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올해말 첫 반도체 생산” 선언하며 ‘반도체 자립’ 시동
반도체에 필수적인 수자원 확보도 중요한 과제
전문가들 “지금도 물 부족…자칫 환경 재앙 우려”
인도 정부가 올해 말 첫 ‘인도산 반도체’ 생산 계획을 제시하며 반도체 산업 육성 본격화를 선언했다. 반도체가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 속에 ‘전략 자산’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인도의 이런 움직임은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중심의 반도체 제조업 판도를 뒤흔들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인도가 기술 이전 등을 통해 반도체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물의 안정적인 확보 또한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인도의 많은 지역이 만성적인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이 환경 재앙을 부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아슈위니 바이슈나우 인도 철도, 통신, 전자·정보기술 담당 장관은 지난달 19일 인도 현지 방송 ‘네트워크18’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2024년 12월까지는 첫 ‘인도산’ 반도체가 시장에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떤 반도체가 생산될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첫 제품은 미국 마이크론이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에 건설 중인 공장에서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마이크론은 총사업비 27억5천만달러(약 3조7천억원) 규모의 디램 반도체와 낸드 메모리 조립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초기 비용 8억2500만달러(약 1조1천억원)는 마이크론이 투자하고, 나머지 비용은 추후 인도 정부가 투자할 예정이다. 이 공장은 비록 반도체 개발·설계·제조 시설은 없는 조립 시설이지만, 협력 기업 200여곳의 투자 유치를 통해 반도체 산업 생태계 조성을 본격화할 수 있을 것으로 인도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 2026년 첫 ‘직접 제조 반도체’ 등장
인도에서 직접 반도체를 제조할 공장(팹)은 2026년께 처음 가동될 전망이다. 인도 타타그룹은 지난달 13일 구자라트주 돌레라에서 3개의 반도체 제조 공장 정초식을 열고 2026년부터 상업용 반도체 생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민트 등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타타그룹 산하의 타타전자는 대만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파워칩’(PSMC)과 제휴해 돌레라에서 2개의 반도체 제조 시설 건설에 착수했다. 이 단지에는 일본 반도체 기업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와 제휴한 인도 기업 ‘시지(CG) 파워 앤드 인더스트리얼 솔루션’이 사용할 반도체 조립 및 테스트 공장도 들어선다.
타타그룹은 이와 별도로 인도 동북부 아삼주에도 반도체 제조 시설을 세우고 있다. 자회사 ‘타타 반도체 조립 및 테스트’가 구축할 이 시설은 하루 4800만개의 반도체 칩 생산 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타타그룹의 지주회사인 ‘타타 선스’의 나타라잔 찬드라세카란 회장은 “우리는 아주 적극적인 제휴 기업과 팀을 이뤄, 2026년 중으로 (돌레라) 반도체 공장 가동에 들어갈 것”이라며 “아삼주에 건설할 공장은 이보다 빠른 2025년 말 또는 2026년 초에 먼저 완공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우선 28나노미터의 정밀도를 지닌 반도체를 생산하고 향후 정밀도를 22나노미터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삼성전자나 대만반도체(TSMC)가 이미 3나노미터 공정의 양산 체제를 갖춘 것에 비춰보면, 기술적으로는 상당한 격차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찬드라세카란 회장은 “반도체 국가가 되는 것은 인도로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 2021년 반도체 산업 육성 선언
인도 정부는 2021년 12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들을 유치하기 위한 100억달러(약 13조5천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자립 추진을 선언했다. 이 프로그램은 제조 시설 구축 비용의 50%를 정부 재정에서 지원하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5년 동안 집적회로(IC), 칩셋, 시스템온칩(SoCs) 등 다양한 반도체 설계 기업 20여곳을 육성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인도를 ‘반도체 허브’로 만들겠다는 이 계획에는 이스라엘의 ‘타워 세미컨덕터’, 대만의 폭스콘 등이 관심을 보였으나, 아직까지는 뚜렷한 유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폭스콘은 지난해 7월 인도 에너지·철강 기업 베단타와 함께 추진하던 195억달러(약 26조4천억원) 규모의 반도체 합작 투자 계획을 중단해, 인도의 반도체 육성 계획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에 따라 인도 정부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고조에 따라 중국 내 투자를 제3국으로 분산하려는 다국적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인도가 이들 기업 유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베트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경제 매체 시엔비시(CNBC)는 인도는 높은 관세 등 보호무역 정책 때문에 기업 유치 경쟁에서 베트남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베트남의 투자 관리 기업 ‘비나캐피털’의 최고 투자 담당자 앤디 호는 인도의 정보기술 제품 수입 관세가 10%로 베트남 평균치(5%)의 두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인도 싱크탱크 ‘카네기 인도’의 코나르크 반다리 선임연구원은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사업을 이전할 경우 부품 등에 적용되는 관세에 큰 변화를 겪지 않게 된다”며 이는 중국과 베트남이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에 함께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반도체 설계 부문에서는 인도가 베트남 등 다른 제3세계 국가들을 크게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국적 회계법인 딜로이트의 파트너 카티르 탄다바라얀은 영국 비비시(BBC) 방송 인터뷰에서 “인도는 전세계 칩 설계 인력의 20%를 확보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인도인이 이미 5만명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인도의 내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점 또한 투자 유치에 유리한 요소로 꼽힌다. 인도 투자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인도의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1년 270억달러(약 36조5천억원)에서 2026년 640억달러(약 86조6천억원)로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 또 다른 걸림돌, 수자원 부족
반도체 제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 확보 문제도 인도가 해결해야 할 중요 과제로 꼽힌다. 물은 반도체 제조 초기의 세척과 식각(웨이퍼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부터 최종 세척과 냉각까지 반도체 제조 전 과정에 두루 쓰인다.
반도체 제조 관련 단체인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 인도’의 사티아 굽타 대표는 최근 개발 전문 매체 데벡스 인터뷰에서 “반도체는 물 사용 집약적 산업이어서 반도체 제조 공장을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물 확보가 가능하냐다”라며 “이 때문에 기반시설과 자연 자원이 아주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인도는 지금도 많은 지역에서 물 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인도 중앙 물위원회(CWC)가 2019년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인구 1인당 수자원량은 연 1486㎥다. 1인당 수자원량이 연 1700㎥에 미달하면 물 부족 상태로 평가된다. 데벡스는 인도 전국의 약 54%가 이미 2015년부터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물 공급 부족 위기에 처한 인구도 6억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물 부족 현상은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 같은 대도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벵갈루루 도심에서 벗어난 지역에서는 학교에서 변기에 쓸 물이 부족한 실정이고, 더러운 물 외에는 마실 물이 부족한 어린이들이 장티푸스로 병원에 입원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 도시의 물 부족은 강우량 부족보다는 관리 능력 탓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델리 인도공과대학(IIT)의 아쇼크 케샤리 교수(토목공학과)는 반도체 산업이 물 집약적인 산업이라는 점이 상대적으로 간과되고 있다며 많은 물을 사용할 뿐 아니라 폐수 방류도 많은 반도체 산업의 수자원 과잉 개발을 막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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