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단계 줄여 가격 투명화… 장바구니 물가 ‘디지털’로 안정 도모
가락시장 거쳐 다시 지방 가는
비효율적 ‘역물류 현상’ 개선
출하조직-유통업체 직접 연결
공급·수요처 거래진입장벽 없애
중소마트·온라인쇼핑몰 거래땐
품목별로 ㎏당 2000원 지원도
지난해 11월 말 세계 최초로 출범한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이 국내 농산물 유통구조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른바 ‘사과 파동’으로 불리는 최근 국산 과수품목의 기형적 가격 폭등의 이면에 불투명하고 고비용의 오프라인 농산물 유통시스템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적잖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통 채널의 다양화와 유통비용 절감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은 생산자는 물론 소비자도 불만족스러웠던 기존 농산물 유통구조에 변화의 충격을 줄 것이란 기대가 크다.
◇유통의 디지털화(化), 도매유통 혁신의 시작 = 지난해 11월 30일, 농산물 도매유통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 시공간 제약이 없는 전국 단위의 효율적인 유통을 창출한다는 목표로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이 출범했다. 지금의 오프라인 도매시장은 1985년 시작된 공영도매시장 제도를 통해 혼란스럽던 농산물 도매유통의 질서를 바로잡는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공영도매시장은 투명한 가격 결정과 신속한 대금 결제로 농가 소득 안정성을 확보해줬을 뿐만 아니라, 여기서 전국 농산물의 기준가격을 설정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하지만 정해진 공간과 시간에 제한된 유통 주체만 참여하고, 거래 단계마다 농산물이 이동하는 ‘상물일치형(商物一致形)’ 거래에 따라 도매시장으로 출하되는 전국 각지 농산물의 40% 이상이 서울 가락시장에 모였다가 그중 일부가 다시 지방 도매시장으로 전송되는 ‘역물류 현상’이 발생하는 등 여러 유통비용 증가 요인이 발생했다. 농가는 물론 소비자들도 이 같은 오프라인 도매시장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유통 분야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유통시스템 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온라인 도매시장은 ‘열린’ 공간이다. 온라인 도매시장을 통한 거래는 △특정 지역이나 시장 내에서의 거래에 한정되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전국 단위의 거래가 가능하고 △기존 도매시장에서 도매시장법인이나 중도매인 등 지정·허가받은 주체들만 참여하던 것과 달리 산지APC, RPC, 유통·가공·식자재 업체 등 대량 공급·수요처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거래 진입 장벽을 없앴으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먼저 거래가 체결된 이후 구매자가 지정한 장소로 운송돼 물류 최적화가 이뤄진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출범 전부터 이 같은 온라인 도매시장의 장점은 예상된 바였지만, 실제 제도를 시행한 후 반응은 더 뜨겁다.
◇유통비용 절감, 도매는 물론 소매가격까지 안정 = 온라인 도매시장이 산지 농가와 도시 소비자들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음은 짧은 기간에 증명됐다.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을 통할 경우, 산지출하조직과 유통업체의 직거래를 통해 출하·도매 단계 비용이 절감돼 물가 안정을 위한 도매단계 지원사업의 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작년 11월 30일 출범 이후 3주간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 기존 도매거래 대비 농가수취가격은 4.3% 상승하고 출하·도매단계 비용이 9.9% 절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도매단계에서의 비용 절감이 중장기적으로는 농산물 물가 안정의 근본적인 변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농식품부의 분석이다. 또 최근 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인해 정부에서 추진하는 소매단계의 할인지원사업과 도매단계의 납품단가지원사업 대상으로 참여가 어려웠던 중소형 마트 등의 다양한 소비처가 온라인 도매시장을 통해 폭넓게 참여할 수 있어, 규모와 지역의 제한 없이 물가 안정 효과가 전국 곳곳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이러한 온라인 도매시장의 참여 활성화를 위해 aT는 구매자 요건인 가입 후 최저거래금액(연간) 1000만 원 기준을 면제토록 했다. 또 상반기 가입 구매자에게 올 연말까지 구매대금 건당 0.2%의 정산수수료를 면제하고, 무이자 기간을 20일에서 30일로 연장하는 등 구매자 적극 유치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진행 중이다.
◇장바구니 인하 효과까지…정부, 추가적 유통비용 절감 방안 고민 중 = 농산물 도매가격의 안정은 궁극적으로 소매가격 안정으로 이어져 장바구니 물가 인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농식품부의 납품단가지원사업은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을 통해 거래하는 중소형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까지 확대됐다. 산지출하조직이 최근 가격 상승 폭이 컸던 17개 품목을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을 통해 중소형 마트 및 온라인 쇼핑몰에 농산물을 판매할 경우 품목별로 ㎏당 최대 2000원까지 납품단가를 지원받게 된다.
실제로 부산 지역 중형 마트인 ‘탑마트’를 운영하는 서원유통에서 온라인 도매시장을 통해 산지출하조직으로부터 딸기, 파프리카, 애호박, 참외 등의 품목을 직거래로 구입해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서원유통 관계자는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 거래로 납품단가지원사업 대상이 돼 소비자들에게 보다 싸게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어 반응이 좋다”고 밝혔다. 식자재 마트인 충남유통의 경우도 대파, 마늘을 온라인 도매시장을 통해 산지와 직거래하고 있다. 충남유통 측은 “고물가 시대 소비자들의 생활비 절감에 도움을 주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농식품부는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유통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조만간 내놓을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대책에 오프라인 농수산물 도매시장의 도매시장법인(도매법인) 지정제도 개선 등의 제도 개편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농산물 유통구조의 다양화와 비용 절감이 확실한 온라인 도매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국회에서 1년 가까이 계류 중인 ‘농산물 온라인 도매거래 촉진에 관한 법률’ 통과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 빠른 시일 내 온라인 도매시장의 운영 근거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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