 나가는 순록 이야기를 듣고 이를 인간들에게 알리기 위해 인간 세계의 유명한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에게 부탁하기로 했답니다. 지금 노르웨이 중부 포센 반도의 순록들이 모여 풍력발전단지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을 거예요. 루돌프도 거기로 갔어요.”

‘포센 풍력발전 프로젝트’는 유럽 최대 규모의 육상 풍력사업입니다. 발전단지 6곳의 전력 생산량만 연간 3.4테라와트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순록과 순록치기의 이동 경로에 있어요. 포센 반도의 순록 집회장 가는 길에 만난 순록들의 아우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 터빈 날개가 54.7m래요. 그게 돌면서 나는 소리가 슝슝… 매일 잠을 설쳐서 미칠 지경이에요.”

“우리는 늑대를 조심해야 하는 초식동물입니다.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많은 종이에요. 저 날개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죠. 돈키호테처럼 이 뿔로 가서 처박고 싶어요.”

“2021년 10월, 노르웨이 대법원이 포센 풍력발전단지 설치가 오랫동안 순록을 길러온 원주민 사미족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렸어요. 그 판결은 순록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더 큰 기후정의 원칙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2023년 10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석유산업 중단을 요구하는 캠페인에서 발언하고 있다. REUTERS

포센 반도의 집회장에 도착했어요. 수만 마리의 순록 말고도 사미족 참가자도 수십 명 있었죠. 커다란 뿔을 가진 순록 한 마리가 바위 위에 올라가자, 군중의 분위기가 엄숙해졌어요. 루돌프였지요.

“여러분 말을 잘 이해했습니다. 제가 조사해보니 북극의 순록은 기후위기로 굶주리고 있고 여러분은 풍력발전으로 예민해져 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를 데려왔습니다. 그가 인간 세상에 나가 순록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가 찾던 툰베리였어요! 그가 앞으로 나와 인사하고 마이크를 잡았어요.

“원주민의 권리와 인권은 기후대응과 기후행동에 있어서 손잡고 가야 합니다.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 진행돼선 안 됩니다. 그것은 기후정의가 아닙니다.”

사미족 참가자들도 박수 쳤어요. 그들은 ‘사미족과 순록은 운명 공동체’라거나 ‘녹색 식민주의 거부’라는 등의 펼침막을 들고 있었죠.

툰베리의 연설이 끝나자 루돌프의 썰매가 나타났어요. 툰베리는 루돌프가 끄는 썰매에 올라탔습니다. 루돌프가 앞발을 구르니 썰매가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툰베리가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오슬로로 갑니다!”

이튿날 텔레비전에 툰베리가 나왔어요. ‘포센 반도의 151개 풍력발전기를 철거하라’며 툰베리와 젊은 환경운동가들이 노르웨이 오슬로의 에너지부 청사 앞에서 노숙 시위를 시작한 거예요.

“그레타 툰베리와 환경운동가들이 노르웨이 에너지부 청사 입구를 막고 오랫동안 순록을 쳐온 사미족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땅에 건설된 풍력발전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툰베리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세계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 원주민의 권리를 희생해 이뤄져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홈스 반장이 한마디 했지요.

“재생에너지 확대만 주장하던 툰베리가 더 큰 ‘기후정의’라는 원칙을 제시한 셈이 됐군.”

왓슨 요원이 웃었습니다.

“제보가 거짓말은 아니었네요.”

순록에겐 아무 변화도 없었다

사흘 뒤 경찰은 툰베리와 젊은 운동가들을 체포했어요. 툰베리는 끝까지 저항했지만 경찰관들에게 몸이 들린 채 끌려나가며 노숙 시위를 마쳐야 했죠.

그리고 일 년이 흘렀습니다. 2024년 3월 언론은 포센 반도의 발전업체들과 사미족 원주민의 분쟁이 최종 해결됐다고 보도했어요. 풍력발전을 계속하는 조건으로 업체 쪽이 500만크로네(약 6억2천만원)를 사미족 문화진흥기금으로 내놓기로 했다는 거였어요. 순록에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죠.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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